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대졸 임금삭감이 잡셰어링? 이해불가"

[인터뷰] 롤랜드 슈나이더 OECD노조자문위 정책자문위원

등록 2009.02.26 15:01수정 2009.02.2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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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랜드 슈나이더 OECD노동조합자문위원회(TUAC) 정책전문위원.
롤랜드 슈나이더 OECD노동조합자문위원회(TUAC) 정책전문위원. 권박효원

한국을 방문한 롤랜드 슈나이더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TUAC) 정책전문위원은 26일 "대졸 신입사원의 임금을 깎아서 일자리를 만드는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의 '잡 셰어링'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오전 9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슈나이더 전문위원은 "노사민정 합의가 이뤄진 지 며칠도 안됐는데 (임금삭감을 결정한) 전경련 방침이 합의 정신에 맞는 것이냐"고 따져물었다.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창출정책에 대해서도 "(실업대책은) 사회 인프라 재구축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대운하사업이 21세기에 필요한 인프라가 될지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행정인턴제를 예로 들어 "국제기준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질좋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냐"고 꼬집기도 했다.

슈나이더 전문위원은 국제노총·국제금속노련·국제공공노련 활동가들과 함께 지난 23일 한국의 노동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방한했다. 국제조사단은 25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는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전가하고 비정규보호법 개정, 최저임금 삭감 등 기업친화적 정책을 추진한다"고 비판했다. 조사단은 "이같은 상황을 ILO(국제노동기구)에 보고하고 2007년 종결된 OECD 한국 감시과정을 재개하도록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인터뷰는 서울 마포의 한 커피숍에서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롤랜드 슈나이더 정책전문위원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한국 정부·사용자단체, 노사민정 합의라도 지킬지..."

권박효원

- 한국의 많은 회사들이 임금을 동결·삭감하고 고용을 유지하려고 한다.
"세계적 경제위기가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압박이 워낙 강해서 임금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시장 수요 부족이 경제위기 원인 중 하나인데, 임금이 삭감되면 수요도 줄어들 것이다. 임금을 줄인다고 고용이 늘어난다는 주장은 뚜렷한 증거도 없다. IMF(국제통화기금)에서는 추가 실업을 막기 위해 GDP 2% 수준 이상의 재정 확대정책을 펼 것을 각국에 권고하고 있다.


전경련이 임금을 삭감해 잡 셰어링 하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그걸로 통할 것 같지 않다. 유럽에서 '잡 셰어링'이란 노동자가 덜 일하고 사용자가 일자리를 더 만드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폭스바겐은 주당 35시간 업무를 28시간으로 줄이고 대신 단 한명도 해고하지 않았다. 덜 일하는 만큼 월급은 줄어들었지만, 시간당 임금은 줄어들지 않았다."

- 한국의 노사민정 합의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사회적 대화에 대해서는 지지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대화하는지가 중요하고 합의과정에 모든 당사자가 참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노사민정 합의가 이뤄진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각자 해석도 다른 것 같다. 사용자단체와 정부가 합의 내용이라도 지킬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전경련의 결정이 과연 합의 정신에 맞는 것인가.


한국 정부만 봐도 최저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시장도 유연화한다고 하지 않나? 노동유연화는 미국식 모델인데, 노동시장 규제가 사회경제적으로 효과적이라는 증거가 많다. OECD는 이전에 미국식 모델을 권했지만, 이제는 노동시장 규제의 효과를 인정한다. 2006년에 조사해보니 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 등이 (미국보다) 생산성도 높고 불평등지수가 낮았다. 실업연금을 확대하고 노동시장에 적극 개입한 나라들이다."

- 국제노조에 가입한 한국노총도 이번 합의에 참여했다.
"한국노총은 나름대로 성실하게 합의하고 좋은 뜻으로 사인했다고 본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관계가 잘 풀렸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 생각한다. 경제위기가 전체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양 노총이 공동 대응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이명박 정부는 행정인턴제·대운하사업 등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실업대책과 관련된) 재정 지출은 사회 인프라 재구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공공 사회서비스가 주축이 돼야 한다. 대운하 건설이 21세기에 필요한 인프라가 될 수 있을지 대단히 회의적이다. 오히려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적 위기에 주목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의 방향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일자리 창출정책에서 중요한 원칙은 그것을 핑계로 노동자의 권리가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ILO 노동기준에 맞게 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행정인턴 문제에서도 좋은 일자리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국제기준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노동권도 행사를 못하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질좋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겠나.

좋은 일자리 창출 위해서라도 강력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고용조건 악화를 막아내면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노조가 노력해야 한다."

"대운하 사업이 21세기에 맞는 사회 인프라인가"

권박효원

- 외국의 노동운동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나 사용자 측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나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함께 해결책을 모색할 주체로 인식하는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전 지구적으로 국제질서가 재구성되는 과정에서는 노동조합 참여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금융시장 규제가 중요한데, 노조 대표자들이 여기에 참여해야 한다. 국제노총과 OECD자문위원회는 오는 4월 런던 G20 정상회담에 맞춰 새로운 국제 금융규제 방안을 제안할 생각이다.

외국에서는 노사민정 같은 사회적 합의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 다만 이탈리아 노조는 (정부와) 정치적 노선이 다르지만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자고 공동 대응을 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8개 노총은 지난 1월 공동총파업을 했고 3월 18일에 2차 총파업을 할 예정인데, 정부에 대해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본다."

-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노동운동의 영향력이 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라고 말한다.
"사실 나는 한국 노동운동의 단점을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한국의 노동법이) 국제 노동기준에 맞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노동조합이 정당한 사회주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한국 노동운동의 역량을 믿는다. 노동법이 국제노동기준에 맞게 개정된다면 잠재력을 발휘해 대단히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 경제위기는 전 세계적인데, 노동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연대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미국과 한국의 자동차노조는 서로 입장이 다른 것 아닌가.
"정치적 상황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공동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 예를 들면, 노동기본권은 어떤 상황에서도 존중되어야 한다.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어야 한다. 공정하게 부를 재분배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기본원칙이 될 수 있지 않겠나.

각국의 노동운동들은 국제적인 실업 증가에 반대하는 행동을 함께 할 수 있다. 특히 수출지향적 경제구조인 독일·한국 등에서는 (사용자 측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임금·노동권 등에서 낮은 기준을 노동자에게 강요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부나 사용자가 주장하는 것은, 내가 보기엔 노동자를 착취해서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잡 세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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