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만에 동창회를 조직했어요

친구, 그 영원한 그리움

등록 2009.02.27 16:27수정 2009.03.0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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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그래서 친구가 어딜 가자고 하면 거절을 못하고 따라나선다. 내 주변에는 좋은 친구들이 있어 세상을, 사물을 늘 새롭게 만날 수 있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 행복하다. 이제는 나이나 성을 떠나서 마음이 통하거나 색깔이 같으면 금방 마음이 열려 마치 10년지기처럼 편안한 친구가 되곤 한다.

 

유안진 시인이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아름다운 글을 쓸 때가 아마도 지금의 나처럼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어쩌면 내 마음을 그렇게 잘 대변해주었는지 읽고 또 읽어도 물리지 않는 주옥같은 글이다.

 

지난 겨울에는 아버지께서 건강 때문에 서울 오빠네 집에 오래도록 머무셨다. 그래서 아버지도 찾아 뵙고 막내 입학 뒷바라지도 해줄 겸해서 모처럼 2박 3일의 휴가를 얻어 상경했다. 도착하기 전에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만날 장소와 시간을 말하기에 그곳으로 나갔더니 벌써 몇 명의 서울 친구들이 정말 오랜만에 나들이라고 나온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철없는 여학생으로 돌아가 버렸다. 처음에는 좀 늦겠다고 전화라도 드려야지 하다가 바로 찾아 뵙지 못한데 대한 죄송함 때문에 그냥 들어가서 한 번 혼나고 말지 하고는 어울리다 보니 밤이 깊어져버렸다. 그렇게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어울리기 시작한 게 다음날 자정까지 이어져버렸다.

 

이제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자 불안해진 나는 '그래, 잘못했으니 불호령이 떨어지겠지' 하고는 죄인처럼 기어 들어갔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괘씸하게 생각하다가 연락 없이 하루가 가고 다시 다음날 밤이 이슥해져버리자 이제는 걱정하느라 애가 타셨던 모양이다. 서울 바닥에 와서 어디로 잡혀가 버린 줄 알고 걱정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긴 한숨들을 내쉬었다. 덕분에 야단맞지 않고 무사히 넘어갔다. 그때 아버지께서 하신 한 말씀이 나를 두고두고 울렸다.

 

"옛말에도 부모 팔아서 친구 산다는 말이 있단다. 친구 만난 지도 오래 되었을 텐데 잘했다."

 

아, 아버지의 그 한마디 말씀에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도 멀리서 올라온 나를 친구들이 그렇게 따뜻하게 맞이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준 것이 못내 흐뭇하셨던 모양이다.

 

다음 날, 기숙사에 미리 가 있던 아들을 만나서 제일 먼저 나는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좋은 친구는 부모를 팔아서도 산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강조해주었다. 아들은 친구에 대한 많은 말을 들었지만 그런 좋은 말이 있는지는 몰랐다며 할아버지 말씀, 엄마 말씀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프란체스코 알베로니의 우정론에 의하면 "친구는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얻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유롭게 만나는 관계이고, 우정은 그 만남의 구슬들을 섬세하게 꿰어가는 최고의 세공품이어야 한다"고 한다.

 

인격형성의 가장 중요한 유년 시절에 3~9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했던 자유로운 만남만큼 우리를 순수하고 맑게 만들어줄 수 있는 시간이 또 있을까?

 

그렇게 시작한 올 한해는 막내까지 대학을 가버려서인지 유난히 친구들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그 긴 세월동안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친구들이 모여서 불러내면 마다하지 않고 나갔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여기저기 소식도 없이 흩어져있는 친구들을 수소문해서 헤어진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 그리운 얼굴들을 찾아 모으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교장선생님이 되어 계신 고3 때 담임 선생님과 한 자리에서 감격적인 해후를 했다. 그 때 우리에게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강산이 3번 변할 만큼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 세월이 한 것이라곤 고운 얼굴에 겨우 주름살 몇 개 만들어 놓은 것뿐이었다.

 

그러고 나자 이번에는 중학교 모임도 한 번 하자고 야단들이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남녀 공학이었다. 그래서 여학생만 다녔던 고등학교처럼 그렇게 주선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어야겠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 한 번 주선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일은 내 성격상 많은 무리가 느껴졌다. 남학생들과도 연락을 수시로 해야 하는데 연락을 하고 지낸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어렵게 한 사람을 찾아서 일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보석 같은 친구들이 하나 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은 그 기쁨이라니... 그렇게 찾아내고 또 찾아내어 180여 명의 연락처와 함께 모일 자리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한 달 동안 내 삶의 에너지는 온통 동창회로 응집되어 있었다. 그것은 말할 수 없이 충만한 시간이었다. 나를 키워온 시간과 공간에 함께 존재했던 그리운 얼굴들과의 만남은 준비하는 순간부터 복된 시간이었다.

 

가슴 설레면서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친구들은 가지가지 사연들을 접어둔 채,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멀리서 가까이서 달려와 주었다. 1년에 단 한 번뿐인 휴가를 취소하고 달려왔고, 아들 입대하는 날인데도 달려왔고, 객지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짝꿍의 호출을 뿌리치고 달려왔다.

 

그 오래된 기억의 소중한 파편을 주우려고 친구들은 단숨에 달려와서 하나가 되었다. 우정의 힘이 아니고서는 어찌 이런 일이 가능키나 하겠는가. 30여 년만에 이렇게 만난 친구들에게 나와줘서 고맙다고 손잡아 주면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눈물 글썽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들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지며 시간을 마시고 있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그립고 행복한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하늘과 바다를 아름답게 물들이던 곱디고운 석양처럼 내 영혼을 물들여주었다. 그대로 시간이 멈추어주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먼 세월을 거슬러 갔건만 거기서도 시간은 흘러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헤어지기 싫어서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며 우리는 그리움들을 안으로 접은 채 그렇게 헤어졌다. 그 긴 기다림을 그렇게 짧은 만남으로...

 

여러 명의 친구들이 10여 년 동안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전혀 모른 채 살고 있었다. 그 사건은 만일 모임을 주선하지 않았더라면 큰 죄를 지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불과 몇 분 거리에 살면서 수없이 얼굴을 마주쳤을 텐데도 모르고 그냥 스치고 지나치는 안타까운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번 모임에서 가장 흐뭇한 보람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보석 같은 친구들을 찾아낸 것보다도 더 큰 기쁨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그렇게 내 삶의 자리에서 변함없이 내게 주어진 삶의 길을 담담하게 걸어갈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삶이 고단해질 때면 그리운 그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2009.02.27 16:27ⓒ 2009 OhmyNews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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