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작가 황석영과 마인강 변의 들풀하나

검토 완료

조영삼(jys010959)등록 2009.07.09 09:54


황구라와
들풀하나의
망명생활

"어릴

동네
골목대장
시절을
거쳐
고교

소위
불량(?) 써클
경험과
방황, 자퇴, 그리고

입대
전까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추구하고자
살아가는가. 세상은
나에게
무엇인가.'
고민하며
하늘을
지붕
삼아
땅을
베게
삼아
팔도의
노동판을
전전한다.

최전방에서 3년간
이른바
신성한
국방의무를
마치고
병장으로
제대검정고시를
거쳐
대학
입학, 뒤숭숭한
시국의
부산물로
유치장과
교도소의
식구통
신세도

보았다.

출소

사랑하는
어머니의
땅을
떠나
지구촌
이곳
저곳을 '보헤미아의
맑은
수정'이란
희망을
찾아
방랑하다가
해방 50주년
되던
, 개인자격의
남쪽대표의
한사람으로
금지의

북한에
발을
딛는다.  백두산
연설, 평양에서
몽양의
둘째

여연구
여사와
함께
춤을, 그리고
판문점
방문,
대가로
독일에서의
망명생활."

황석영
(이하
존칭
생략)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황석영의
지난
시절과
너무나
흡사한
위에
열거한
이야기는
현재
독일
중남부
자그마한
강변
기슭에서 '들풀하나' 되어
살아가고
있는
필자(이하
들풀하나)
거짓말
같은
실제
이야기다.

전혀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황석영의
지난
시절과
이상하게도
거의
유사한
인생행로를
밟아온
들풀하나에게는
작금의 '황석영사태'
그가
언급한 '광주사태'만큼이나
충격이
되어
가슴

켠을
아리게
하고
있다. 그만큼
황석영에
대한
애정이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기대하지
않은
이에게는
실망도
없는
법이니까.


영광스럽게도(?) 이시대
마지막
정치망명객이란
타이틀을
아직
보유하고
있는
들풀하나가
독일에서
망명을
신청한
이른바
문민정권시절에
황석영은
독일을
떠나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귀국할
것인지

것인지를
저울
질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와

지붕
밑에서
부데끼며
동고동락

기회는
없었지만
독일의
지인들로부터
그의
독일생활에
관한
이런저런
편린들을
주어
모을
수는
있었다.

황석영과
들풀하나는
이른바 '반국가
이적' 지역인
북한땅을
허가
받지
않고
방문한
대가로
독일에
망명을


까지는
닮은
꼴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들풀하나는 '어둠의
자식들'
바퀴벌레들이
득시글하고
쓰레기잔해가
바람에
날려
춤을
추고
악취가
진동하는
난민수용소에서 3년이란
세월을
세상의
변두리에서마저
버림받아
정처
없이
떠돌다가
흘러
들어온
난민들과
부데끼며
보냈다. 3
동안

곳의
난민수용소를
전전해야만
했다.(1997 7월호
월간
말에 "독일난민수용소에서
만난
남과
북의
망명객"이란
제목으로
들풀하나의
수용소
이야기가
상세히
게제
되어
있다.)

반면에
황석영은
대문호인지
대부호인지는

모르겠으나
망명신청기간
동안

하루도
수용소에
수용된
적이
없었다. 베를린의
아름다운
호수인
반제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윤이상
선생의
실내수영장까지
갖추어진
호화저택에서
상당기간
지냈으며
나중엔
고급
아파트에서
무용가
출신
아내와
미국으로
건너갈
때까지
살았다.

하긴
감히
천하의
황석영, 자칭
민족작가
황석영과
자그마한
강변가의
이름없는
들풀하나가
언감생심
비교대상은
아니지.

황석영은
망명시절
스스로
민족작가라
자처하며
주변사람들
기를
팍팍
죽였다고
한다. 황구라의
의견에
반박하거나
반기를
들면,

"
임마. 감히
민족작가인
황석영에게..."

그런
황석영이
연전에 '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에서
고루한
민족이란
단어를
빼자고
강력히
주장했던바, 이젠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민족이란 '편협한' 저자거리를
벗어나
알타이대연합을
주창하기에
이르렀다.


때는
민족작가라고
회자되기를
갈망하던
이가
어느

갑자기
민족을
벗어나자고
뜬금없는
소리를
하더니
작금에
와서는 '우랄알타이대민족'끼리
뭉쳐서
뭔가


하나

보자고
한다. 당췌

말인지
강변기슭
하잘

없는
들풀하나는
봉황(구라)
높은
뜻을
헤아릴
길이
없다.

한때는
제국주의를
신랄히
비판하던
황석영이
일본
군국주자들이
주창했던
대동아공영권의
아류라


밖에
없는
이상한
제국주의를
부르짖는
자기모순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아시아인들이여! 일장기
깃발아래
일치단결하여
서구제국주의를
아시아에서
몰아내자."

알타이
민족이여대한민국의
주도하에.........   "

삼척동자도
훤히
내다볼

있는
수를
어찌
천하의
황석영이
모른단
말인가. 당시
소수의
친일분자들을
제외하고
아시아
어느
나라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동조했는가. 황석영이
메시아적
자아도취에
빠져
언제
어디서나 '오야붕'노릇을
하고
싶은

처럼
사람들은
열이면
아홉은
질질
끌려다니는 '꼬붕'노릇은
싫어하는
법이다.

말짱
황이여! 돌아오라


개인
의리를
들먹이며
현정권의
몸통과
밀착할

밖에
없는
황석영의
조폭(?)논리에
대한
댓거리, 희대의
코미디라는
말바꾸기등에
대한
단상들은


기라성
같은
논객들이
거의
모든
매체의
지면을
장식했으니

빠지게
재탕
삼탕
되풀이
하지
않으련다. 그리고
황석영은
그의 '원대한
구상'
추진해
보기도
전에
이미
많은
것을
잃어
버렸다.


젊은
날의
우상(?)이었던
김지하가
아무리
노심초사해도
옛날의
명망과
명성을
되찾을

없듯이  '삼포가는
길을
찾아
헤메다가
삼포는
가지못하고
삼천포로
빠져버린' 황석영을
사람들은

이상
옛날의
수더분하고
친근한
우리들의
황구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황구라의
잔재영상은

잘하는
이야기꾼, 재미있는
재주꾼
등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지금의
황구라는
그냥
그대로
구라쟁이, 앞뒤가
어긋나는
거짓말쟁이, 황당쟁이
등으로
다가옴은
어쩔

없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것은
항차
황석영의
노력과는
별개의
문제로 '따로국밥'
것이다.

"말짱
황이여. 말짱
황이랑게"

그만큼
신뢰라는
것은

순간에
잃어
버리기는
쉽지만
본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원상회복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오적' '똥바다'
일세를
풍미했던
김지하가
살아있는
표본이라면
표본이겠다.


그런데

양반이
소시절부터
세인들이
시샘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면서 "형님먼저
아우먼저" 하더니
형만한
아우
없다고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어찌
그리
형님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는지, 아무리
의형제지만
멋져부러. 그런데

양반이
의형제가
맞기는
맞나?


! 이젠
맛뵈기로
긴긴
세월
보헤미안
되어
떠돌고
있는

볼일
없는
들풀하나의
자기변명도
들어보자.

들풀하나는
독일
난민수용소
시절
들풀하나를
제거하려는
보이지
않은
어둠의
세력의
음흉한
음모에
빠져 4명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받았고
괴한들과의
유혈낭자한
격투
, 정말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한
죄명을
뒤집어
쓰고
독일교도소에
수감되어

개월을
이국의 '식구통' 신세를

적이
있다

들풀하나가
겪은
고초와
세상을
향한
분노는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대한민국
감옥의 '식구통' 신세를
상당기간

본적이
있는
들풀하나가
이역만리
독일의
난민수용소를
거쳐
독일
교도소의 '식구통' 신세를
지리라곤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긴 '저자거리'
동네
빵잽이에서
국제
빵잽이로
격상을
했으니
영광이라면
영광이겠다. 들풀하나는
대한민국의
이른바  '국립호텔'에서
조폭
나부랭이들을
휘어잡고
빵장을

경험도
있음을
명토박아
둔다.

동병상련의
전율이...

들풀하나는
독일감옥에서
풀려난
직후, 분노와
울분을
삭일
겨를도
없이
독일
유수의
프레스센터
로비에서
비열한
음모의
배후를
밝혀줄
것을
외친

할복을
했다. 유혈낭자한
프레스센터
로비에

신문사
기자들의
웅성거리는
아스라한
소리를
뒤로하고
들풀하나는
의식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깨어보니
어느
대형
종합병원
중환자실,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은
지인을
통해
독일
유수의
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먼저
제안해
놓고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거였다
일까. 어째서?  물론
들풀하나의
할복사건은
신문에
기사화
되었었다. 그러나

뿐이다. 심지어는
독일
경찰이나
관계당국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퇴원

들풀하나는
일방적으로, 강제적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진실을
밝히고자
바둥거릴수록,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할
수록
보이지
않은

무엇이
형태를
달리하여
옥죄어
오는
것이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시기와
장소는
다르지만
비슷한
경험을


들풀하나는
동병상련의
전율이
추도기간
내내
온몸을
감싸고
돌았다. 들풀하나는

전대통령
고향인
경남
진영
봉하마을

동네에서
한때
청둥오리
농장을
하면서
일명 '합압농법'이라고도
하는
오리농법을
추진하려
했던
적도
있다. 1992 5, 남북고위급회담
진입사건으로
감옥으로
직행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지만,

각설하고, 그렇다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살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던
들풀하나를
음흉한
음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어둠의
세력은
과연
누구일까.

들풀하나가
난민수용소
생활을
했던
지난
세기말 1990년도에는
대한민국에
문규현
신부, 홍근수
목사
등이
참여했던
}통일샘~이란
자그만
하지만
알찬
잡지가
있었다.
잡지에
들풀하나가
기고한
글의

장과
소제목, 마지막을
소개함으로써
나머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고자
한다.


충격
고발
독일
난민수용소의
위장
탈북자들
남한
위조
여권으로
들어온
가짜
북한
사람들의
실상


통일샘에서는

기고문을
받은
직후
}말~지
편집부에
연락을
취했었습니다.

글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필자가
초기
난민수용소
생활에
대한
감상을
}말~지 97 7월호에
기고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같은
내용이
}말~지에
실리는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말~지의
편집책임자는
같은
내용의
글을
받았지만
내부
논의
결과
게재하지
않기로
했다는
확인을

주었고
통일샘은
조영삼씨의
글을
전문
게재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영삼씨의
글이
}말~지 98 1월호
독자의
소리
난에
요약되어
실리게

데에는
어떤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편집자주>
...........................................................
1.북한
출신
망명
신청자

달에 30

2.이인모와
임수경도
모르는
사람들
3.중국인
난민
신청자의
증언
4.}그가
남한
여권도
만들어
주고
모든
경비도
부담했다~
...............................................................
마무리 글:  ............ 중국 조선족 자치주에서 온 이들 위장 탈북자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로 온 자칭 북한사람(?)들은 굶주림을 피해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얼굴이나 옷차림이 너무 번듯하다. 김포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서울로 향하는 소위 한국 행 탈북자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
들풀하나는
망명여부를
결정하는
최종심에서
담당판사에게
정식으로
망명신청을
철회하고
대한민국의
감옥으로
직행하겠다고
강력히
요청했었다. 그러자
담당판사는
깜짝
놀라며

"당신은
한국으로
돌아가서는
절대
안된다. 당신은
독일에
남아서
생활해야만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독일
감옥생활을

것도
알고
있다. 그것으로
족하다. 당신을
다시
감옥으로
보낼
수는
없다. 당신은
독일에
남아서
당신
하고
싶은
것을
하라."


설득했지만
들풀하나는

"나는
정치탄압을
피해
귀국에
정치망명을
신청한
사람이다그런데
삼척동자도
엉터리
임을


있는
황당한
논리로

없는
사람을
탄압하는
황당검사가
있는
귀국에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대한민국도
물론
엉터리가
있기는
있다. 그래도
내나라

땅이
아닌가. 나는
당신이
아무리
설득하고
붙잡아도
대한민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담당판사는
들풀하나가
고집을
꺾지
않자
변호사에게 '당신
고객이

지경이
되도록
당신은
변호사로서
무얼
했느냐. 당신이
설득을
다시

봐라.'
호통을


휴정을
선포했다.

휴정시간
동안
변호사와
지인은
들풀하나를
재차
설득했지만
나의
한국

결심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변호사와
지인은
설득을
포기했고, 다시
재판이
개시되었는데, 판사는
분위기를
파악하려는

재판정을



둘러보고


들풀하나에게

이상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방망이를
들더니
들풀하나의
망명을
허용한다는
취지와
함께 '땅땅땅'하고는
주섬주섬
서류를
챙겨
빙긋히
미소를
지으며
나가버렸다.

거짓말
같은
사실이며
지금까지
들풀하나가
독일에
남아있는
근거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끝으로

마디, 역사는
처음이
마지막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마무리가
처음을
지배한다. 황구라! 돌아오시오. 마지막
사족, 황석영은
들풀하나의
대학
선배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