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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향한 투덜거림 <반두비>

09.06.24 10:01최종업데이트09.06.2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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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반두비>를 볼 때다. 청소년을 위한 영화, 그러나 정작 어른들만 봐야하는 영화. 영상물 등급위원회의 예리한(?)심의 덕에 어이없게 '18세 관람가'등급을 받은 작품. 그리고 다문화, 이주노동자, 디아스포라라는 키워드로 검색되고, 뚜껑이 열리기 전부터 MBC 뉴스데스크를 장식한 영화. 신동일의 세 번째 연출작 <반두비>가 다가오는 6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제, 어떤 영화인지 뚜껑을 열어볼 차례다.

카림(마붑 알엄 펄럽 분)과 민서(백진희 분)는 공통분모가 없다. 카림은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다. 외국인 근로자의 계약기간을 3년으로 명시한 고용허가제 때문에 그는 곧 한국을 떠나야만 한다. 그러나 악덕 업주가 체불한 임금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한편 방학을 맞은 고등학교 2학년 민서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꿈을 먹고 자랄 청소년의 얼굴이라고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조숙한 인상이다.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너무 많다. 민서는 친구들처럼 원어민 강사가 지도하는 학원에 나가지 못해 속상하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교육받고 싶을 뿐인데, 남들처럼 사는 것이 가장 힘든 게 세상이다. 엄마의 철없는 애인은 완전 밉상이고, 그런 애인을 애지중지하는 엄마는 더 밉다. 이처럼 민서의 여름방학은 꽤나 고달파 보인다. 카림을 만나던 날은, 민서의 짜증만큼이나 후끈한 여름이 막 시작될 즈음이었다. 영화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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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두비>에는 투덜거림과 짜증스러움이 곳곳에 묻어 있다. 잘 보면 보이고 방심하면 놓친다. 영화 곳곳에는 현 정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문구, 우화를 통해서 풍자하는 이야기, 직설적인 대사들이 전광석화처럼 지나간다. 가벼운 걸로는, 'MB'라고 적힌 학원버스, 민서의 가방에 부착된 촛불집회 배지, 학생들이 손에 든 부채에 적힌 조.중.동 반대 문구. 상징적인 것도 있다. 이를 테면 한우 장조림 같은, 서너 번 생각해야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장치들도 있다. 때문에 영화는 단순히 짜증을 토로하는 걸 넘어 고도의 정치적 풍자물로 거듭난다. 신동일 감독은 노골적이다가도 슬며시 꼬리를 감추는 고도의 전략가다. 전술과 전략이라는 건,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할 때 빛나는 법이다. <반두비>의 전략에, 말은 못해도 뜨끔해할 사람들이 있을 거다.

민서는 짜증을 많이 내는 아이다. 그녀가 짜증을 내는 건 민망함 때문이다. 세상은 두 눈뜨고 바라보기에 너무 낯 뜨겁다. 민서는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어두운 밤거리를 털레털레 걸을 때, 화려한 네온싸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싼다. 이는 민서가 무방비상태로 던져져 있음을, 즉 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노출'이라는 키워드는 여러 번 반복된다. 엄마의 애인은 집에서 상체를 벗고 있고, 민서가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만난 선생님은 올 누드 상태다. 옷을 벗었기 때문인지, 어른들의 권위가 무너지고 이내 그들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난다.

특히나 카림에게 임금을 주지 않았던 악덕사장이 온 가족이 보는 앞에서 개망신을 당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영화에는 옷을 입어야 할 때와 벗어야 할 때를 구분 못하는 어른들이 자주 등장한다. 입고 있던 옷을 벗을 때, 벗은 사람만 창피한 게 아니다. 보는 사람도 창피해진다. 마치 우리가 뉴스를 보면서 정치인들의 추악한 모습에 분노하듯. 창피함은 분노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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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유머, 투정, 짜증, 민망함 뒤에 분노가 독기를 품고 웅크리고 있다. 영화는 에둘러서 웃음을 전달 하지만 정작, 이 영화가 노리고 있는 것은 세상을 향한 분노다. <반두비>에서는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감정을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 카림이 민서와 함께 간 바닷가에서 목 놓아 우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는 말한다, 단지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침묵을 지켜오던 카림이 울부짖는 만큼 관객에게 다가올 정서적 충격은 크다. 카림의 절규는 영화 속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듯하다. 실업자, 비정규직, 청소년, 가정주부... 모두의 목소리가 카림의 말에 응축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 한 가지. 카림과 민서가 찾아간 바닷가에는 정작 바닷물이 없었다. 하필 썰물 때였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물이 없다는 허무함, 그리고 황당함. 영화는 그러한 허무의 정서를 무언가의 부재를 통해서 보여준다. 이주노동자는 카림은 코리안 드림에 꿈이 없다는 걸 절감했다. 청소년 민서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비정규직과 실업이라는 칼날이 어른들의 목을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내일을 살아가기에 오늘이라는 시간은 너무 팍팍하다.  텅 빈 바닷가처럼 우리는 무언가 채워지길 기다리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반두비>는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악착같이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일상을 스케치한다. 영화에는 인간다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되찾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있다. 그들은 늘 무언가를 기다린다. 달이 차오르듯, 희망의 바닷물이 차오를 거라는 믿음을 기다린다.

반두비 신동일 백진희 마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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