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베누토 첼리니의 흉상. 그의 얼굴에는 생전의 성격이 드러나 있다.
노시경
"이 사람의 표정이 살아있는 게 신기하지 않아? 이 사람이 생전에 장난기도 많았지만 오만한데다가 성격까지 거칠었대. 이 사람은 여자와 술, 결투와 온갖 악행을 즐겼던 사람이야. 생전에 허영심 많고 안절부절했다는 사람이야. 그 성격이 청동상에 고스란히 남아 있지 않아?" "진짜, 눈빛도 그렇고 이마를 찡그리고 있네!"그가 만든 장식조각은 명품으로 가득 차 있고 그를 기념하기 위해 이 동상을 만들었겠지만 나는 이 동상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동상의 얼굴에 동상 주인공의 성격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동상의 주인공이 살아나는 듯한 표현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다리는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피렌체가 낳은 시성(詩聖), 알리기에리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가 바로 이 다리에 등장한다. 단테는 그의 운명적인 연인, 베아트리체(Beatrice, 1266?~1290)를 이 다리에서 처음으로 만나 사랑을 느꼈다고 한다. 이 운명의 다리에서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일생에 단 한 번 보았을 뿐이고 그녀에게서 평생 사랑을 느꼈다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순수함을 이야기할 때 주로 동원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단테가 직접 쓴 글을 보면 그는 9살(1274년) 때 아버지를 따라 베아트리체 집의 잔치에 갔다가 한 살 아래인 베아트리체를 처음 보고 사랑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9년 후에 베키오 다리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나가는 베아트리체를 우연히 스쳐 지나면서 보았다고 한다. 이 2번의 만남이 단테와 그녀가 이어진 인연의 전부였다.
부자 상인과 결혼을 했던 베아트리체는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을 했다. 그 애잔함이 단테의 상상력과 흠모의 마음을 더 크게 했을 것이다. 단테의 저서, 신곡(La divina commedia)을 읽으면, 단테는 실존했던 베아트리체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쳐 지나가는 여인에게서 행복을 느끼고 그녀를 영원한 여성으로 평생 찬미하는 감정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시 인구가 많지 않았던 피렌체에서 평생 2번 밖에 만나지 않았다는 것도 수긍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나는 단테가 자신의 짝사랑을 너무 신비스럽게 포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의 역사를 깊게 파고 들어가면 평소의 지식과 어려서부터의 환상은 깨어지게 마련이다. 대단한 문장력을 가지고 있던 단테는 아마도 현실과 조금은 동떨어져 살던 몽상가였던 것 같다.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이야기는 단테라는 문인의 상상력의 산물일 것이다.
나의 사랑스러운 베아트리체, 나의 아내는 조그만 여자와 함께 내 앞을 걷고 있었다. 조그만 여자인 나의 딸은 작은 베아트리체였다. 나는 평생 2번이 아니라 매일을 보고 살아가는 사랑스런 나의 여자, 나의 딸과 베키오 다리 앞에 있었다.
내 귓가에는 왠지 이 고색창연한 베키오 다리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조용필의 노래 '슬픈 그대 베아트리체'가 윙윙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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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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