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왔다, 이참에 노조원 자르자?

[르포] 안산 반월공단... 경제위기 빌미로 정리해고 나선 기업들

등록 2009.03.10 14:41수정 2009.03.1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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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경기 침체로 공장 가동률이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공장 앞에 물류 수송 차량이 운행을 정지한 채 서있다.

경기 침체로 공장 가동률이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공장 앞에 물류 수송 차량이 운행을 정지한 채 서있다. ⓒ 최경준


지난 6일 오후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 내 한 금속열처리 임가공업체. 활짝 열려 있는 정문을 지나서 공장 안으로 발길을 옮겼지만 쥐 죽은 듯 조용하다. 건물 앞으로 나 있는 도로 양쪽으로 대형트럭 10여 대가 즐비하게 세워져 있다. 쇳조각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끔하게 비워져 있는 짐칸은 스산한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3개월 전만 해도 저 트럭들은 거래업체에서 수주한 작업 물량이나 작업을 마친 완성품을 짐칸에 잔뜩 싣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공장을 드나들며 활기를 띠었다. 지금은 수주하러 나가는 트럭도 드물지만, 나갔다 오더라도 짐칸을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돌아온다. 차갑게 식은 트럭 엔진마냥 공장 전체에 냉기가 감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물 왼쪽 입구에 위치한 작업준비실. 직원 한 명이 바닥에 앉아서 공구 정리를 하고 있었다. 아직 공장 가동시간이 끝나려면 2~3시간이나 족히 남았지만, 공구들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작업준비실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녹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다양한 열처리 설비가 늠름하게 버티고 서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연속로라인. 벨트 위에 올려진 금속을 연속으로 이동시키며 고온처리 해 강도를 높여주는 곳이다. 그런데 모두 5대의 장비 중 2대만 가동되고 3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연속로라인 뒤편에서는 2명의 직원만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른쪽은 침탄로라인이다. 9대의 대형 장비가 끝이 희미할 정도로 길게 줄을 서 있다. 정면에 'BATCH로'라고 적혀 있는 장비 한 대, 한 대는 마치 대장간의 가마솥처럼 금속의 강도를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가동 중인 장비 앞부분에는 50센티미터 높이로 붉은 불꽃이 치솟는다. 역시 9대의 장비 중 단 3개의 장비에서만 불꽃이 치솟고 있었다. 게다가 하루 종일 풀로 가동되는 것이 아니라 작업 물량이 있을 경우에만 드문드문 가동된다.

진공로라인이나 고주파 및 중주파 라인, 연질화라인 등 각종 설비 시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공장 내부에서 일하는 직원은 작업준비실을 비롯해 3명이 전부였다. 보통 12~13명이 근무를 하지만, 대부분의 장비가 멈췄기 때문에 그만큼의 인원도 필요치 않은 것이다. 이 업체의 직원들은 현재 순환근무 중이다.

a  경기 침체로 공장 가동률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공장에서 9대의 장비 중 3대만이 가동되고 있다.

경기 침체로 공장 가동률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공장에서 9대의 장비 중 3대만이 가동되고 있다. ⓒ 최경준


"공장 가동률 4분의 1 수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고민"


이 업체에서 7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태동씨는 "대기업 등 원청업체로부터 무리한 단가 인하 요구가 누적돼 오다가 최근 경제 위기가 오면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며 "작년 연말부터 공장 가동률이 급격하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물건 가공을 요청하는 업체가 작년 12월부터 휴업을 하면서 수주 물량도 줄어들었다"며 "메이저 업체는 30% 물량을 감산하겠다고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현장 가동률이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해서는 회사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61.5%로 전월에 비해 0.8%p 떨어졌다. 이는 1980년 9월 61.2%를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2008년 평균가동률은 77.2%를 기록했다. 80.1%로 '정상가동률'을 유지했던 2007년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월별로 보면 1월에 81.3%였던 게 11월엔 68.4%까지 내려앉았고, 12월엔 62.3%로 하락했다. 최근에는 60%대마저 위협받는 등 조만간 사상 최저치를 갈아치울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제조업체들이 느끼는 체감경기 역시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국은행이 2929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달 25일 내놓은 '2월 기업경기조사결과'에 따르면 제조업체의 2월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43으로 전달 47에 비해 4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분기(35, 통계작성 이후 최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업황 BSI는 100을 기준으로 해서 지난 한 달 동안 업황이 부정적이었다고 보는 기업이 긍정적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을수록 낮아진다.

공장이 가동을 멈추면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김태동씨는 "정부로부터 고용 유지 지원금을 받고 순환휴직을 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회사에서 아직 구조조정 얘기는 안 꺼내고 있지만, 공단 주변에서 고용 문제가 나오니까,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경계심과 불안감은 갖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특히 "기업이 정말 어렵다면 노동자들과 함께 살 방도를 찾아야 하는데, 이 기회를 틈타 공격적으로 인위적인 정리해고를 통해서 이윤을 더 챙기려는 기업도 있더라"며 "그런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공장 잘 돌아가는데,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

반월공단에 소재한 (주)동서공업은 자동차 엔진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부품인 피스톤 가공·코팅업체다.

이 회사에 입사한 지 6년이 훨씬 넘은 윤재영(33)씨는 지난달 26일 회사 측으로부터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통보서'를 받았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화를 삭이기는 힘들었다.

"지난해 8월 회사 측과 임단협을 벌이면서 파업에 돌입했다. 그러자 회사는 전례 없이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노조는 결국 파업 중단을 선언하며 회사 복귀를 요청했다. 하지만 회사는 직장폐쇄를 풀지 않았다. 나중에는 직원들을 선별해가면서 복귀시켰다. 어느 정도 공장 가동이 가능해지자, 그때부터 직원들의 복귀를 허용하지 않았다. 정리해고 얘기는 이미 그때부터 나왔다."

이후 회사 측은 한 사람이 한 대의 장비를 관리하는 '1인 1대' 시스템에서 한 사람이 두 대의 장비를 관리하는 '1인 2대' 시스템으로 바꿨다. 자연스럽게 잉여 인력이 나왔고 회사 측은 그들에게 '3정5S', 즉 기계 청소 일을 시켰다.

급기야 회사 측은 지난해 12월 26일 노동부 안산지청에 201명의 조합원 중 51명에 대해 정리해고를 하겠다고 신고했다. 안산시 반월시화공단에 소재한 3000여 개의 업체 중 '정리해고 1호' 업체가 되는 순간이었다. 회사 측은 지난달 25일까지 4차에 걸쳐 희망퇴직을 받았고 희망퇴직자가 36명에 그치자, 다음날 윤재영씨를 비롯해 15명에게 해고를 통보한 것이다.

a  지난달 25일 안산시 반월공단 내 동서공업 노조가 회사측의 정리해고에 반대해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동서공업지회 제공)

지난달 25일 안산시 반월공단 내 동서공업 노조가 회사측의 정리해고에 반대해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동서공업지회 제공)


특히 희망퇴직자나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 대부분은 지난해 파업 당시 회사 측의 회유를 거부하는 등 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이다. 노조 측에서 "이번 정리해고는 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윤씨는 "월급은 적었지만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는데, 이렇게 부당하게 처우 받고 해고된다면 열 받아서 그냥 집으로 가거나 다른 일을 구할 수 없다"며 "싸울 수 있는 만큼 회사와 싸워봐야,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회사 측에서 해고 사유로 내건 '경영상의 이유'가 타당하냐는 것이다.

역시 해고 통보서를 받은 장원(29)씨는 "회사 측은 '경영상의 이유'라고 하는데, 소형차 가솔린 라인은 풀로 돌아가고, 디젤차 가공 라인도 19개 중 11개가 가동될 만큼 잘 돌아가는 편"이라며 "노조에서 국가지원이나 순환근무 등 대안을 내놔도 회사 측은 아예 정리해고를 기본 전제로 깔고 얘기하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춘호 지회장은 "연매출 994억7000만원, 영업이익 40억원, 미처분이익잉여금 140억원인 우량기업에서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를 기회로 노조 자체를 말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지회장은 또 "고용 안정만 보장해 주면 임금 삭감, 상여금 반납, 순환근무 등 모든 것을 양보하겠다고 했지만, 회사 측은 오히려 앞으로 20명 정도는 더 감원이 필요하다는 자세"라며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고 해놓고 마구 자르고 있다. 결국 노동자가 죽어야 회사가 산다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3월위기설 #안산 반월공단 #정리해고 #동서공업 #고용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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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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