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하신당
(주)CPN문화재방송국
아무 것도 모르는 동남동녀 2명은 발길을 재촉하여 총총히 밀림사이로 사라지자 그렇게 심하던 풍랑은 거짓말처럼 멎어지고 항해에 적당한 바람만이 불어왔다. 안무사는 결국 일행을 재촉하여 급히 출항할 것을 명하니 배는 순풍을 받고 일시에 포구를 멀리하게 되었다. 이 무렵 속은 줄도 모르는 어린 남녀는 아무리 찾아도 필묵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냥 해변으로 돌아와 보니 배는 벌써 멀리 해상에서 순풍을 타고 육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동남동녀, 땅을 구르며 고함을 쳤으나 배는 어느 듯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원망스러워 울부짖던 두 어린 남녀는 이제는 지쳐 어쩔 수 없이 본래 유숙하던 자리로 돌아왔으나, 날이 저물어감에 따라 공포와 추위,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리다 결국은 죽어갔다.한편 안무사는 무사히 본국으로 귀착하여 울릉도 현황을 복명하였으나 당시 연민의 정과 죄의식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날 날이 없었다. 그러다 수년 후 재차 울릉도 안무(按撫)의 명을 받고 입도(入島)하여 혹시나 하는 기대에 태하리에 착륙하여 수색을 하였던 바 전년에 유숙하던 그 자리에 두 동남동녀가 꼭 껴안은 형상으로 백골화(白骨化)되어 있었다.
안무사는 이 정황을 보고 회한에 젖어 혼령을 달래고 애도하기 위해 신당을 짓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매년 음력 2월 28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농작이나 어업의 풍년도 소원하고 위험한 해상작업의 안전도 빌었다. 그리고 신조 선박의 진수식이 있으면 꼭 태하의 성하신당(성황당)에 제사하여 해상작업의 무사안전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

▲ 성하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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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서도 황토가 난다. 바로 이 동남동녀의 전설이 전하는 태하리 해안이다. 고려 조정에서는 울릉도에 자주 관리를 보내서 섬의 관리 실태를 파악하고자 했다. 하지만 풍랑이 심하고 길이 험했던 관계로 조정에서 임명된 관리는 주로 영덕이나. 포항 등지에서 며칠 유숙하면서 조정에는 거짓 보고를 하곤 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궁여지책으로 임명된 관리에게 이 태하이 황토를 퍼오게 하였다고 한다. 태하는 원래 황토가 많이 난다 하여 황토구미로도 불리운다. 삼척의 어느 사또가 관기와 선유놀이 갔다가 돌풍에 휘말려 울릉도에 표착하는데 석달 열흘을 먹을 게 없었던 일행이 이 황토를 먹고 연명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 황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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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면 현포는 해상 쉼터이다. 송곳봉의 바람이 현포에 와서 인자해진다고 하니 현포 방파제에서 내려치는 저녁노을은 가히 경탄을 자아낸다. 꿈틀거리는 파도에 해적거리는 저녁노을은 산등자락에서 기울어진 크기만큼 그늘로 휘감겨가니 바다가 색채의 율동만큼 검어진다. 그래서 검을현(玄)의 문자를 달고 있는 현포 항구이다. 낮게 깔린 어둔 색채에 내려치는 노을, 송곳봉, 그리고 바다 저 먼 곳의 코끼리 바위. 울릉도의 비경의 절정이 바로 여기에 머문다.

▲ 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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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섬 울릉도가 만들어낸 나리분지. 다른 화산섬의 중심, 백두산에는 천지, 한라산에는 백록담처럼 호수가 생겨났으나 울릉도는 커다란 평지를 만들어냈다. 주변이 물이 흐를 수 있도록 경사도가 깊은 것도 이유가 되지만 어쨌든 섬 중심의 분지는 주로 농토가 드넓게 펼쳐져 있으니 마치 그 동안 보아왔던 섬의 풍경과는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 같다.
여기저기 무변하게 펼쳐지는 분지는 나리꽃이 가득하다. 그리고 산을 중심으로 헤아려지는 구름과 해무들은 신령스러워 비경이 따로 없다, 각종 산나물과 더덕, 평화롭고 고요한 대지에 내려앉은 작은 꽃잎 같은 평화가 느껴진다. 모든 물상이 완만하여 그림자 같으니, 아주 작은 바람에도 춥지도 덥지도 않는 분지만의 소요가 가득하여 저절로 산을 굽어보게 되는 것이다.

▲ 너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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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이사부가 동해의 풍랑을 헤쳐가면서 우산국 정벌에 나설 때 1천 5백년 후의 우리들에게 남겨놓은 것은 비단 울릉도의 황홀한 절경만이 아니라, 이 국토가 우리민족이 가야 할 혼의 터전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나리분지 곳곳에서 만난 모든 물상이 울릉도의 역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서 느껴지는 평화였다. 더불어 울릉도가 품고 있는 이색적, 특질적 문화의 향수로 다가서는 것이 아닌 진정 발길이 머무는 곳에 느껴지는 아름다운 경치, 그리고 전설 그게 이사부가 1천 5백 년 전에 우산국을 복속시킨 진정한 사자의 포효였을 터이다. 우리의 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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