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치 못한 몸인 것을 잘 알면서도 근래 들어 먼 거리 출타를 자주 했다. 천안, 수원, 서울을 지나는 '오체투지 순례' 현장으로 달려가 땅바닥에 엎드리는 일을 무수히 반복했다. 두 손 모은 채로 서너 발짝 걷다가 사지와 이마까지 땅에 대고 엎드린 다음 4.5초 후 징 소리에 따라 일어서서 서너 발짝 걷고…. 30여 번을 거듭한 다음 5분 정도 쉬었다가 다시 또 나아가고….
그런 힘든 동작을 무수히 반복하며 예수님 생각을 하곤 했다. 세상 권력에 맞서 진정으로 세상을 사랑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길임이 분명했다. 때로는 아스팔트 길바닥에 입을 맞추기도 하며 예수님의 발자취에 입을 맞추는 마음이고자 했다.
모든 사람이 사람 대접을 받으며 각자의 도리를 따라 살아가는 세상, 모든 생명이 하느님의 피조물로 존중받는 세상, 그리고 평화로운 세상을 소망하며 추구하고자 하는 일이었다. 바로 '사람의 길·생명의 길·평화의 길'을 추구하는 '순례 기도'이기에, 또 거기에는 참회와 속죄의 뜻이 결부되기에 긴긴 '고행'은 당연한 것이었다.
지난해 9월 4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하여 10월 26일 계룡산 상원사 중악단에서 마무리한 1차 순례에 이어 올해 3월 28일 계룡산에서 시작된 2차 순례는 오늘(6월 1일) 현재 서울을 지나고 임진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함께 순례 기도를 계속하시는 천주교 문규현 전종훈 신부님과 불교 수경 스님을 뵐 때마다 숙연함을 가지면서 가끔 하루씩 순례에 참례하는 사실에 죄송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끼곤 했다.
서울 '용산참사' 현장에서 거행되는 미사에도 여러 번 참례하고 있다. 미사에 참례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오열하신 성모 마리아님의 통곡소리를 듣는 기분이기도 했다. 이웃의 눈물을 남의 일로만 보지말고, 세상의 오만과 탐욕이 빚어내는 일들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지 말라 하시는, 청년 시절부터 들어왔던 하느님의 음성을 다시 듣는 기분이었다. "아무런 힘이 없을지라도, 잠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너는 큰일을 하는 거야"라고 하시는 말씀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은 다음날인 5월 24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다녀왔다. 오후에 달려가서 조문을 하고 '연도'를 바치고 다음날 새벽에 돌아왔다. 그 먼길을 가고 오면서 그의 영혼을 위해 줄곧 묵주기도를 하면서도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는 오늘 '정치'가 실종된 상황을 살고 있다. 정치를 단순하고도 평범한 말로 정의하자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 정치의 본령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도 경제를 위해 정치가 필요한 것으로 착각한다. 경제에다 최상의 가치를 두고, 경제만 발전하면 정치는 자동적으로 발전하리라 믿는다.
우리는 경제를 우선시 하는 가치판단에 따라 현 정권을 선택했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오히려 악화되자 정치 수준은 더욱 천박성을 띠게 되었다. 정치와 통치를 혼동하는 현상이 생겨났고, 공권력에 의존하는 조악한 통치 스타일이 전면에 나타나 스스로 '소통'을 차단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비록 경제에다 비중을 두고 선택했다 하더라도,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표를 준 건 아닐 것이다. 세계 경제와의 연동 속에 우리 경제가 존재하는 것임에도, 우리만의 무슨 비결이나 도깨비 방망이 같은 것이 있는 줄로 오해한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표를 준 국민들 가운데는 정치의 본령을 생각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정치의 대의(大義)를 잘 지켜나가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라는 뜻으로 표를 주었을 것임이 자명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 민주주의의 발전적 실체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퇴보와 역주행의 실상과 증거들이 너무도 분명하다. 그리하여 다수의 국민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다는 것이 결국은 정치를 통치로 전환하고, 20년 전의 통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많은 국민에게 슬픔과 눈물을 주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것의 실체적 상징일 수도 있다. 실로 많은 국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현실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단순한 상실감이나 애처로움으로 흘린 눈물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온힘을 다해 추구했던 민주주의와 관련하는 갖가지 숭고한 가치들이 마구 허물어지는 상황에서 더욱 절통해지는 슬픔으로 흘린 눈물이다. 눈물의 본질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국민의 그 눈물을 씻어주는 일이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과제가 되었지만 그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현재로서는 막막하기만 하다. 영결식 다음날 경찰이 다시 서울광장을 봉쇄한 사실은 암울한 전망을 갖게 한다. 그것은 소통 차단을 상징한다. 서울광장은 5월 29일 하루 동안만 '국민의 광장'이 되었다가 다시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광장으로 돌아간 셈이다.
광장이 광장으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할 때 민주국가의 위신은 중심을 잃는다. 서울광장 둘레에 철갑을 두르고 광장 안에 이명박 대통령 혼자 서 있는 모습을 본다. 그는 언제까지 텅 빈 광장 안에 혼자 쓸쓸히 서 있을 것인가.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을 잃은 사실 때문에 국민들은 오늘 더욱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경찰이 그것까지는 막을 수 없을 터이고….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계 월간지 <참 소중한 당신> 7월호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4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되었습니다.
| 2009.06.10 19:01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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