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건호' 목소리로 읽는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

[헌책방 책시렁에 숨은 책 39] 1976년 탐구당 문고판, 《한민족과 그 예술》

등록 2009.05.05 14:52수정 2009.05.0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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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한민족과 그 예술

- 글쓴이 :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 옮긴이 : 송건호

- 펴낸곳 : 탐구당 (1976.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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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건호 님이 옮긴 야나기 무네요시 님 책. ⓒ 최종규

송건호 님이 옮긴 야나기 무네요시 님 책. ⓒ 최종규

야나기 무네요시님 책이 우리 나라에 몇 가지가 있는가 하고 더듬어 봅니다. 2008년에 나온 《수집이야기》(산처럼)는 당신이 손수 쓴 글입니다. 2007년에 나온 《야나기 무네요시의 두 얼 굴》(지식산업사)은 정일성이라는 분이 쓴 비평입니다. 《조선과 그 예술》(신구문화사)이 2006년에 새 번역으로 나왔고, 일본사람 나카미 마리라는 분이 쓴 《야나기 무네요시 평전》(효형출판)이 2005년에 나왔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미의 법문》(이학사)은 2005년에, 《조선공예개관》(동문선)은 1997년에, 《다도와 일본의 미》(소화)는 1996년에, 《조선을 생각한다》(학고재)는 1996년에 나왔습니다. 그 사이, 야나기 무네요시 님을 비평하는 책으로 《이데카와 나오키-인간 부흥의 공예》(학고재,2002)와 《이인범-조선예술과 야나기 무네요시》(시공사,1999)가 나왔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예전 책을 살피면, 1970년대 첫머리부터 1980년대 첫머리까지, 몇 가지 야나기 무네요시 님 책이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한국과 그 마음》(지식산업사,1974)이라든지, 《공예문화》(신구문화사,1976)라든지, 《광화문의 마음》(소금,1980)이라든지 하면서.

 

짤막짤막하게 읽히는 글은 많고, 교과서에서도 야나기 무네요시 님을 다루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나기 무네요시라고 하는 한 사람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두루 돌아볼 만한 글이나 책은 마땅치 못합니다. 또한,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사람이 바라본 '일본 사회와 문화' 이야기는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1976년에 나온 《공예문화》하고 1996년에 나온 《다도와 일본의 미》에다가 2005년에 나온 《미의 법문》 세 권이, 모자라나마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가를 돌아보도록 도와줄 뿐입니다.

 

조금 더 알아보니, 야나기 무네요시 님은 1910년에, '무샤노코지 사네아쓰(武者小路實篤)'라는 분하고 '시가 나오야(志賀直哉)'라는 분과 《시라카바(白樺)》라는 문예잡지를 엮었다고 합니다. 1961년에 '무샤고오지 사네아쓰 인생론집(이때는 '무샤고오지'라고 적혀서 나왔습니다)' 여섯 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분이 쓴 《석가의 생애와 사상》(현암사)이 1963년에 나오기도 했고, 그 뒤로 이분이 쓴 불교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몇 가지 나왔습니다.

 

... 일본에는 아직도 옛날의 식민주의적 잔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우리를 업신여기거나 재진출을 꾀하는 층이 있음에 비추어, 그들에게 저자세로 영합하는 친일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 한편 일본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두 나라의 참된 우호를 위해서는 실로 우리 민족을 이해하고 협조를 아끼지 않는 양심적 인사들이 많다는 점에서, 일본을 무조건 증오하고 배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일본의 대한 태도에 있어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환영하고 고맙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분명히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  《한민족과 그 예술》 옮긴이 말(송건호)

 

고작 스무 해밖에 안 된 일이지만, 제가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이름을 처음 듣던 때,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짙게 들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이분을 가르치는 교사들 목소리에는 '조선을 이해한 사람'인 한편, '조선 예술을 한쪽으로 얽매어 놓은 사람' 두 가지였습니다.

 

저로서는 교사와 교과서가 말하는 이 두 가지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을 이해한 사람'으로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사람을 들면서, 정작 '조선을 이해한 조선사람'은 누가 있었는가를 가르치지 않았거든요. 고유섭도, 이능화도, 백남운도, 전형필도, 조자용도, 예용해도, 한창기도 말하지 않았을 뿐더러(아마 학교교사 가운데 이러한 분들 책을 한 권이나마 찾아서 읽었다거나, 모자라나마 《뿌리깊은 나무》 같은 잡지라도 들춰보았던 분은 없었으리라 봅니다), 띄엄띄엄 이름은 말해 주었어도 이분들 책과 발자취는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 다 저 혼자서 헌책방을 돌며(새책방에서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찾아낸 책을 옥편을 뒤져 가면서 읽으며 알아갈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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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 무네요시 님 책은 <조선과 그 예술>로 일본에서 나왔습니다. ⓒ 최종규

야나기 무네요시 님 책은 <조선과 그 예술>로 일본에서 나왔습니다. ⓒ 최종규

나라안에서 야나기 무네요시 님 이야기가 나오는 모습을 헤아리면, 이분 책이 좀더 낱낱이 여러 갈래로 옮겨졌어야 옳습니다만, 참 보잘것없을 만큼 살짝살짝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번역된 책조차 제대로 읽힌다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물며, 나라안에서 문화를 하니 예술을 하니 뭐를 하니 하는 사람들 가운데 고유섭, 이능화, 백남운, 전형필, 조자용, 예용해, 한창기 같은 이름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되겠으며, 책이나마 한두 권 뒤적여 보기라도 했을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게다가 이분들 책은 하나같이 판이 끊어졌거나, 지나치게 비싸게 다시 나오는 바람에 쉬 찾아 읽기 어렵게 되어 있거나, 옛날 한문투 글월을 요즈음 말투에 알맞게 풀어내지 못한 탓에 찬찬히 새겨읽기 어렵곤 합니다.

 

.. 부끄러운 이야기이나, 역자는 우리 민족의 예술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고 큰 관심도 없는 일개 무식꾼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번 유종열 씨의 글을 통해 비로소 눈을 크게 뜨게 된 것은 무엇보다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8ㆍ15 해방과 독립 후 만약 뜻있는 인사라도 있었으면, 그를 한 번쯤 이 땅에 초청함직도 했었으나, 6ㆍ25 등 민족적인 불행이 거듭되는 가운데 사랑하는 민족이 바다 건너에서 전란 속에 신음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선의 예술'의 나라 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1960년 73세를 마지막으로 영면의 객이 된 것은 생각할수록 애석한 일이다 ..  (옮긴이 말/송건호)

 

'조선 예술을 한쪽으로 얽매어 놓은 사람'이라는 목소리, 또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 독립을 바라지 않았다'는 목소리는 어느 한편으로 옳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또 곰곰이 헤아릴 대목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러한 목소리를 내는 우리들로서는 '우리 스스로 이 나라가 참된 독립을 바란다고 할 때, 참된 독립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하나와, '우리가 참 아름다움과 기쁨을 찾아서 가꾸어 나갈 우리 삶과 문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두 가지를 먼저 슬기롭게 풀어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예순 해가 지난 2000년대 오늘날, 야나기 무네요시를 이야기한다면 어떤 뜻에서 이야기를 하는가 곰삭여야 하며,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 땅과 사람과 삶을 얼마나 가까이에서 살갗으로 느끼면서 펼쳐내고 있는가를 되새겨야지 싶습니다. 나라안 사람이 문화와 예술을 한다고 할 때에도 '잘못 보'거나 '엉뚱하게 보'거나 '권력자 입맛에 맞게 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목소리와 눈길을 한 자리에 놓고서 야나기 무네요시를 받아들이거나 따져야 한다고 느낍니다.

 

제가 야나기 무네요시를 읽는 뜻은, 이분 책에 여러모로 아쉬움이나 모자람이 있기도 할 터이나,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고맙게 새길 수 있고, 모자람은 모자람대로 제가 채워서 익히면 되며, 고마움은 고마움대로 잘 받아먹으면서 이 땅에서 튼튼한 한 사람으로 살아갈 길을 곱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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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차 문화' 이야기책. 이와 같은 책을 먼저 읽지 않고서 야나기 무네요시 님 삶과 문화와 문학을 섣불리 이야기하면, 우리 스스로 외곬에 갇힐 수 있습니다. ⓒ 소화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차 문화' 이야기책. 이와 같은 책을 먼저 읽지 않고서 야나기 무네요시 님 삶과 문화와 문학을 섣불리 이야기하면, 우리 스스로 외곬에 갇힐 수 있습니다. ⓒ 소화

꼭 차례를 두어야 하지는 않겠지만, 야나기 무네요시를 읽는다고 할 때에는, 《공예문화》와 《다도와 일본의 미》와 《미의 법문》을 먼저 읽은 다음, 《조선과 그 예술》하고 《조선을 생각한다》를 읽어야지 싶습니다. 이분은 조선 문화와 예술'에도' 마음을 쏟은 사람이지, 조선 문화와 예술'에만' 마음을 쏟은 사람이 아니니까요. 깜냥이 깊다면 깊다고도 할 터이나, 깜냥이 얕다면 얕은 우물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앞뒤를 살피고 생각깊이를 돌아보며 발자취를 더듬어야지 싶습니다. 그리고, 이분이 미처 넘지 못한 울타리를 우리 스스로 느끼고 있다 한다면, 이 울타리가 무엇인지를 우리 나름대로 좀더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우리 스스로 갇힐 수도 있었을 울타리는 남김없이 허물거나 훌쩍 뛰어넘으면서, 우리 문화와 예술을 껴안고 사랑할 수 있으면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그나저나, 1976년에 탐구당에서 펴낸 손바닥책 《한민족과 그 예술》은, 1975년에 〈동아일보〉 편집국장 자리를 스스로 물러난 송건호 님이 우리 말로 옮겼네요. 회사에서 후배 기자를 자꾸자꾸 억지로 내쫓는 모습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기꺼이 사표를 낸 송건호 님은, 그 뒤 외국어대와 국민대에 강의를 나갔고, 한양대에서도 강사로 일합니다. 대학 강사로 일할 때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때 부지런히 책을 써내었습니다. 어린이 위인전을 쓰기도 했는데, 이처럼 나라밖 책을 우리 말로 옮기는 일도 하셨군요.

 

송건호 님 해적이에는 '송건호 님이 우리 말로 옮긴 책'이 하나도 밝혀져 있지 않은데, 헌책방마실을 하다 보면 '송건호 번역' 책을 드문드문 만납니다. '송건호 님이 쓴 어린이 위인전'도 해적이에는 나오지 않으나, 헌책방마실을 하며 어린이책을 뒤적이다가 때때로 만납니다. 잊혀진, 또는 잊어버린, 또는 아예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은 발자취 하나를 가만히 더듬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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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과 그 예술 - 탐구신서 92

유종열,
탐구당,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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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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