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 파자마 바람에 최루탄 맞아 죽었다고?"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 4·11민주항쟁 49주년 맞아 기념행사 열어

등록 2009.04.11 16:15수정 2009.04.1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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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표지석 앞에 국화가 놓여 있다.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표지석 앞에 국화가 놓여 있다. ⓒ 윤성효


a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용마고 학생들이 헌화하고 있다.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용마고 학생들이 헌화하고 있다. ⓒ 윤성효


1960년 4월 11일 오전 11시 마산 앞바다. 한국 현대사에 큰 이름을 남긴 김주열(1943~1960)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떠올랐다. 남원 출신인 김주열은 마산상고(지금의 용마고) 신입생으로 합격한 상태였다.

11일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마산·남원)는 4·11민주항쟁 49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를 열었다. 50주년을 1년 앞두고 기념식·학술토론회를 연 것은 김주열에 대한 오해·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최근 들어 마산 등지에서 김주열과 관련해 잘못한 주장들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는 것.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는 대표적으로 민주화기념사업회가 발행한 월간지 <희망세상> 78호(2009년 3월)에 실린 "촛불항쟁을 닮은 시민혁명의 첫 효시 마산 3·15의거 현장을 찾아서"와 3·15 관련 한 단체 관계자가 했다는 발언을 꼽았다.

<희망세상>에서는 김주열에 대해 "무학초등학교 옆 이모 할머니 댁에서 시위를 구경하러 나왔다가 변을 당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추모사업회는 "그동안 김주열을 끊임없이 폄하해온 사람들이 박수로 환호할 일"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그 글을 쓴 작가한테 그같이 설명한 근거를 대라고 했더니 '자료가 아니라 마산에서 사람들에게 들었다'고 했다"면서 "그 작가는 '마산에서 만난 사람이 10명쯤 되어 그중에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단체는 "49년 전 전혀 없었던 김주열에 관련된 이런 식의 폄하 발언이 몇 해 전부터 시중에 유포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고, 그 진원지가 어딘지 진작부터 짐작하고 있었다"면서 "김주열을 폄하, 왜곡하기 위해 음해성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다니는 자들을 찾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추모사업회는 3·15 관련 단체 관계자가 김주열을 왜곡했다며 최근 내용증명을 보냈으나 답변이 없었다고 밝혔다. 마산에서 3·15 관련 단체는 5개가 있다. 추모사업회는 3·15 관련 단체 관계자한테 보낸 내용증명을 구체적인 단체 이름과 관계자의 이름을 지운 채 학술토론회 자료집에 담아 놓았다.


추모사업회는 "3·15 관련 단체 관계자가 지난 15일 마산에서 김주열과 관련해 '김주열이 무슨 열사냐? 턱도 없이 그 애를 무슨 열사, 열사 하느냐, 김주열이는 그날 밤에 데모 구경 나와서 파자마 바람에 최루탄 맞아 죽었다'는 발언을 큰소리로 자신있게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추모사업회는 "김주열이 파자마 차림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할 것"과 "김주열이 구경하다 죽었다는 증거 자료를 제시할 것", "김주열을 열사로 부를 수 없는 논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추모사업회는 "3·15 관련 단체 관계자는 답변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a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는 11일 김주열 열사의 시신 인양 장소인 마산 부두에서 '4·11 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열사 추모 기념식'을 거행했다. 사진은 친혼무를 추는 광경.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는 11일 김주열 열사의 시신 인양 장소인 마산 부두에서 '4·11 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열사 추모 기념식'을 거행했다. 사진은 친혼무를 추는 광경. ⓒ 윤성효


a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 윤성효


4·11민주항쟁 49주년 기념식 열려

이날 오전 마산 중앙부두 시신 인양지에서는 추모식이 열렸다. 진혼무와 추모가 공연에 이어 묵념과 기념사, 추모사, 헌화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이날 기념식에는 김주열 열사의 모교인 남원 금지중학교 모평엽 교장과 교사, 36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또 김주열 열사가 입학생으로 합격했던 용마고(옛 마산상고) 학생들이 참여했다.

백남해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마산) 대표는 "변한 것은 역사적인 진실이나 사실이 아니라 사람이다"면서 "3·15의 상징인 김주열 열사를 폄하해도 어떠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없다. 김주열 열사가 바로 3·15이기 때문이며, 김주열이라는 이름이 바로 역사이기 때문으로, 그를 부정하는 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해에 의하여 또는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곡해된 말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모두 털어버리시기 바란다"면서 "김주열 열사는 남원의 아들로 태어나 마산의거의 상징이 되었으며, 대한민국의 민주 열사가 되신 분"이라고 덧붙였다.

박영철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남원) 대표는 "김주열 열사를 고리로 하여 동서가 화합하고 국민이 통합하여 남북이 통일되는 바탕을 마련하고자 했다"면서 "이것이 저희들의 꿈이고 소망이며 최종 목표다"고 말했다.

이날 이경희 대표는 김영만 전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 대표가 쓴 "추락하는 김주열은 날개가 있다"는 제목의 시를 낭독했다.

a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백남해 대표와 박영철 대표가 헌화하고 있다.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백남해 대표와 박영철 대표가 헌화하고 있다. ⓒ 윤성효


a  '4·11민주항쟁 49주년'을 맞아 11일 오후 마산시청에서 김주열 열사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4·11민주항쟁 49주년'을 맞아 11일 오후 마산시청에서 김주열 열사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 윤성효


이만열 명예교수 "마산의거의 동인"

a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 윤성효

이날 오후 마산시청 강당에서는 "김주열, 4월 혁명의 횃불에서 동서화합의 희망으로"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안승욱 경남대 교수의 사회로,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와 홍중조 전 <3·15의거사> 편찬위원장이 기조발제했다.

이만열 명예교수는 "4월 11일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면서 재발된 마산의 재항거는 사실상 4월 혁명의 가장 중요한 추동력의 하나였다"면서 "4월 혁명은 마산과 김주열을 언급하지 않고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이 인양되었을 때 그것이 김주열의 것이라고 마산 사람들이 금방 인식하게 된 데에는 20여 일 동안 마산에서 아들을 찾기 위해 헤매면서 아들을 찾아 주기를 호소한 김주열의 모친 권찬주 여사의 노력이 크다"면서 "이것은 또 하나의 마산의거의 동인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권 여사가 지극한 정성으로 아들 찾기에 힘썼고 그 노력이 마산시민들에게 각인되었기 때문에 시민들은 젊은 학생의 시신이 인양되었을 때 곧 그가 김주열임을 확인하게 되었다"면서 "권 여사가 그 뒤 마산의거 희생자 추도식에 참석하여 유가족을 대표한 인사말에서 '민주주의 국가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남은 3형제를 다 바쳐도 아까울 것이 없다'는 말로써 가히 민주열사의 모친다운 결의를 내보였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말을 상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이만열 명예교수는 "작년에 건국 60주년이라 하고 광복절을 건국절이라 한 뉴라이트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듯한 정부의 태도는 망국적이다, 그것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다,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이 한국정부의 역사인식으로 된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고 밝혔다.

홍중조 위원장 "김주열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a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 윤성효

홍중조 위원장은 "그날 11시경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는데, 그는 사람의 모습이 아닐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3·15는 부정선거에 항거해서 일어났는데, 김주열의 시신이 떠오른 뒤 시민들의 구호가 '김주열을 살려내라'거나 '책임자를 처벌하라'로 바뀌었고, 시민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어났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김주열은 떠오를 때는 흰살이었는데 햇볕을 보니 부패가 되어 불어났고, 가마니를 깔고 덮었으며, 시민들이 보고서는 눈이 뒤집어져서 그 시체를 메고 시위를 하려고 했는데 순경들이 말려서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그때가 역사의 분수령이었다"라고 말했다.

홍중조 위원장은 "김주열은 참혹한 시체로 나왔으나, 개인적으로 보면 죽은 시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민주의 화신이고, 남원의 아들이 마산의 영웅이 되었고 전국적으로는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그는 "3·15 데모 뒤 '공산당과 연계됐다'는 등 공포 도시 분위기였는데, 김주열의 시신이 나타나면서 달라졌다"면서 "일부에서 '파자마 바람으로 데모를 했느니', 데모를 했느니 안 했느니' 하는데 김주열을 폄하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년이 50주년인데, 마산중앙부두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김주열의 동상을 세워야 할 것이다. 남원 금지중과 용마고 학생들이 왔다 가는 정도로는 해서는 안 되고, 김주열 관련 행사를 크게 하도록 힘을 모으는 것이 3·15의 위상을 제고하고 4·19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다"고 밝혔다.

a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사진은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과 마산 중앙부도 앞 바다.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사진은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과 마산 중앙부도 앞 바다. ⓒ 윤성효


남재우 "김주열 추모가 동서화합 기여"

남재우 창원대 교수는 "당시 보도한 언론마다 조금씩 표현이 다른데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이 시체는 19세가량의 학생풍인데 위에는 메리야스를 입었고 아래에는 학생복을 입고 있었다'고 해놓았으며, 이우태(당시 마상산고 3년) 선생은 '11일의 데모는 조직적인 데모가 아니라 경찰의 반인간적인 행위에 분노한 시민들의 울분의 폭발이었다'고 밝혔다"고 소개했다.

남 교수는 "김주열을 기념하는 것만으로도 동서화합에 기여하는 일일 것"이라며 "현재까지 김주열추모사업회에서 추진해 온 대부분 행사들은 김주열이 태어난 남원 지역과 함께 해왔으며, 그것 자체가 동서화합의 바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김주열이 항쟁을 주도했든, 구경꾼이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김주열의 주검으로 인해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a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 윤성효


a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백남해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백남해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윤성효


이날 토론회에서 남두현 전 열린사회희망연대 사무국장은 "3·15의거기념사업회가 3·15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기에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가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송순호 마산시의원은 "마산에서 3·15의거기념사업회가 있는데 별도로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가 있을 필요가 있어야 하느냐거나 3·15의거기념사업회 안에 들어오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많은 사람들은 김주열을 통해 3·15를 더 가깝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 시의원은 "요즘 일부는 김주열을 폄하는 소리를 하는데, 김주열을 폄하는 진원지가 다른 곳이 아닌 3·15 관련된 사람이거나 단체라고 본다"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김주열에 대해 부정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인데 폄하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3·15와 관련된 사업이나 일을 독점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다고 본다. 단체는 연대하고 사업은 교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효근 남원 금지중 교사는 "김주열을 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의식 없는 필부의 말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참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그 말을 접하는 순간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전교생들과 왔는데 학생들이 이런 말을 들었을까 조심스러웠다"면서 "김주열이 없었더라면 3·15와 4·19는 없었을 것이며, 김주열을 부정하면 민주세력을 분열시키고 수구보수세력에 힘을 주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영만 전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 대표는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혀 떠오른 4월 11일을 '국민기념일'로 제정하자"고 제안해 관심을 모았다.

이날 기념식과 토론회에는 이경희 경남진보연합 대표와 송순호·이옥선 마산시의원, 박종훈 경남도교육위원, 조영건 전 경남대 교수, 이은진 경남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최중근 남원시장은 조화를 보내오기도 했다.

a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이경희 경남진보연합 대표가 시를 낭독하고 있다.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이경희 경남진보연합 대표가 시를 낭독하고 있다. ⓒ 윤성효


a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송순호.이옥선 마산시의원이 헌화하고 있다.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송순호.이옥선 마산시의원이 헌화하고 있다. ⓒ 윤성효


"추락하는 김주열은 날개가 있다" ... 김영만의 시

"김주열이는 데모 구경하다가 죽었다"/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모든 게 무정한 세월 탓인줄만 알았습니다

"그 나이 어린 것이 뭘 알아서…"/이 말은 군사독재정권 밑에서 오래 살아 온 탓이라 생각했습니다

"오데 주열이만 죽었나 여러 명이 죽었는데 뭘 벨시럽거로…"/이 말 듣고는 이성도 지성도 단숨에 마비시키는지역감정이 주범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김주열이는 파자마바람에 죽었다"/너무나 당당하게 내뱉는 이 말에 숨이 컥 막혀/시신인양 사진에 검은 바지에 티셔츠 입었더라고 말하는 것도 잊었습니다

"열사는 무슨 열사!"/바로 이때 눈이 확 뜨였습니다/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사실인양 진실인양/마치 도둑방귀 뀌듯 실실 흘리고 다니는 자들이 눈에 잡혔습니다

바로 그들이었습니다/누가 3.15 3자만 써도 눈알을 부라리는 바로 그들/마산에서 3.15는 힘이요, 권력입니다/3.15 명함 한 장 내밀면 과거불문 민주인사요/경력불문 정의투사요, 이력불문 자유천사니까요

힘은 나누기를 싫어하고 권력은 독점을 좋아합니다/그러니 이 물 좋은 3.15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이 많아/이젠 주열이 바짓가랑이 잡고 잠옷이라 몽니부리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그들에게 김주열은 3.15의 액세서리에 불과할 뿐이지요/판 따라 분위기 맞추어 귀에다 코에다 손가락 발가락에/붙였다 뗏다 하는 노리개/그 이상의 김주열은 그들에게 역모요 반란이니까요

1960년 4월 마산은 김주열이요 김주열은 마산이었습니다/그래도 김주열이는 데모 주동자로 아니라고 시비건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마산시민 모두가 3.15 주동자였으니까요/그 때 대한민국은 마산이요 4.19는 김주열이었습니다/4·19도 혁명도 마산이 진원지요 김주열이 기폭제였으니까요

세상 겁나게 변했네요/아니 우습게 변했네요/이젠 주열이 눈에 최루탄이 박혀 죽은 곳이/이모할머니 집 근처라는 게 다 문제가 되네요/누가 오라고 누가 가자고 꼭 그래서 그런 것도 아니고/그냥 길가다 성난 함성 속에 뛰오들기도 하고/일터나 집 앞에서 성난 데모대 만나 기다린 듯 휩쓸려/너도 파도 나도 파도 거대한 노도가 되어/밀렸다가 밀려오며 앞도 뒤도 되고/죽고 다친 곳이 집근처면 모두 구경하다 당한 건가요, 허어 참

정말 세상 많이 변했네요/무섭게 변했네요/4월 혁명 횃불 김주열도/차면 넘어지고 밀면 떨어지네요/근데 이건 알아야 해요/당신들이 추락시킨 김주열에겐 날개가 있다는 것을/한쪽 날개는 역사의 진실이요/다른 한 쪽 날개는 민주의 혼이지요

당신들/두 눈 바로 뜨고 쳐다봐요/3.15 4.19의 민주제단에 몸 바치신/186명의 민주열사들, 그 속에 김주열/소통과 화합을 위한 186 김주열 대장정.
#김주열 #3.15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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