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무너지는 것, 잃어버린 것, 사라지는 것

미키 루크 주연의 <더 레슬러>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

09.03.11 09:54최종업데이트09.03.1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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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시작되면 흥분한 아나운서의 해설과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한데로 뒤섞인 가운데 카메라는 레슬러로서 정점에 다다른 '랜디 "더 램" 로빈슨'의 활약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포스터와 신문 기사, 사진들을 훑어 내려간다. 벽 한 면을 가득 메운 '영광의 기록'들에 따르자면 랜디는 설명이 불필요한 최고의 레슬러다. 레슬러가 가질 수 있는 한계치의 인기와 명예 모두 그의 것이었다.

생생하게 들리던 해설과 함성이 이명처럼 사라지자 모든 것은 과거형의 빛바랜 추억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랜디는 여전히 링 위를 지키고 있고, 카메라는 경기를 막 끝내고 탈의실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조심스럽게 관조한다. 매니저가 다가와 파이트머니를 건넨다. 액수를 확인하던 랜디는 맥이 풀리는데, 그런 그에게 매니저는 오늘 관중이 얼마 없었다며 미안해한다.

랜디는 다시 탈의실에 혼자 남게 되고, 영화의 관객들은 이 짧은 씬을 통해 현재 랜디에게 처해진 고달픈 상황의 면면을 인식한다. 그렇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박수칠 때 떠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중들의 무관심과 신체의 노쇠 앞에서 레슬러 랜디는 무너지고 있다. 이 치열하면서 서글픈 붕괴의 과정들은 영화 <더 레슬러>의 첫 번째 방점이 된다.

▲ 영화 <더 레슬러>의 한 장면   ⓒ N.E.W.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한 레슬러.. 처절한 사투가 시작된다!

로드 무비의 대가 빔 벤더스에게 호평을 받아 그대로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더 레슬러>의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여 단어 몇 마디로 영화 전체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이름하야 '유혈 낭자 신파' 혹은 '피바다 멜로'가 되겠는데, 레슬러들의 처절한 사투를 현실적으로 그려내 상처와 출혈이 스크린 곳곳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이는 레슬러를 꿈꾸는 아이를 둔 부모에게 굉장한 경각심을 줄 것이다)

하드코어(Hardcore)를 넘어 고어(Gore)에 가까운 레슬링 경기 맞은편에는 퇴물 레슬러 랜디와 아이를 둔 스트리퍼 캐시디와의 멜로, 그리고 낙제에 가까운 아버지 랜디와 그를 애써 잊으려는 딸 스테파니 사이의 가족 신파가 부담스럽게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멜로는 역할이 뒤바뀐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연상시키고, 부녀(父女) 이야기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떠올리게 한다. 하기야 이 영화의 중심 소재라고도 할 수 있는 레슬링 역시 디스커버리와 같은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빈번하게 등장했으니 새로운 것도 아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레슬러>가 특별한 이유는 레슬러 랜디와 그를 연기한 배우 미키 루크의 삶이 일치한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지난 부산 국제 영화제에선 왕년의 액션 배우 장 끌로드 반담이 고향 우체국에 들렸다가 강도들에게 붙잡혀 말 그대로 '고해성사'를 하는 내용의 영화 <JCVD>가 상영됐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더 레슬러>는 미키 루크의 자서전 내지는 무릎팍 도사 미키 루크 편처럼 느껴진다.

기존의 신파극 코드를 답습하고 있는 <더 레슬러>는 미키 루크의 존재로 인해 그 진정성을 함부로 의심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긋고 있다. 80년대 헐리우드를 풍미한 거성(巨星)의 자리를 누리다가 돌연 복서의 세계에 입문, 경기 도중 얻은 얼굴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감행한 성형 수술의 부작용으로 영화배우로서의 화려한 경력과 가정 모두를 잃은 미키 루크의 개인적인 삶은 자연스럽게 랜디와 겹치게 된다. 이 슬픈 오버랩을 누가 진부한 신파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 영화 <더 레슬러>의 한 장면   ⓒ N.E.W.


관객은 영화의 레슬러들이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가 아닌 지방의 체육관이나 클럽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WWE는 단체명에서 알 수 있다시피 레슬링과 오락 쇼의 경계를 무너트린 세계 최대 규모의 레슬링 조직인데, 미국의 각 주뿐만 아니라 전 세계 투어를 돌아다니며 각국의 케이블 방송으로 경기 실황을 방영하는 거대 단체다. 간단하게 미국 레슬링의 판을 양분하자면 WWE로 대변되는 주류와 방송과 대중적인 관심으로부터 소외된 지역 체육관과 같은 비주류로 나눌 수 있다.

물론 <더 레슬러>의 랜디와 그의 동료들은 후자에 소속된 퇴물 레슬러 내지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를 오는 레슬링의 주변인들이다. 그들은 화려한 무대와 조명, 방송용 카메라,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관중들의 열광 대신 허름하고 남루한 뉴저지 근교에서 만취한 관객들의 주정과 야유를 들으며 시합에 임한다. 여기서 관객들은 오로지 격렬한 싸움과 피를 원하는 콜로세움의 잔인한 로마 시민들이고, 레슬러들은 사자와 사투를 벌이는 가망 없는 검투사다.

관객들의 주관심사는 정교한 기술과 정직한 땀의 시합이 아니라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유혈 사태에 있다. 그런 광적인 흥분 속에서 레슬러들은 깨진 유리 조각 위에서 몸을 뒹굴고 서로에게 스템플러의 철침을 박는다. 누구를 위한 경기인지, 무엇을 위한 레슬링인지는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렸고, 그 자리에는 지긋지긋한 현실과 생계, 그리고 억압된 욕망의 배출만 남겨져 있는 상태다. 그리하여 랜디의 몸짓은 점점 절망으로 치닫고, 붙잡고자 하는 과거는 더 멀어져만 간다.

▲ 영화 <더 레슬러>의 한 장면   ⓒ N.E.W.


  누구를 위한 경기인가, 무엇을 위한 레슬링인가

그러던 차에 정확한 인과관계처럼 랜디에게 심장발작이라는 신체의 위기가 찾아오고 그는 은퇴를 선언한다. 새로 시작한 샐러드 바의 일도 점차 적응해나가고, 불가능할 줄 알았던 가정의 문제 역시 차차 화해 국면으로 진행되면서 랜디는 자신에게 시작될 새로운 삶에 감격을 느낀다. 그렇게 인생이 풀리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모든 기대는 실망으로 종결되고 절박해진 랜디는 결국 아픈 몸을 이끌고 시합을 나서게 된다.

영화의 결말은 무엇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은 동시에 너무도 명백하다. 또한 관객이라면 랜디의 무리한 선택을 고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터이다. 그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너무도 적었고, 링으로의 복귀라는 카드는 어쩌면 최악이면서 최선이었을 지도 모른다. 랜디의 말처럼 세상은 철저히 무관심했으며 그의 소박한 요구를 들어주지도, 들어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되고 아니나 다를까, 심장발작이 랜디를 엄습한다.

이제 할 만큼 하지 않았냐는 상대를 뿌리치고 랜디는 자신의 피니쉬 기술인 "램 잼"을 위해 로프 위로 올라간다. 관중들은 그의 심장이 터지든 말든 아무 관심 없이 소리를 질러대고, 대기실의 캐시디는 이미 떠나고 보이질 않는다. 쓰러진 상대를 향해 랜디가 몸을 날리는 순간 그것은 의미 그대로 그의 마지막 동작이 되어 확장(혹은 소멸)된다. 카메라는 여전히 랜디가 있었던, 지금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고정되어 있고 그칠 줄 모르는 관중들의 함성은 아득해져 간다. 그는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 영화 <더 레슬러>의 한 장면   ⓒ N.E.W.


우울한 사회의 우울한 파노라마

요 근래에만 나는 울고 있는 여성을 세 번이나 보았다. 그들은 모두 아주머니였으며 거리, 혹은 전철에서 황망한 표정으로 넋을 잃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없이 말이다. 사람들은 거리의 가로수나 전철의 광고지 지나치듯 무심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스냅 사진처럼 짧은 광경에 나는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받았다.

위의 목격은 MB 집권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며 나는 이것을 붕괴하는 사회의 편린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의 관심도 없는 곳에서 소리 없이 붕괴하던 것들이 이제는 거리로 나와 보다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현상들을 만들고 있다. 사회는 끝없이 소멸해가는 것과 거리를 멀찌감치 두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이란 최면과 함께 애써 현상을 잘라내고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붕괴는 확산될 것이며 설마는 곧 사람을 잡을 것이다.

부시와 MB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의 극점, 혹은 끄트머리에서 이 사회의 많은 것들은 무너지고, 잃어버린 후에 결국은 사라지고 있다.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랜디처럼 끝을 향해 "램 잼"을 날릴 것인지, 술에 취한 관중이 되어 환호성을 지를 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있다. 보다 고무적인 대안을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나의 생각이다.

더 레슬러 미키 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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