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고려대 입시 부정 논란'에서 보듯, 예상했던 대로 대학 입시가 특목고생을 위한 잔치가 돼가고 있습니다. 이에 한술 더 떠 이른바 '3불' 정책이 현실에 맞지 않다며 공공연히 문제 삼는 '명문대'도 등장하는 걸 보면,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인정해야 할 분위기입니다.
당장 고려대가 제시한 '마법'의 보정 상수인 알파(α)와 케이(k)에 의해 탈락하게 된 학생과 학부모들은 집단 소송을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그들'이 될 직접적 피해 당사자인 지방의 일반 고등학교의 반응은 그저 무덤덤하기만 합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 그리 놀랄 것 없다는 눈치입니다.
학생도 학부모도 특목고 못 가고, 지방에 사는, 자신의 못난 탓으로 돌리며 어쩌겠느냐고 자신을 위안하는 모양새입니다. 교사는 교사대로 '현실을 직시하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다독일 뿐, 불의한 현실을 향해 분노하는 법을 잃었습니다. 이 또한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인식에 다름 아닙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가 참 이상해져 버렸습니다. 자녀 교육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올인'하는 한국 사람들의 의식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렇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어려울 것 하나 없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입시 부정이, 그것도 모든 이가 선망하는 '명문대'에서 저질러졌는데도 분노하기는커녕 속으로 삭히려고만 합니다.
어쩌면 아이들의 미래가 결정될지도 모르는 대학 입시에서 부정이 행해졌고, 나아가 한국 공교육 전반에 걸쳐 신뢰가 붕괴돼 가는데도 그저 담담하게 바라볼 뿐 별 '대응'이 없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자녀에게 벌어진 일이 아니니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할 뿐입니다.
지방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솔직해져야 합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현실'을 잘 알면서도 아이들 앞에서 드러내놓고 말하는 걸 꺼립니다. 웬만해서는 서울을 따라잡을 수 없음을, 또 웬만해서는 특목고를 넘어설 수 없음을, 그 어떤 족집게 교사가 와서 수업을 해준다 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계층의 벽'이 우리 사회에 엄존하고 있음을 당당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기실 서울의 특목고 학생들은 일반고 학생들을 같은 '부류'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물며 지방에 있는 학교임에랴. 닳을 대로 닳은 기성세대는 그렇다 쳐도, 아직 때 묻지 않은 어린 영혼들조차 그러한 차별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듣자니까 요즘엔 특목고 출신끼리 결혼하는, 이른바 '성골 결혼'이 보편화하는 추세라고도 합니다.
이번 입시 부정 논란과 그것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기는 우리 사회의 무덤덤한 반응으로 보건대, 학교 교육은 더 이상 계층 이동의 통로가 아니며, 학교의 간판을 통해 끊임없이 계급이 재생산되는 '신분제 사회'로 급격하게 퇴행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지방의 중소도시는 물론 대도시의 학교 교문마다 '명문대'에 몇 명 합격했는가를 자랑하는 현수막이 오늘도 내일도 경쟁하듯 내걸립니다. 그중에는 입시 성과가 특목고에 견줄 만하다며 아예 일반고를 한 수 아래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울의 특목고 학생들의 눈에 이러한 지방 학교들의 몸부림이 어떻게 비칠까요. 모르긴 해도 '도토리 키 재기'라며 비웃지 않을는지.
서울과 지방, 특목고와 일반고 사이의 '교육 수준'은 '명문대' 진학률에 의해 이미 그렇게 규정돼 버렸습니다. 엄밀하게 따져 '특수 목적'을 위해 교육하는 학교와 일반 학교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노릇인데도, 이미 특목고가 만들어질 당시부터 우려됐던 '명문대' 진학을 위한 확실한 준비 기관으로 변질돼 버렸고, 끝내 모든 학교 위에 군림한 채 공교육 전체를 무력화하는 주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현실을 직시한다는 건 현실에 만족하고 순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워 정의를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그러한 힘을 기르기 위해 우리는 늘 깨어 공부하며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불의에 참지 못하고 분노하며 저항하는 것이 곧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정의로운 일입니다.
고려대 입시 부정 논란의 시작과 끝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대학 측의 해명을 들어야만 하는 현실은 참담할 뿐입니다. 대체 이 사건을 관심 있게 바라보는 눈이 몇 개인데, 국민들을 이토록 기만하려 드는 것일까요? 우리 국민들은 분노할 줄도 모르고 불의에 둔감해져 버렸다고 여기기 때문은 아닐는지.
사사로이는 고려대 졸업생으로서, '교우'로 불리는 것조차 수치스럽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가능하다면 졸업장조차 반납하고 싶어졌습니다. 여태껏 졸업한 학교를 이렇게 싫어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재학 시절 마음에 간직해야 할 교훈이라며 자유와 정의, 진리를 부르짖던 교수님들은 다 어디 계시며, 또 '민족 고대의 지성과 양심'을 자처하는 학생회 조직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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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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