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찍는 사진'과 '잘 꾸리는 삶'

[헌책방 책시렁에 숨은 책 35] 동시와 사진이 만난 <현이네 집>

등록 2009.02.27 15:54수정 2009.02.27 15:54
0
원고료로 응원

- 책이름 : 현이네 집

- 사진 : 최시병

- 글 : 이주홍

- 펴낸곳 : 보리밭 (1983.4.20.)

 

ㅇ문화재단에서 '청소년 문화'를 사진감으로 삼아 100장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틈틈이 '푸름이(청소년)' 삶을 사진으로 담아 보고 있습니다. 적어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돌아가는 한 해를 보내야 겉핥기나마 푸름이 문화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저한테 주어진 시간은 반 해가 채 못 됩니다. 너무 짧아서 겉핥기조차 제대로 못하겠구나 싶은데, 어쩌면 이런 겉핥기 사진을 찍어야 할 때에도 제 깜냥껏 사진을 담아내는 훈련을 하라는 하늘 뜻이 아니랴 싶기도 합니다. 이 겉핥기에서도 무언가 내 나름대로 푸름이를 바라보거나 부대끼면서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을 새롭게 배우라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막상 '푸름이 문화'를 헤아리면서 사진기를 들고 보니, 저 또한 푸름이라는 삶을 거쳐 왔지만, 그동안 느끼지 못한 삶과 누리지 못한 삶이 많았고, 느끼거나 누리면서도 아름답거나 좋다고 받아들이지 못한 삶 또한 많았다고 새삼 돌아보게 됩니다. 사진은 나 아닌 남을 찍는 일이지만, 내 둘레 삶과 삶터를 차곡차곡 담아내는 가운데 내 삶이 보입니다. 둘레 사람 모습과 자취를 담는 사진에 내 삶이 담깁니다. 내가 살아가는 대로 남들 삶이 보이고, 내가 찾아나서는 대로 남들 삶터를 알게 되는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보게 되고 알게 된 다음에 무엇을 하려는가 하는 마음가짐에 따라서, 보았고 알았으니 이제 사진으로 무엇을 할 생각이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풍기는 기운과 넋이 달라집니다.

 

어린이문학을 하고 부산사람인 이주홍님이 쓴 동시에, 사진을 하며 부산사람인 최시병님이 찍은 사진을 엮은 '동시 사진 작품집'인 <현이네 집>을 봅니다. '동시 사진 작품집'은 <현이네 집>에 앞서 1981년에 윤석중 동요에 김녕만 사진으로 <노래가 하나 가득>(일지사)이 나온 적 있습니다. 이주홍님과 최시병님이 <노래가 하나 가득>이라는 책이 나온 줄 모르지는 않았을 테고, 틀림없이 이 사진책을 보고 나서 <현이네 집>을 엮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두 가지 책 모두 어린이가 주인공이고 글감이고 사진감입니다. <현이네 집>에서는 매미잡이, 산골아이, 풀언덕, 병아리, 낙엽, 늙은 배, 마실, 풍선, 소풍, 초가집, 유치원, 눈사람, 요술장이, 그물, 쥐포, 자연보호, 춤, 미역, 모래둑, 비둘기, 조랑말, 3총사, 반친구, 연합운동회, 도라지, 바다의 아들, 고적대, 꼬마낚싯군, 배타기, 도장 아이들, 여름바다, 눈밭 …… 같은 글감으로 쓴 시 하나마다 사진을 하나씩 붙입니다. 가만히 보면 하나같이 아이들 놀잇감이고 아이들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시요 사진입니다. <노래가 하나 가득>도 아이들 놀잇감을 큰 밑거름으로 삼기는 마찬가지인데, 아이들 삶은 그다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글을 쓴 분 삶이 조금 벌어지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자기가 살아가는 대로, 또 자기가 느끼는 대로, 또 자기가 보는 대로 찍을밖에 없는 사진입니다. 글도 자기가 살아가는 대로 씁니다. 그림도 자기가 살아가는 대로 그립니다. 먹고사는 일자리도 자기가 살아가는 대로 찾아서 몸을 바칩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고 할 때에도 자기가 살아가는 대로 알맞는 짝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자기한테 욕심이 있으면 욕심쟁이를 만나고, 자기한테 티끌이 있으면 티끌쟁이를 만납니다. 자기한테 사랑이 있기에 사랑 가득한 사람을 만나거나 사랑 짙은 사진을 찍습니다. 자기한테 믿음이 있기에 믿음 넘치는 사람을 만나거나 믿음 넘실대는 사진을 찍습니다.

 

삶은 달랐으나, 윤석중님 글에 바탕을 둔 <노래가 하나 가득>이나, 이주홍님 글에 바탕을 둔 <현이네 집>은 글감이 넘칩니다. 글쓴이들도 삶이 오늘날 사람과 달리 퍽 넉넉했으며, 글쓴이들이 살던 무렵 아이들은 온갖 놀이를 수많은 동무 언니 오빠 동생들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08년에 접어든 우리가 '동시나 동요'를 쓰고 '어린이 삶을 사진으로 담아'서 '사진 동요 작품집'을 엮는다고 한다면, 어떤 글과 사진을 선보일 수 있을는지요. 요즈음 우리 어른들 삶은 얼마나 고르거나 깊거나 넓거나 넉넉한지요. 요즈음 우리 아이들 놀이나 삶은 얼마나 열리거나 트이거나 깨이거나 홀가분한지요.

 

영어는 잘하지만 고무줄놀이조차 모르는 요즈음 아이들 아닙니까. 한문은 많이 외지만 연과 얼레를 손수 만들어 날릴 줄 모르는 요즈음 아이들 아닙니까. 웬만하면 대학교 졸업장을 다 가지고 있지만, 마음밥이 되는 책을 두루 읽지는 못한 요즈음 어른들 아닙니까. 나라밖 나들이는 여러 차례 다녀왔어도 정작 나라안 골골샅샅 느끼거나 부대껴 보지 못한 요즈음 어른들 아닙니까. 잘 찍는 사진은 틀림없이 크고 훌륭하게 살필 대목이지만, 알뜰히 여미어 잘 꾸리는 삶부터 먼저 챙겨야 할 노릇이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합니다.

덧붙이는 글 | - 사진잡지 <포토넷>에 함께 싣는 글입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2009.02.27 15:54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 사진잡지 <포토넷>에 함께 싣는 글입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현이네 집

이주홍 지음,
해성, 2008


#헌책방 #동시 #절판 #사진책 #사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3. 3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4. 4 "남자들이 부러워할 몸이네요"... 헐, 난 여잔데
  5. 5 고립되는 이스라엘... 이란의 치밀한 '약속대련'에 당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