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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이 동성애 영화에 출연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아이의 시간>

09.02.06 09:32최종업데이트09.02.0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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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Do I Look?

강아지와 장난치는 오드리 헵번 ⓒ 오드리 헵번


1929년 5월 4일 벨기에. 그곳에서 요정이 태어났습니다. 이후 발레를 배우고 연극 무대에 서게 되지요. ‘나이는 스물둘, 5피트 5.5인치(약 166cm)의 키, 짙은 갈색 머리, 마른 편이지만 매력적인 몸매, 재능에 문제없고 춤 솜씨는 최상.’

신작의 여배우를 찾던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당시 받아든 요정의 프로필입니다. 결국 <로마의 휴일>에서 주연을 맡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스타가 되고야 말죠. 네, 만인의 여인이라 불리는 오드리 헵번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티없이 맑고 순수한 이미지에 매혹됩니다. 실제로 그녀는 말년에도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의 친선대사로서 인도적 활동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죠. 성장기에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한 아픈 기억들을 가진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겁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나치정권과 파시스트를 지지하는 칼럼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었죠. 어쩌면 그녀는 여기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말년의 투병 중에도 기아와 질병의 땅 소말리아를 방문해 전 세계의 관심과 도움을 호소했던 그녀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병으로 고통 받은 이유도 소말리아, 아프리카의 불우한 아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라는군요.

그녀는 자신이 병에 걸리고 쇠약해져 가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대의학의 해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각나 미안했으며 돈이 있는 자신만 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않아 병을 키우게 되었답니다. 이후 1993년 1월 20일 스위스의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죠.

매력적인 입술을 가지려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가지려면
사람들 속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라.

날씬한 몸매를 원한다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눠줘라.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지려면
하루에 한 번 어린 아이가 너의 머리를 어루만지게 하라.

균형 잡힌 걸음걸이를 유지하려면
당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걸으라.

물건뿐 아니라 사람도
새로워져야하고, 재발견해야 하며,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어떤 사람도 무시되어선 안 된다(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당신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할 때
당신 역시 팔 끝에 손을 갖고 있음을 기억하라.

나이를 먹으면서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갖고 있음을.
한 손은 당신 자신을 돕기 위해,
그리고 나머니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인생의 마지막에서 남긴 유언마저도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 2004년 ‘유엔과 세계평화를 향한 비전’은 그녀가 생전에 펼친 유니세프 활동을 기리기 위하여 "오드리 헵번 평화상"을 제정했습니다(첫 번째 수상자는 드류 배리모어). 데일리 미러지는 2006년 <세월이 흘러도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서 그녀를 1위로 선정하지요.

오드리 헵번이 레즈비언 영화를?

▲ 아이의 시간 포스터 ⓒ MGM


여러분은 오드리 헵번이 남긴 영화들 중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그녀의 열렬한 팬이라면 아마도 출연했던 작품들을 모두 다 봤을 테지만 일반인이 그녀의 작품 수 십 편 모두를 본다는 것은 힘들 겁니다.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마이 페어 레이디>등 몇몇 대표작들은 아실 테지만 지금 추천해 드릴 영화는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작품입니다.

1961년, 1972년. 2000년의 시간적 구분을 통해 여성 동성애 문제의 발전사를 다룬 <더 월2> 에 오드리 헵번의 모습이 나온다는 것을 아시나요? 에피소드 중 가장 잔잔하고 인상 깊었던 1961년의 이야기는 극장에서 시작됩니다.

노년인 레즈비언 이디스와 애비가 훌쩍이며 영화를 보는데, 스크린 속에서는 셜리 맥클레인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요. 그런데 그 대상은 바로 오드리 헵번. 당시 상영했던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아이의 시간 (The Children's Hour)>입니다.

릴리언 헬만의 희곡을 영화로 옮긴 것인데, 당시 사회가 동성애를 보는 시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죠. 함께 학교를 운영하는 셜리 맥클레인과 오드리 헵번의 묘한 분위기가 전편에 흐르고 있습니다. 물론 셜리 맥클레인의 짝사랑에 가깝긴 하지만요.

이 작품은 어린 학생의 악랄한 계략으로 동성애 성향이 폭로되자 사회적 매장을 당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동성애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했지만 입에 담는 것조차 금기시 되던 단어였음을 볼 때 주변 인물들의 폐쇄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대중의 혐오와 편견을 어린 시절 가지는 잔인함과 사악함에 비유하며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대사와 행동은 리듬감이 있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화는 당시 대부분의 게이 스토리가 그랬던 것처럼 비극으로 끝납니다. 이것은 동성애가 (국가가 주입하는) 기존의 가치관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처벌과 순응으로, 당시 보수적인 관객의 반감을 줄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될 수 있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비극은 완전한 순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작품 전체를 흐르는 사회 비판적 은유와 더불어, 오드리 헵번이 사람들의 시선을 뚫고 용기 있게 걸어가는 인상적인 엔딩 때문이죠.

엔딩에 이르러 한 여인의 죽음을 둘러싼 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심판자에서 죄인으로, 오드리 햅번은 죄인이 아닌 당당한 주체로서 싸늘한 침묵으로 그들을 질책합니다. 어쩌면 작품이 전개되는 동안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던 오드리 헵번의 이러한 행동은 그 결말에서 사회적 폭력과 야만으로부터 동성애자의 인권에 미약하나마 손을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참, 앞서 언급된 '더 월2' 역시, 동시대의 에피소드인 1961에서 추억을 간직한 채 지역적인 공간을 떠나가는 설정과 사랑에 작별을 고하는 대사의 느낌이 이 영화와 비슷하군요.

오드리 헵번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명작이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고전 속 레즈비언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로마의 휴일>은 물론 <벤허>까지 감독했던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작품인데도 <아이의 시간>을 보시거나 알고 계신 분들은 그리 많지 않으신 걸로 압니다. 왜 그랬을까요? 괜찮은 작품인데. 기회가 되시거든 한 번쯤 보시길 추천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스쿨 오브 오마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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