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기,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해답을 듣다

개성공단은 '왕건의 나주'와 같은 곳

등록 2009.06.03 12:28수정 2009.06.03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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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의 진정한 의미, 후삼국 시대를 통해 바라보다

 

후삼국 시대 당시, 후고구려 궁예 밑에서 장군으로 활약하던 왕건은 기상천외한 작전을 성공시킨다. 송악의 수군을 이끌고, 한반도 남부이자 후백제의 후방이었던 나주를 점령한 것. 이로써, 후백제의 견훤은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사극 <태조 왕건>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왕건에게 나주를 빼앗긴 뒤에 괴로워하던 견훤을 기억할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완산(전주)에 자리 잡은 견훤으로서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나주가 적국의 수중에 있는 것이 큰 위협이었다. 내 목에 남의 칼이 들이대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위에서는 언제 쳐내려올지 모르는데, 내 목에는 남의 칼이 들이대있는 상황. 섣불리 움직였다간 꼼짝없이 협공을 당할 우려도 있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타산지석'이다. 옛 시대의 일을 통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처할 수 있도록 교훈을 찾는 것이다. 개성공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옛 시절이 생각난 이유일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를 거침없이 비판했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개성공단은, 우리에게 있어 고려 태조 왕건의 나주와 같은 곳이다.

 

왕건이 나주를 점령하면서 수군을 동원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바닷사람인 왕건은 수군 지휘 능력이 큰 장기 중 하나였으며, 이는 궁예의 후고구려가 초반에 잘 나갔던 이유 중 하나였다. 반면에, 수군은 견훤의 아킬레스 건이었다. 그 아킬레스 건을 이용해 상대의 허를 찌르면서, 상대의 목줄기를 움켜쥘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닫힌 사회를 열어젖히는 데에는 강풍보다는 햇볕이 더욱 효과적이다.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그런 이치로부터 비롯됐다. 강풍은, 사내가 더욱 단단하게 코트를 둘러쓰는 역할에 족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햇볕은 다르다. 제 손으로 코트를 벗게 한다. 코트를 벗으면 그 실체가 드러난다. 그 더위를 피하기 위해 선풍기나 에어컨을 찾게 된다. 제 손으로 외부의 바람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것이 바로 햇볕정책의 실체다.

 

개성공단은 그 햇볕정책의 결과물 중 하나였다. 휴전선 북단, 북한의 남쪽 주요도시에 남쪽의 바람이 불어닥친 것이다. 일각에서는 "퍼주기의 결과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 '퍼주기'에 쓰인 현금이 무기 구매에 이용된 것보다 훨씬 적고, 설령 '퍼주기'가 맞다고 하더라도 그 '퍼주기'에 의해 개성에 남쪽의 바람을 밀어넣었다면 훨씬 실리가 있다.

 

기억하자. 닫힌 사회에서는 외풍이 불어닥치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위기다. 억지로 강풍을 불어넣는다면, 문을 더욱 꽁꽁 걸어잠그는 결과만 있을 뿐이다. 개성공단은 그 산물이었다. 우리에게는, '왕건의 나주'와 같은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은 전문가들의 비판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너희가 무장을 해제하면 돈을 주마. 해제하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취지의 '비핵개방 3000'은 결과적으로 북한 군부 내 강경파들의 득세를 돕는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것으로도 모자라 <통일은 없다>라는 책을 쓴 사람을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했으며, 극우단체의 삐라 살포를 사실상 방조했다.

 

대책 없는 대북정책으로 북핵 위기를 크게 유발했던 김영삼 정부와 궤를 함께하는 정권답다. '왕건의 나주'는 이에 대해서도 교훈을 준다. 중국으로 향하던 견훤의 사신을 붙잡았다가, 격분한 견훤이 나주를 침공함으로써 전쟁이 일어났다. 그 전쟁에서, 왕건은 그 자신도 목숨을 잃을 뻔했으며,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대신 창업공신이자 심복이었던 신숭겸을 잃었다.

 

지금에 이르러,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마침 잘 됐다"는 취지의 10년 묵은 체증 해소에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의 선언에 "폐쇄하자"며 화답한 사람들이 한나라당 일각과 조중동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째 '공생공사'한다는 느낌도 피하기 어렵다.

 

진짜 문제는 2차 핵실험이다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내부의 단결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내부의 단결을 공고히 하는 것은 외부의 목소리 내지는 외부의 위협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북한으로서는 이명박 정부를 일컬어 "이명박 반역도당"이라 규탄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명박 정부같이 반가운 사람들이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역주행하고 있는 대북정책은, 북한 내부의 강경파들에게는 기회나 다름없다. 잘나갔던 기억도 있다. 그들로서는 '통미봉남'으로써 잘 나갔던 기억이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는 어차피 예정돼 있던 수순이다. 강성대국 선언과 함께 인공위성 발사도 했다며 자축했던 북한으로서는, 향후 우주개발에 있어서도 중요한 목적을 가진다. 게다가, ICBM의 존재는 북한이 외교정책 기조를 '통미봉남'으로 바꿀 경우에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1994년에도 핵 위기로써, 경수로를 공짜로 얻은 전례도 잊기 어려웠을 테니까.

 

문제는 2차 핵실험이다. 여기에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진리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내부의 위기는 외부 상황으로써 해결하려는 것"이다. 부자 세습체제를 지향하고 있는 북한은, 정치구조를 왕조국가의 구조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왕조국가의 정치상황이 어지러웠던 이유는, 왕이 여럿 아내에게서 아들을 얻어 하나뿐인 후계자 자리를 놓고 대결을 벌일 경우 파국으로 치달을 우려도 있었다는 것이다. 고려의 태조 왕건 역시 그랬다. 개국공신들이 저마다 다른 왕자를 지지하면서 내란으로 번지는 경우가 심심치 않았다.

 

'포스트 김정일'은 김정일의 셋째 아들 정운으로 지명됐다고 한다. 어머니가 다른 아들들의 후계자 다툼, 뻔하지 않던가. 내부의 위기가 올 수밖에 없다. 북한 정계 내부는 물론 군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을 여지는 크다.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가 반발한다.

 

이는 역사의 진리다. 후계자가 정해지면, 그에 뒤따르는 여파를 어떻게 수습하느냐는 것은 가장 큰 숙제가 된다. 북한은 지금 그 숙제를 해야 한다. 2차 핵실험 선언은 그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다. 중국이 왜 강경하게 대처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중국 불법 조업 어선, NLL에서 일제히 철수한 이유는?

 

5월에서 6월에 이르면, 서해 연평도 일대에서는 꽃게잡이가 한창이다. 여기에는 늘 NLL 일대까지 치고 내려오는 중국의 불법 조업 어선이 늘 친구처럼 자리잡는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 불법 조업 어선들이 철수하고 있다. 군은 이미 "북한의 도발이 임박했다는 징후"라고 진단한다. 2차 핵위기에 맞물려 판단할 여지가 있다. 중대한 상황이 아니면, 중국의 불법 조업 어선이 집단으로 철수할 리가 없다.

 

이 상황과 맞물려 판단해야 할 것은,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 미군 F-22A 스텔스 전투기가 12대나 배치됐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 클린턴 정부에서도 북핵에 대비해 영변 핵실험에 대한 폭격을 고려했던 전례도 있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움직이면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중국이든 미국이든, 북핵은 결코 반갑지 않다.

 

북핵이 실제로 발사되면, 전선이 확산될 위험도 있다. 미국은 F-22를 동원해 실제 폭격에 나설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중국이 그 상황에서 선택할 것은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방조 아니면 확산이다. 지금의 중국 측 반응으로 봐선 섣불리 예상하기가 어렵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NLL에서의 도발에 대비해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도 대책이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발사 진지 격파'라는 키워드다.

 

"공군은 북한 전투기의 NLL 월선에 대비해 비상출격태세를 갖추고 있다. 군당국은 북한이 우리 함정을 향해 해안포와 미사일을 발사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최첨단 F-15K와 한국형 구축함을 이용해 발사 진지를 격파하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침은, 2002년 7월 2일 합동참모본부가 내린 "경고사격 후 격파사격"을 이어가는 지침이다.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진짜로 실현한다면, 오키나와에서 출발한 F-22 스텔스 전투기와 우리의 F-15K가 동시에 서해로 뜰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중요한 딜레마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역주행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DJ의 오열, 그 눈물의 의미

 

NLL를 기억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중순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 헌법상 북쪽 땅도 우리 영토인데, 그 안에 줄을 그어놓고 이걸 영토선이라고 주장하면 헷갈린다. 이것이 남북 간에 합의한 분계선이 아니며 많이 다투어서 우리한테 유리할 것 없는 주제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된다."

 

"NLL은 쌍방이 합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은 선으로, 그 선이 처음에는 우리 군대(해군)의 작전 금지선이었다. 정치권에서 사실관계를 오도하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발언과 함께,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부터 격렬한 비난에 노출됐다.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근본적인 발언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헌법상 북한도 우리 영토인만큼, NLL을 영토선으로 확정하면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이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해법은 '평화수역 선언'이었다. 모순으로 가득한 NLL보다 '남북공동어로 및 평화수역'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 햇볕정책의 진수가 담긴 제안이었다. 이것이 실현됐더라면, NLL에서의 위협은 상당부분 감소했을 것이다. 개성에 이어 서해 역시 '왕건의 나주'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에 이르러, 지난 10여 년 간의 대북정책을 판단해보면, 그나마 이명박 정부에게 최소한의 대처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틀도 모두 햇볕정책으로부터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집토끼'를 잡는다는 정략적인 계산 속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비핵개방 3000'같은 비현실적인 대책을 제시했다가, 10여 년 전으로 돌아갈 위험이 생긴 것이다.

 

개성공단이라는 '왕건의 나주'를 잃을 위험에 처한 상황, 서해도 '왕건의 나주'로 굳힐 수 있었던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명박 정부의 대처는 안타깝게 느껴진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나마 최소한의 대처방안도 그들이 '좌파 정권'이라고 비난하느라 바빴던 지난 10년으로부터 비롯된 것은 진짜 아이러니다.

 

북한 내 강경파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의 이와 같은 취약점을 찌르고 온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복궁 영결식장에서 오열했던 DJ의 눈물이 다시 아프게 다가온다. 그는 진심으로 "내 몸의 반을 잃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정열적으로 실천하고자 했던 정책을 모두 이해하고 완벽하게 이어왔던 후임자의 비극을 향한, 선임자의 애끓는 눈물이기도 했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1. 박형준 기자는 월간 『말』기자입니다. 

2.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 view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6.03 12:28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1. 박형준 기자는 월간 『말』기자입니다. 

2.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 view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북한 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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