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값 모르는 교통부 장관? 어디서 많이 본건데…"

시사풍자 닻 올린 '개콘-뿌레땅 뿌르국'

등록 2009.05.11 17:34수정 2009.05.1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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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뿌레땅 뿌르국 뿌레땅 뿌르국

뿌레땅 뿌르국 뿌레땅 뿌르국 ⓒ 캡처

▲ 뿌레땅 뿌르국 뿌레땅 뿌르국 ⓒ 캡처

웃기는 재주는 없어도 웃어주는 재주는 넘치는 까닭에 버라이어티쇼나 개그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어디에 웃음 코드가 있고, 어떻게 아이디어가 나왔을지 분석하는 취미가 있다. 그 때문에 '호통개그' 따위의 그 시대의 '개그흐름'이나 '대세'에 관심이 많고, 그건 심지어 어떤 개그맨(개그우먼 포함)이 어떤  개그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나름의 통찰(?)로 이어지곤 한다. 물론 백이면 백 일개 개인의 '잡생각'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그마저도 '꿈보다 해몽'식이다.

 

요즘 개그의 '대세'는 두말할 나위 없이 '개콘'이다. 이는 개그콘서트가 3사 공개코미디 프로그램 중 승자의 위치에 올라섰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는다. 각종 리얼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 CF, 라디오 등에서 재생산되거나 순환되는 유머의 코드를 보더라도 대부분이 개그콘서트의 그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로 5분만 대화를 나눠도, '이것들아~', '니들이 고생이 많다' 식의 '개콘' 유행어가 수번은 등장한다. 이는 '개콘'의 유머가 우리 생활 속에 얼마나 크게 자리 잡았는지 보여주는 대표사적인 사례다. 물론, 여기에는 생활 속 소재를 개그의 아이디어로 삼는 '개콘' 만의 특징이 부합하는 까닭이 크다고 볼 수 있지만, 이 부분은 일단 논외로 하겠다.

 

서두가 길었다. 앞서 한 개그맨이 구사하는 일련의 개그 흐름이나 개그 철학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바로 최근 '개콘'의 다양한 코너 가운데 눈길을 끌고 '뿌레땅 뿌르국'을 이야기 하고자 함이다. 물론 '뿌레땅 뿌르국' 코너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개그맨 박영진을 빼놓을 수 없다.

 

2007년 KBS 22기 공채 개그맨으로 얼굴을 알린 박영진은 그간 개그콘서트 '집중토론', '박대박 1,2' '봉숭아 학당' 등에 출연하며 자신만의 개그스타일을 구축해왔다. 비논리적인 주장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말빨'을 앞세워 상대방을 몰아붙이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말도 안되는 주장을 관철시키는... 굳이 분류를 하자면 흔하디흔한 말장난식 개그에 포함되는 그런류였다. 주변 상황과 더불어 오버스러울 정도의 피드백을 보여주는 박성광과의 호흡으로 어느 정도 재미는 있었지만 사실 '대박'이라고 칭하기에는 임팩트가 약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그가 전면에 나서 코너 자체를 이끌어 가는, '뿌레땅 뿌르국'을 들고 나왔을 적만 하더라도 그리 큰 기대를 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소녀시대의 'Gee'를 애국가라고 칭하며, 매우 경건한 목소리로 '너무너무 멋져, 눈이눈이 부셔, 지지지지~'를 부를 때도 약간의 미소만 보였던 게 사실이지, 다음 회를 기대할 정도로 큰 관심이 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달라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뿌레땅 뿌르국'이 달라졌다. 아니, 애초에 그런 기획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도 매우 '빨갛게'.      

 

4월 5일자 방영된 분에서 뿌레땅 뿌르국은 한 가지만 잘하면 취업되는 그런 나라로 묘사된다. 이 나라에서 영역 표시 잘하는 개는 '국방부 장관'을, 일 잘하는 소는 '노동부 장관'을 꿰차고 있다. 이어진 박영진의 대사가 압권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개나 소나 한자리씩 다 차지하고 있어."

 

a 뿌레땅 뿌르국 뿌레땅 뿌르국 에서 박영진

뿌레땅 뿌르국 뿌레땅 뿌르국 에서 박영진 ⓒ 캡처

▲ 뿌레땅 뿌르국 뿌레땅 뿌르국 에서 박영진 ⓒ 캡처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건 이 무렵이었다. 그리고 2주 후에 방영된 방송에서는 조금 더 직설적인 설정이 등장한다. 바로 '버스요금 얼마인지 모르는 교통부 장관', '1년에 영화 한편 안보는 문화부 장관'이다. 청소년 버스카드를 들고 당당하게 버스요금이 얼마인지 안다고 말하던 모 장관의 모습과 자장면 한 그릇값이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생계형 물가를 잡겠다고 큰 소리 치던 또 다른 모 장관이 모습이 겹쳐진다.

 

'뿌레땅 뿌르국'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기 관할이 아니라며,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업무를 넘기는 경찰의 모습과 재개발 지역이라며 무허가 건물을 부수는 모습에서는 이거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접수 먼저', '수납 먼저'를 외치는 병원 관계자들의 말에 따라 빙빙 돌고 진료를 받으러 가니 "점심시간이다"라고 말하는 의사에 말에 그저 너털웃음 지을 수밖에.

 

해서, 본격 시사 풍자개그의 등장이랄까. 8학군 유명한 선생님을 다 모아놓은 이 나라 체육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축구해~" 이 한마디로 끝이다. 스승의 날을 맞아 선물을 준비하면 반장이 되는 나라다.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면 입이 텁텁하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대기업 회장이면 간지럼을 잘 탄다는 이유만으로 군 면제가 되는 그런 나라다.

 

물론,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혹~시라도, 너네 나라에서는 그럴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 여러분, 문화재를 잘 보존하는 나라입니다. 질병 없는 나라입니다. 병역비리 없는 나라입니다. 촌지 없는 나라입니다. 돈이 필요 없는 '뿌레땅 뿌르국'입니다~"라고 외치는 박영진의 역설적인 일갈이 코너를 마무리 짓는다. 이거 완전 재미를 넘어 감동이다.

 

아직까지는 그동안 많이 지적돼 온 문제를 건드리는, 그러니까 보편적 수준에서의 풍자에 머무르는 정도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 나라에 내재된 문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뿌레땅 뿌르국'에서 건드릴 수 있는 소재 또한 많아지기에 앞으로는 조금 더 구체적인 소재가 등장해 더 시원한 웃음을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몸에 딱 맞는 옷을 찾은 느낌이랄까. 무조건 말로 밀어 붙이는 박영진식 개그가 이제야 알맞은 소재를 만난 것 같다. 그가 조금 더 많은 문제를 건드려, 조금 더 많은 웃음을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뿌레땅 뿌르국'이 조선왕조 500년을 뛰어넘는 그런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그런 나라가 되길 바라 마지않는다.

 

어쨌거나 본방사수고, 기회가 된다면 '뿌레땅 뿌르국에 가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5.11 17:34ⓒ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개콘 #박영진 #뿌레땅 뿌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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