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목수가 일러주는 우리 가구 제대로 짜기

[서평] 중요유형문화재 목수가 재현 <우리 가구 손수 짜기>

등록 2009.08.21 09:39수정 2009.08.2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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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반은 만드는 지역이나 다리 생김새, 쓰임새에 따라 이름이 다 다르다. 지역에 따라 해주반, 통영반, 나주반이 있고, 다리 생김새에 따라 개다리를 본떠 만든 개다리소반, 호랑이 다리를 본 떠 만든 호족반이 있다. 상판은 둥글거나 네모지거나 각이 졌다. 쓰임새에 따라 군에서 쓰는 수라상, 머리에 이고 가는 공고상, 술과 안주를 담아 나르는 주안상 따위가 있다.-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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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구 손수 짜기>겉그림 ⓒ 현암사

소반은 반찬 몇 가지 간단하게 놓고 혼자나 둘이 단출하게 먹기 좋고 들기 쉬운 작은 상이다. 여럿이 먹을 때는 크고 둥근 '두레상'을 썼다.


개의 다리를 본떠 상다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개다리소반이라? 호족반이나 행자반, 공고상 등처럼 유식(?)하게 한자식 이름을 쓰지 않고 이처럼 보이는 그대로를 쓰고 있는 '개다리소반'이란 '상' 이름이 유독 재밌고 살갑게 느껴진다.

개다리소반은 서민들이 주로 쓰던 상이다. 이 때문인지 글을 통해 자주 만날 수 있는 상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그만큼 널리 쓰였다는 것일 게다. 하기야 내 어린 시절의 오랜 기억 속에도 칠이 벗겨지고 갈라진 낡은 소반 하나가 있다.

개다리소반과 모양새가 비슷한 호족반은 양반들이 주로 썼다. 둘을 나란히 놓고 그 차이점을 누가 애써 설명해주지 않으면 쉽게 구분해내지 못할 만큼 개다리소반과 호족반은 많이 비슷하다. 개다리소반처럼 보이는 그대로 부르지 않고 호랑이 다리에 해당하는 한자를 끌어다 쓴 것은 이 상을 쓴 사람들이 주로 한자를 쓰는 양반들이었기 때문 아닐까?

은행나무 목재는 가볍고 매끄러워서 옻칠을 하면 좋다. 가벼우면서도 다듬기가 쉽고 마른 뒤에도 잘 뒤틀리지 않아 소반을 만들기에 으뜸이다. 은행나무로 만든 소반은 '행자반'이라 해서 옛날부터 귀하게 여겼다. 그릇이나 도마 같은 부엌살림을 만들어도 아주 좋다. 은행나무에는 플라보노이드가 들어있어서 항균작용을 한다. 탄력이 좋아서 바둑판이나 장기판을 만들기도 한다. 은행나무는 빨리 자란다. 굵게 자란 은행나무는 판재로 켜서 반닫이나 궤를 짜서 쓴다.-책속에서

소반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쓰이는 나무는 은행나무란다. 은행나무 특유의 성분이나 향이 벌레가 스는 것을 방지하고 뒤틀림과 같은 변형이 적기 때문이란다. 소반은 또한 물에 닿는 일이 많기에 나무가 트거나 흠이 생기지 않도록 옻칠을 해야 하는데 은행나무는 옻칠도 잘 먹기 때문이란다.


은행나무 외에 가볍고 잘 터지지 않는 피나무나 오리나무, 가래나무, 소나무 등도 소반을 만들기에 좋다. 은행나무로 만든 소반을 '행자반'이라 하여 귀히 여겼다면 서민들 차지는 쉽지 않았겠다. 그렇다면 서민들이 주로 썼던 이 개다리소반은 이런 나무들로 주로 만들지 않았을까? 소반 하나로 미뤄 짐작해보는 우리네 옛 삶과 풍습이다.

굵은 은행나무는 판재로 켜서 '반닫이'나 '궤' 등을 만들기도 했단다. 이 가구들도 우리 옛 생활에 소반처럼 유용하게 쓰이던 우리 가구들이다. 오늘날 이 가구들을 대체하는 것은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박스나 수납함 들이다. 은행나무 외에 소나무, 느티나무, 가래나무, 피나무로도 만들어 옷이나 책, 돈, 곡식 등을 보관했단다. 궤는 흔히 '궤짝'으로도 불렸다.


궤는 위판을 두 쪽으로 갈라 한쪽을 여닫이문으로 쓰지만 반닫이는 문을 앞쪽에 내어 위에 이불 따위를 올릴 수 있다. 비슷한 쓰임새로 '함'이 있다. 장, 농, 서안, 경상, 문갑, 뒤주, 약장, 책장 등도 우리의 옛 생활에 유용하게 널리 쓰이던 나무로 만든 가구들이다.

이런 가구들뿐이랴. 우리 조상들은 건축물들은 물론 괭이나 낫, 호미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농기구들, 도마나 칼자루 등 일상에서 쓰이는 거의 모든 것들을 나무로 만들어 닳고 닳을 때까지 대를 물려 썼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떤가?

지금 우리는 우리 산에서 나는 나무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산다. 녹화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몇 안 되는 국가이건만 목재 자급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집집이 쓰고 있는 가구는 수입 가공목으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가공목들은 원거리 운송에 따른 여러 환경 문제를 일으킬뿐더러 독한 화학약품을 써서 방충 방부 처리하여 우리의 건강을 크게 위협한다. 아울러 가구는 대를 물려 쓸 내구재인데도 일회용 소모품처럼 쉽게 사고 쉽게 버리다보니 나무를 통한 문화 체험의 기회도 함께 버려지고 있는 셈이다.

a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호족반, 공고상, 개다리소반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호족반, 공고상, 개다리소반 ⓒ 현암사


a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나주반, 해주반,통영반, 소반이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나주반, 해주반,통영반, 소반이다. ⓒ 현암사


<우리 가구 손수 짜기>(현암사 펴냄)를 펴낸 출판사의 이야기다. 책의 저자들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1990년)된 목수 조화신과 심조원, 그리고 김시영이다. 책의 바탕이 되고 있는 가구 짜기 기술은 문화재 목수 조화신의 오랜 노하우. 그가 작업의 전 과정을 일일이 재현하는 것을 보고 심조원은 글을 쓰고 김시영은 그림(세밀화)으로 표현했다.

저자들은 목재 고르기부터 가구 마무리하기까지, 나무 한그루가 가구가 되는 전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이 과정에서 우리 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나무들의 특성과 그에 따른 손질, 우리의 전통 목공 기술과 만드는 법, 고유 연장 등을 짧은 글과 세밀화로 들려준다.

여러 가지 화학약품들을 사용하여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만들고 쉽게 버려지는 요즘 가구들과 달리 우리 조상들은 가구의 쓰임새에 따라 나무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선택, 물건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오늘날처럼 몸에 좋지 않은 화학 약품들을 전혀 쓰지 않았음은 물론, 못하나 함부로 쓰지 않았다.

새로 장만한 가구 때문에 눈이 따끔거리고 머리가 아팠다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가지 화학약품들을 써서 가구를 만들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귀띔 하자면, 자동차용품점 등에서 파는 휘튼치드 성분의 '소취제(탈취제)' 알맹이를 가구 속이나 냄새가 심한 새 자동차 안에 며칠 넣어두면 거북하고 불쾌한 화학냄새를 어느 정도 없앨 수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내가 살 집은 내가 손수 짓자, 내가 쓸 가구는 내가 만들어 쓰자'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관련 동호회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란다. <우리가구 손수 짜기>는 이런 추세와 호흡을 같이하는 책이다.

이처럼 내가 쓸 가구 손수 만들기 붐이 지속되면서 최근 가구 만들기(DIY) 길잡이 책들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책도 책 나름이다. 이 책은 우리의 전통방식대로 만드는 것을 고집한다. 저자들은 나무선별부터 나무 베기, 켜기와 말리기, 톱질과 대패질, 짜 맞추기와 마름질 등 우리 전통가구 만들기 전반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우리가구나 가구 만들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썩 유용할 것이다. 그런데 조만간 가구를 만들 계획이 전혀 없는, 목수도 아닌 나 역시 이 책을 무척 재밌게 봤다. 어떻게?

▲ 딸을 낳으면 심었다는 오동나무는 몇 년을 자라야 장을 짤 수 있을까? ▲ 자라면서 속이 텅텅 비는 피나무로는 벌통, 쌀통, 김칫독을 만든다. ▲ 오동나무는 태워서 가구를 만든다? 가래나무로 비행기를 만들었다? ▲ 해인사에 있는 고려대장경 경판 일부와 충남 갑사 월인석보 판목은 단풍나무 ▲ 벼락 맞은 대추나무 목재 도장이 진짜 좋은 이유는? 옛사람들이 물오리나무로 장승을 깎은 진짜 이유는? ▲ 우리나무 중 가장 무겁고 단단한 나무는? ▲ 쉽게 구할 수 있는 잘 썩지 않고 튼튼한 목재 밤나무로 가구를 짜지 않은 이유는? ▲ 상수리나무 술통이 최고로 좋다? ▲ 천년도 더 된 천마총 그림은 자작나무 껍질에 그렸기 때문에? ▲ 향나무는 진흙에 묻었다 써야?

어떤 나무로 무엇을 만드는지 (나무의)특성은 어떤지 등, 내가 좋아하는 나무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전통 건축이나 가구들을 보면서 어떤 나무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할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각종 연장 이야기들도 재밌다. 오래 묵어 손때가 묻을수록 가치가 더욱 빛나는 우리의 옛 가구들처럼 묵묵하게 제 할일을 다할 그런 책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마땅하겠다.

우리 가구 손수 짜기 (보급판) - 나무 베기에서 가구 짜기까지 그림으로 그린 목공 길잡이

조화신 목수, 심조원 지음, 김시영 그림,
현암사, 2009


#우리 가구 #가구 DIY # 목공 #중요유형문화재 제55호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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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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