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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 영화 맞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로 돌아온 홍상수 감독

09.05.11 08:42최종업데이트09.05.1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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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늘 어딘가로 떠난다. 늘 술을 마신다. 늘 여자에게 껄떡댄다. 홍상수 영화 속 변하지 않는 공식이다. 하지만 뭔가 달라졌다. 본능에만 충실했던 사람들이 이제 서서히 주위를 둘러본다. 마음의 안식을 찾고자 한다. 거기에 유머와 재치까지 실었다. 어느 정도 여유를 찾았다. 홍상수 감독의 아홉 번째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이야기다.

출연료 없는 저예산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포스터 ⓒ 스폰지

홍상수 감독은 영화를 만들었던 십분의 일에 불과한 저예산으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완성했다고 한다. 열세명의 스태프와 출연료를 안 받는 의리를 불사른 배우 김태우, 고현정, 엄지원 등과 함께 좀 살고, 좀 배운 이들의 위선에 대한 풍자를 또 한 번 선보인다.

주인공인 영화감독 구경남이 제천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초정이 되고 거기서 만나게 된 절친 부상용의 집에서 술을 마시며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제주도 특강 뒤풀이 중에 만나게 되는 선배 화백의 아내 고순과의 이야기 둘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구도는 <생활의 발견>과 <해변의 여인>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일반 대중이 친숙하게 느끼고 즐기며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극장전>이나 <생활의 발견>, <강원도의 힘>등을 놓고 봤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작가주의 영화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이번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그런 편견 없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일상성과 리얼리즘의 대표감독 홍상수

일상성과 리얼리즘을 강조한 그의 영화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다. 민재는 극장에서 표를 팔다가 짬을 내 청기 백기 게임의 멘트를 녹음한다. 13년 전의 영화에서 고단한 여자의 일상이 기억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감독의 숨은 의도나 상징을 파악해야 하는 어려운 영화들 속에서 등장한 홍상수식 영화의 새로움 때문이다.

뒤를 이은 영화 <강원도의 힘>과 <오수정>,<생활의 발견>으로 홍상수의 영화는 일상적인 내용의 맥을 이었으며 그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장르와 같이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면서 관객들은 홍상수 감독의 골수팬이거나 외면하거나 둘 중 하나로 갈리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그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해변의 여인>,<밤과 낮>과 같이 리얼리티를 강조한 내용 속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나간다.

홍상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일관적인 특징은 고상한 척하며 드러내는 위선이다. 한결같이 본능에 집착하고 낭만적 사랑 따윈 믿지 않는다. 때로는 민망할 정도로 리얼하게 밝히며 그들을 향해 시니컬한 비웃음까지 날려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한장면 ⓒ 스폰지


고상한 사람들의 대표적 속물근성

흥행과는 거리가 먼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일상적이고 비루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뭔가 특별한 것이 빠져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혹자는 왜  일상적인 이야기를 돈 주고 보느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맞는 말이다. 홍상수 영화는 미친 듯이 재미있거나 벅찬 감동을 주지도 않고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그 흔한 볼거리도 없다. 그저 롱테이크의 화면 속에 잘난 사람들의 비루한 일상들뿐이었다.

그렇다고 착한 결말을 바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좀 더 비루하고 냉혹해 지더라도 현실적인 모습 속에 뭔가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 속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의식하지 않고 모르는 척 하는 모순의 지점에 머문다.

그들의 주관적인 모순을 객관적 사실로 드러내는 홍상수 감독의 작업은 어쩌면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함이 아닐까. 그 비루한 일상 속에 일침을 가하는 것은 진부하지만 모두가 말하기를 꺼리는 진실에 가까운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색다른 것은 반복되는 비루한 일상 가운데 뭔가 의미 있는 것을 찾고자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이기에 그 작은 변화는 사소하지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적 결과물을 철저히 '과정'에 맡긴다는 그의 말처럼 홍상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들으려 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14일과 28일 스폰즈 하우스와 광화문의 미로스페이스에서 홍상수 감독 작품전이 열린다. 여덟 편의 장편과 얼마 전 폐막된 전주 영화제에서 선보인 단편 <첩첩산중>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홍상수 잘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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