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내 가족을 죽인 이와 어떻게 화해했을까

르완다 학살 다룬 영화 <우리가 용서한 것같이>와 <호텔 르완다>

09.09.22 11:36최종업데이트09.09.22 11:36
원고료로 응원
올해로 일곱 번째인 서울기독교영화제(SCFF)가 9월 17일부터 22일까지 서울극장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영화제엔 '달리다, 꿈'을 주제로 총 50여 편의 장단편 영화가 출품되었다. 특정 종교와 연관된 작은 영화제이기는 하지만 영화팬들의 이목을 끌만한 영화들도 몇 편 포진해 있다.

개막작으로 상영된 <파이어프루프(Fireproof)>는 50만 달러의 저예산 제작비로 3천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둬들여 미국에서 주목받은 영화로 부부간 관계와 소통을 회복해가는 이야기이다. 또한, 고 유현목 감독의 1965년 화제작 <순교자>의 경우 개봉 당시 교계로부터 사탄논쟁에 휘말린 문제작으로 44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평가될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러한 작품들에 섞여 조용히 관객들 발길을 기다리는 다큐멘타리 영화가 한 편 있다. 영화 <우리가 용서한 것같이(As We Forgive)>는 1994년 인종청소의 대학살을 경험한 르완다의 현재 모습을 담담하고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소개해준다.

르완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우리가 용서한 것같이(2008) 이웃사촌을 적으로 만든 르완다 사태, 그들이 다시 화해와 용서를 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 우리가용서한것같이

르완다에는 3개 부족이 살고 있었다. 다수종족인 후투족, 소수종족인 투치족, 피그미족처럼 숲속에 사는 트와족이 그들이다. 투치족 국왕의 통치 아래 수세기 동안 평화롭게 살고 있던 이 나라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것은 독일과 벨기에의 식민지배 이후이다.

지배자였던 벨기에인들은 각 종족들을 차별하면서 인위적으로 계급사회를 만들며 기존 사회구조를 바꾸어 버렸다. 소수종족인 투치족들은 지배계급으로 선택되었고, 이들에게만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졌다. 자국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어가기 위해 차별대우를 시작한 것이다. 벨기에인들은 종족간 구별을 더 쉽게 하기 위해 급기야 종족별 신분증까지 만들었다.

억지로 갈라놓은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은 이로 인해 그 골이 더욱 깊어졌다. 벨기에인들의 무모한 종족차별정책은 후투족의 마음에 증오심을 심어주었다. 훗날 벌어질 대학살의 원인은 이미 이때부터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벨기에인들은 나중에 투치족이 독립을 요구하자 단번에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고, 1959년에는 후투족의 유혈폭동을 사주하여 투치족의 왕정을 무너뜨리기까지 했다. 이때 단 며칠 만에 10만이 넘는 투치족들이 보복이라는 이름 아래 살해되었다. 벨기에가 르완다에서 손을 뗀 1962년에 후투족 정부가 들어서자 투치족은 완전히 2등 국민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후투족 정부는 벨기에인들이 고안한 종족별 신분증을 더욱 알아보기 쉽게 만들었다. 후투족 과격파들은 처형과 폭력으로 수십만을 학살했으며, 이로 인해 폭력은 더욱 악순환하게 되었다. 종족차별은 더욱 더 깊이 뿌리 내렸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투족 대통령 주베날 하비아리마나는 1973년 급기야 '종족균형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이것은 학교에서 학생을 받을 때나, 정부에서 공무원을 뽑을 때, 실제 종족간의 구성비율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르완다는 85%에 달하는 후투족, 14%의 투치족, 그리고 1%에 불과한 트와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고등교육과 공직의 기회는 대부분 후투족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호텔 르완다(2004)> - <쉰들러 리스트>의 아프리카 버전

▲ 호텔 르완다(2004) 100일 동안 1268명 사람들 목숨을 지켜낸 폴 루세사바기나의 실화를 그린 영화로 르완다의 내전과 인종학살을 전세계에 알렸다. ⓒ 호텔르완다

아카데미영화제 3개 부문에서 후보로 지명된 <호텔 르완다>는 1994년 있었던 르완다 내전이 배경으로 실제 그 땅에서 일어난 사건을 자세히 묘사한다. 르완다의 하비아리마나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격추되어 사망하자, 후투족 자치군은 대통령 살해를 빌미로 투치족을 닥치는 대로 살해하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학살로 위협을 느끼게 된 '밀 콜린스 호텔'의 지배인 '폴 루세사바기나'는 투치족 아내와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호텔로 피신한다. 호텔에는 학살을 피해 피난민들이 속속 모여든다. 호텔 지배인 폴은 후투족 자치군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100일의 긴 시간 동안 1268명의 사람들 목숨을 지켜낸다.

이 감동실화의 실제 주인공인 폴 루세사바기나는 2005년 미국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수상하고, 이 스토리에 감동을 받은 영화감독 '테리 조지'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다.

폴 루세사바기나의 가족이 두 명의 조카와 함께 벨기에로 떠나면서 이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그 후, 그 땅에 남았던 르완다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용서한 것같이(2008)> - <호텔 르완다>, 그 다음 이야기

영화 <우리가 용서한 것 같이>는 1994년에 있었던 르완다 사태 이후를 다룬다. 르완다 정부는 밀린 법정업무로 인해 범죄를 자백한 대학살 살인자 4만여 명을 풀어주기로 결정하면서 그들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학살을 경험했던 사람들 '로사리아'와 '사베리', '찬탈레'와 '존'이라는 인물들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로사리아'는 남편과 자녀 네 명을 잃었고, 그 자신도 다쳤다. '사베리'는 그 일에 가담한 인물이다. '찬탈레'는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30명 중 오빠와 본인만 살아남았고, '존'은 그의 아버지를 죽인 동네친구이다.

영화는 일련의 사태를 거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로 갈려버린 이들의 현재 모습을 추적한다. 10여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피해자들의 슬픔은 깊은 상처가 되어 남았고, 광기에 휩쓸렸던 가해자들은 수치와 혐오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 사이의 관계 회복은 결코 쉬워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시간은 다시 흘러가고 남겨진 이의 삶은 계속된다. 영화는 이웃에서 적으로, 그리고 다시 적에서 이웃으로 화해의 수순을 밟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각각의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배치하여 각 인물의 생각이 명확하게 전달된다. 무엇보다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짜인 스토리가 아니라 아프리카 르완다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찍어 스크린 위에 올려 놓았다는 점에서 대단한 흡입력과 현장감을 선사한다.

르완다의 비극은 또한 우리의 문제

르완다의 비극을 어딘가에 멀리 있는 미개한 나라의 사건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족간의 대립, 인종 청소의 문제는 '문명수준이 떨어지는' 아프리카 땅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는 아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오랜 대립, 코소보 사태 등도 사실 이 범주를 넘어서지 못한다.  

르완다가 직면했던 대량학살의 참상은 오늘날 지구촌 어디인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비극이다. 인간의 갈등과 탐욕이 있는 한 계속 진행될, 어쩌면 우리가 영원히 떠안고 가야 할 숙명 같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증오와 복수는 특정 시대와 특정 장소에서만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들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세계 어디서나 있는 법이다. 식민지배에서 독립을 하고, 곧 둘로 나뉘어 서로 총칼을 겨누고, 전쟁의 상처로 해결되지 않은 앙금은 자자손손 계속되고, 결국에는 서로 원수로 여기는 사례가 어디 아프리카에만 한정될까? 용서와 화해는 그들만의 결론이 아니라, 우리 모두 찾아가야 할 해답이다.

증오를 이겨내고 진정한 용서와 사랑을 회복해 가기 위해 노력하는 르완다의 경험은 우리에게 필요한 성숙함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다. 그러한 성숙함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세상을 여는 기반이다.

호텔 르완다 우리가 용서한 것같이 르완다 서울기독교영화제 인종 청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