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인 내가 여자 화장실에 갔던 사연

여러분은 그런 경험 없으시남요?

등록 2009.09.04 13:41수정 2009.09.0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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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면 여러 해프닝이 있기 마련이다. 익숙한 삶의 환경인 집을 떠나서 새로운 곳으로 가보는 것이니 실수가 있게 마련이다. 이번 여행에서 벌어졌던 해프닝, 즉, 남자인 내가 여자 화장실에 갈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소개한다.

호주는 다른 건 몰라도 화장실 인심은 후하다. 여행 도중 어느 마을에 가더라도 공중변소가 있고, 공중변소에는 화장지가 걸려 있다. 그리고 그런 공중변소는 대체로 마을 중앙에 있는 공원에 위치하여 찾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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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화장실 표시 여행자에게는 고마운 표시이지요 ⓒ 김종호


공원뿐만 아니다. 여행자들을 위해 도로변에 설치된 쉼터에는 대부분 화장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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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 쉼터의 화장실 호주는 한국 처럼 고속도로 휴게실 같은 것이 별로 없지요. 그리하여, 아웃백 지역에는 황량한 벌판에 이렇게 혼자 서 있는 화장실이 많지라. 왼쪽에 둥그런 통은 빗물통이라오. 거리가 멀어 도저히 수도를 연결할 수 없으니, 빗물을 받아서 손을 씻지요. ⓒ 김종호


그렇지만,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은 주유소 화장실이다. 주유소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이 호주의 상식이고, 화장실이 없으면 장사가 안 되니까, 거의 모든 주유소에 화장실이 있다. 특히, 시골의 주유소들이 그렇다. 외딴 곳에 위치한 시골 주유소들은 기름뿐만 아니라, 화장실, 레스토랑 등등 여행객들을 위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달, 아웃백 지역으로 한 달 간 여행을 다녀왔다. 주행거리가 6천km이었다. 4km가 10리이니, 1만 5천 리이다. 한반도를 3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할 때, 한반도의 다섯 배 길이를 여행한 셈이다. 그렇지만, 호주 전체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명함도 못 내민다. 호주 땅덩어리는 엄청 넓다. 남한 크기의 거의 백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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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아웃백 도로 끝이 보이지 않지요? ⓒ 김종호


크론커리를 지나칠 무렵이었던가?  갑자기 뒤가 무겁다고 느껴졌다. '아침에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웬 일일까? 다음 번 마을에 가서 일을 보고 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작은 마을 하나를 그냥 지나쳤다. 마을마다 정차하다 보면, 그 먼길을 언제 가누?

그런데, 그로부터 몇 분 후, 엄청난 배설욕이 밀려왔다. '이거 큰일 났구만. 빨리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데...' 혼자 운전을 하니, 지도를 볼 수도 없다. 마을이 나타날 때까지 좌우당간 빨리 달릴 수밖에 없다.


한참 달리는데, 저 앞에 '로드하우스' 가 보였다.  로드하우스는 시골의 주유소로서, 트럭들이 주로 정차하는 곳이다. 다행이었다. 로드하우스라면 틀림없이 화장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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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하우스 주유소 간판 호주 시골에 가면, 아주 큰 트럭들이 있고, 그 트럭들이 기름을 넣는 주유소가 따로 있지요. 주유소 공간이 넓고, 또 천정이 높아야만 트럭이 움직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주유소는 24시간 영업아지요. 큰 트럭들이 운행하는 것은 보통 오밤중이기 때문입니다. ⓒ 김종호


차를 세우자 마자, 화장실로 뛰었다. 대변기에 앉아서 아주 커다란 핵폭탄을 터트릴 예감을 갖고 남자 화장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변소문이 잠겨 있다는 표시가 문고리에 있었다. 문 아래를 보니, 어떤 사람의 신발이 보였다. 아이쿠, 누가 용변을 보는 중이구나!

이 남자 화장실에는 대변소가 하나뿐이었다. 소변기가 따로 비치되어 있었지만, 이 경우 해당 사항이 없었다. 나는 화장실 앞에서 기다렸다. 그러다가, 좀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남이 볼일을 보고 있는데, 그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그 앞에 서 있어야 하남? 변소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걱정이 되었다. 만약 어떤 다른 사람이 이리로 와서 화장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고 치자. 그가 소변을 본다는 보장은 전혀 없지 않은가? 만약, 대변소 앞에서 기다리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멍뚱히 새치기 당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뒤는 점점 급해지는데... 나는 이렇게 동동 거리고 있는데...

다시, 변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변소칸 앞에 섰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런데도, 함흥차사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문이 열리지 마자 돌진하여 일을 볼 참으로 나는 아예 100 미터 경주 자세를 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화장실 안에서 별 기척이 없더니, 드디어 약간의 부시럭 소리가 들렸다. 이제 휴지로 닦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볼 일 다 보고, 바지를 입고 있나? 추잡한 상상이라고 생각되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숙제는 다름 아닌 바로 그것이었다.

문을 두들길까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그만두었다. 이 넘이 야코 먹으면 나만 더 죽을 일이다. 늦게 나온다고 소리 소리 질러봐야 소용 없다. 용변에 시간 제한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늦게 나온다고, 코를 잡아 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더욱 급해졌다. 고통을 참느라, 내 얼굴은 일그러져 갔고, 허리는 비비 꼬이고 있었다.

그 때, 번개 같이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여기는 로드하우스이다. 트럭 운전자들이 잘 들리는 주유소이다. 트럭 운사들은 대체로 남자이다. 그러니, 여자 화장실은 비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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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화장실 표시 호주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 김종호


고개를 내밀어 여자 화장실 쪽을 쳐다 보았다. 시골 길에 서 있는 화장실이라서 밖에서도 다 보이도록 문이 열려 있었다. 남자 화장실과 달리 여자 화장실의 변소칸은 두 개였다.  여자들은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처리하니, 남자들처럼 서서쏴 자세의 소변기를 따로이 설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거다.

변소칸 둘 다 비어 있었다. 그러니까, 여자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올쿠나! 미련하게 참느니, 여자 화장실을 이용하자. 여자 화장실이라고 뭐 다른 게 있겠어? 일 보고 재빨리 나오면 되는 것이지. 에라, 모르겠다.

급한 중에도 좌우를 살폈다. 만약 누구라도 내가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는 광경을 본다면, 필시 주유소 주인에게 신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었다. 한적한 시골 길 로드하우스였다.

여자 화장실로 재빨리 들어가서, 그 중 안쪽 변소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쪽 것이 아무래도 남의 눈에 덜 뜨이지 않겠는가.

앉자 마자, 밑에서는 대포 소리가 터진다. 어이구 시원해... 드디어 나는 살았구나!  아이쿠쿠...

오래 참았던 탓인지, 금방 끝나지 않았다. 한참을 응응대고 있는데, 바깥에서 발자욱 소리가 들리면서 어떤 사람이 여자화장실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긴장감이 다시 온몸을 휩쌌다. 필시 여자일 터인데...

나는 소리를 죽였다. 응응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항문에 힘을 팍 주어서 용변 대포도 막아 버렸다. 여자들의 대포 소리는 평생 들어본 적이 없지만, 아무래도 남자 대포 소리가 더 크지 않을까? 그렇다면, 저 여자가 내 대포 소리를 듣고, 내가 남자인 것을 눈치채면? 안되지 안돼. 큰일 난다. 나는 항문에 다시 힘을 꽉 주었다.

조심할 것이 또 없나, 이리저리살피다가, 내 신발에 눈길이 멈추었다. 오금이 다시 저려왔다. 화장실 문짝의 아래 공간이 넓다. 바깥에서 내 신발이 보일지도 모른다. 내 신발은 남자 신발이고, 누구라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만약, 저 여자가 내 신발을 보고, 내가 남자인 것을 알아챈다면? 그리하여, "끼약!" 하고 비명을 지른다면? 그리고 냅다 달려가서, 주유소 주인을 부르면? 그때, 나는 나는 바지를 움켜잡고 튀어야 하나? 

침착하자. 잘못하면,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호주는 여자에 대한 배려가 극심한 나라이니, 경찰에 체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성희롱이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아닌가? 그것으로 인생 종친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여자 화장실 이용한 것도 넓게 보면 성범죄에 속할지 모른다.

아니, 변태로 취급받을까?  "여자 화장실을 출입하는 남자" - 그런 제목으로 내일자 신문에 나오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것보다도 "무식한 동양인"이 그래도 나을지 모른다. 영어 문맹자인 척 하자. 'ladies'가 무얼 뜻하는지 몰랐었다고 둘러대자. 범죄자가 되어서 감옥에 가는 것보다야, 잠시 "무식한 놈"이 되는 것이 백배 나을 것 같다. 호주에는 우리 외국인이 잘 알 수 없는 화장실 표시가 흔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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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어느 화장실 앞 표시 이것이 남자 화장실인지, 여자 화장실인지, 구분 가는 한국분들 아마 거의 없을 것이구만요. 호주에서 20년 가까이 산 나도 헷갈립디다. 그래서, 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에는 그 앞에서 한참동안 어정어정 거닐었다오. 드디어, 어떤 사람이 여길 들어갑디다. 근데, 여자분이었어요. 흐미... 모르고 들어갔으면 큰일날 뻔 하였구만요. EWES는 암양이라는 말이라는 것을 나중에 사전 찾아 보고 알았지요. 사전 들고 다니면서 변소 찾을 수도 없구. 참내. ⓒ 김종호


한참동아 숨 죽이고 있으니, 바깥이 조용해졌다. 그 여자가 가버린 것 같았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서, 문을 활짝 열고 나가지 않고, 조금만 열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살그머니 내밀어 보았다. 아무도 없다.

이때다!

나는 잽싸게 튀었다. 손도 안 닦고 냅다 튀었다. 뒤도 돌아 보지 않고 튀었다. "변소 들어갈 때 생각과 나올 때 생각이 다르다" 라는 속담이 있는데, 나는 변소에 들어갈 때도 뛰었는데, 나올 때는 더 빨리 뛰었다.

덧붙이는 글 | 여러분들도 여자 화장실 들어가 본 적 있소이까?
아니, 여자분들은 남자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본 적이 있는지요?

고백들 하시라우요.

고백하려면 댓글로,
고백 안하면 100대 ! 흐흐


덧붙이는 글 여러분들도 여자 화장실 들어가 본 적 있소이까?
아니, 여자분들은 남자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본 적이 있는지요?

고백들 하시라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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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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