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고민정 아나운서 인터뷰

, “소수자와 서민을 위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마이크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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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규(koreankhg)등록 2009.06.08 11:24
우리는 성공한 사람의 자서전이과 강연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대학시절에는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자신의 가치관을 만드는 사람은 성공한다. 우리는 이것을 알지만 실천하지는 못한다. 다양한 경험을 쌓기보다 도서관에 앉아 토익점수를 1점이라도 올리기 위해 애를 쓴다. 자신의 가치관을 만들기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문제를 해결하면 그만이다.

여기에 한 소녀가 있다. 민중가요 동아리에서 2년간 회장을 맡으며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경험하고, 등록금납부 거부운동 참여, 시험 안 보고 수업 빼먹기 등 대학시절 경험하지 못하면 평생 경험할 수 없는 범상치 않은 경험을 모두 해본 그녀. 마지막으로 소수자와 서민을 위해 살아갈 것이라는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대학생활을 보낸 그녀. 그녀는 바로 KBS 고민정 아나운서다. 지난달 26일 KBS본관에서 고민정 아나운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 아나운서와의 대화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방송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녀는 언론법에 대해 명확한 그녀만의 입장을 전달했다. 언론은 시장경제 논리로만 생각할 수 없다는 그녀. 언론은 자본의 논리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대기업이 방송을 소유하고 있다. 선진국이 시행한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유럽에서는 오늘날 방송과 자본을 통제하고 있다. 우리의 이익을 대변하고 정권과 각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언론을 지키고 사수하고 싶다"며 방송법에 대한 그녀의 입장을 전달했다.

방송법에 대한 그녀의 입장에 이어 그녀가 지향하는 언론인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녀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해 연예인이 아닌 언론인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단다. 그녀는 "방송에서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에 차이가 없는 언론인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고 아나운서는 존경하는 언론인으로 리영희 기자를 꼽았다. 리영희 기자는 1960년대 5.16군사정변에 반대하는 글을 외지에 기고하기도 했으며 방북취재를 기획하다가 복역과 석방을 반복했다. 고 아나운서는 "리영희 기자가 60~70년대의 엄혹한 시대에서 올곧은 이야기를 했기에 언론이 오늘날의 반석에 오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리영희 기자와 같은 훌륭한 언론인이 롤 모델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 아나운서는 존경하는 분은 많지만 롤 모델을 정하고 따라가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고 아나운서는 신영복, 윤희상, 리영희 선생의 삶과 가치관을 본받고는 싶지만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는 이유를 전하며 롤 모델은 특별히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히려 롤 모델을 찾기 보다는 그녀가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 중이라고 했다.

고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로 인기를 끌기 시작할 때 시인과의 결혼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또한 방송에서도 그녀의 가치관을 스스럼없이 보여주고 있다. 타 아나운서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고 있는 그녀는 올해 30대에 접어들게 됐다. 그녀는 30대로의 고민과 걱정보다는 자신이 만들어 가야할 길에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이 조심스럽단다. 고 아나운서는 "자신을 롤 모델로 따라 오는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고 아나운서를 롤 모델로 아나운서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은 합격비결을 질문했다. 고 아나운서는 자신의 합격비결은 학창시절의 다양한 경험과 확고한 가치관의 성립이었단다.

고 아나운서는 대학시절 우리학교 민중동아리 '작은연못'의 회장을 2년간 역임했다. 고 아나운서는 처음 동아리에 들어갈 때는 단순히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동아리에서 노동자, 서민의 삶과 권인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회장을 처음 역임한 2학년 때는 사람을 단체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빗나갔다.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모든 후배들이 동아리를 탈퇴한 것이다. 그녀는 3학년이 되어서도 회장을 역임하며 단체를 사람에 맞추는 변화를 선택했다. 지금도 가장 친한 후배들은 그녀가 3학년 때 신입생으로 들어온 동아리 후배들이라고 한다. 그녀는 "이곳저곳에서 치일 때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은 동아리다"며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학교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동아리가 있어 기쁘다"라며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강조했다.

동아리 생활로 다양한 경험과 확고한 가치관을 다진 그녀였지만 3학년까지는 특별한 꿈이 없었단다. 4학년 2학기가 되어서 그녀는 아나운서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아나운서는 대중에 많이 노출되기에 그녀의 가치관을 많은 사람에게 노출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 아나운서는 "사람은 욕심을 가진 동물이기에 지배·권력 계층은 소수자의 삶을 공유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며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인이 되어 권력계층이 소수자의 삶을 돌아봐줄 수 있는 의식의 변환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나운서가 되어 이름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며 "대중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소수자를 위한 사랑으로 되돌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고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를 하나의 권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나운서는 그녀의 가치관인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좋은 도구란다. 그녀는 프리랜서를 선언하더라도 방송활동에 주력하기 보다는 소수자를 위한 사회운동에 참여할 것이란다.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올곧고 소신 있는 언론인을 향해 항해하고 있는 그녀. 고 아나운서를 롤 모델로 그녀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선로를 잃지 않도록 지금과 같이 힘든 항해를 끊임없이 이어나가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희대학교 대학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경희대학교 대학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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