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전 경호관과의 대화에서, 담배가 있는지 물었고, 마침 담배가 없었다는 소식이 회자된 후, 분향소에서는 담배 연기가 그칠 줄 몰랐다. 치열한 도전의 삶을 살아온 정치인의 삶이었지만, 끝내 담배는 끊지 못했다는 일화가 추모의 열기에 불을 붙였다. 슬프지만, 이 삽화만큼 담배의 중독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실례가 또 있을까.
금연교육 보건 수업 시간, 담배의 폐해, 금연의 이득에 대해 설명 자료를 준비했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여러 흡연 관련 실태조사에서 이미 고등학생은 호기심으로 담배를 피우는 시기를 벗어나,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우는 시기로 상당히 진전된 경우로 나타났기 때문에, 흡연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한 후, 이번 기회에 각 학급의 흡연 실태에 대해 즉석 설문조사를 하고, 이에 대해 토론을 하기로 정했다.
원활한 설문 조사를 위해 학생들과 원칙을 정했다. 첫째, 시간 관계상 거수로 설문조사를 하겠지만, 흡연 여부와 징계를 연관 짓지 않겠다. 둘째, 흡연에 대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야할 때, 본인이 싫으면 발표하지 않아도 된다.
학급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개 결과는 엇비슷했다.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담배를 피워본 적이 있느냐는 질의에 거의 반 수가 손을 든다. 처음 담배를 피우게 된 동기로는 호기심, 친구의 권유, 선배의 권유 순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경우를 묻자, 주뼛거리다가 3-4명 정도가 손을 든다. 학생지도부에서 지도를 받고 금연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있다.
괜찮다면 자신의 흡연 현황에 대해 말해줄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간혹 난처해하는 학생 1-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신의 흡연 상황을 이야기해준다. 종합하면, 하루에 1-2개피 정도 평균 담배를 피고 있고, 20개피 넘게 피운다는 학생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담배를 처음 접한 학생들이 많았다. 학교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되니, 무조건 참는다는 학생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주말에, 노래방에서, 공원에서, 으슥한 골목길에서, 학원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다. 부모님께서 담배를 피우는지 아시느냐는 질문에는 "예"와 "아니오"가 반반 정도. 마지막으로 기회가 된다면 담배를 끊고 싶으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정말 담배를 끊고 싶다고 토로했다.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만약 학교에서 학생 스스로 금연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지 물었더니, 의외의 답변들이 쏟아져 나왔다. 흡연실을 설치하겠다는 아이가 있다. 이유인즉, 학교가 절대 금연 구역이기는 하지만, 고등학생처럼 담배에 이미 중독되어 있는 경우, 담배를 못 피우는 것 때문에 담배 생각이 더 나 학교만 나서면 담배를 찾는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흡연실이 있으면, 낙인 효과 때문에라도 담배를 피우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고, 다른 학생들의 혐연권을 보호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요지다.
금연 장학금을 주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금연 약속을 공개적으로 하고, 이를 제대로 실천할 경우, 장학금을 주겠다는 취지다. 담배를 끊는 의지라면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이런 학생이야말로 장학금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연보조제 이야기도 나왔고, 화장실 환풍 시설 개선도 제안되었다. 뻔한 정답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낸 답안들이라서, 아이들의 생각은 다채롭고 신선했다.
언제부터인가 입시교육이 강화되면서, 학교에서 학생회 회의가 사라지고 있다. 학생 자율권의 대표격인 학생회가 형식적으로 남아 있는 학교도 많다.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하고, 대안을 찾아, 현장에 적용해보는 기회가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양성평등을 주창한 페미니스트들의 첫 기치는 '개인적인 것도 정치적인 것이다'였다. 정답이라고 믿어지는 것들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부터 고민해야만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
미래 글로벌 인재 육성이 요즘 교육계의 화두다. 문제 제기를 하고, 의견을 주장하고, 그 의견을 정책으로 관철해보는 경험이 적은 인재들이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을까. 학교의 자율권을 이야기 할 때, 학생, 학부모, 교사의 자율권이 함께 논의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고민해볼 문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2009.06.05 15:54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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