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자율화는 일제고사가 이끈다?

'꼬마수능' 일제고사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학교

등록 2009.09.19 16:56수정 2009.09.1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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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 13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이하 일제고사)가 시행된다. 이태 전까지만 해도 지능이나 적성 검사처럼 별 부담 없이 여겼는데, 올해 들어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꼬마 수능'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2학기 들어 학교마다 최고의 이슈는 신종 플루가 아니라, 일제고사다. 신종 플루로 인해 소풍과 체육대회, 축제 등이 축소되거나 취소될지언정 학교마다 '야자'와 보충수업은 변함없고, 일제고사 대비반을 운영하는 학원은 외려 특수를 맞고 있다. 학교마다 중간고사 기간과 겹쳐 있건만 중간고사는 일제고사에 밀려 얘깃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점수를 올리기 위해 지역 교육청까지 나서서 일제고사 성적을 해당 과목 수행평가 등에 반영하라는 등의 대책(?)을 학교에 귀띔해주기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얼마 전 중간고사를 일제고사로 대체한다는 학교마저 나타났다. 초등학교에 일제고사 대비용 문제집이 등장하고, 중학교는 일제고사 대비 모의고사를 준비하는 등 학교마다 '열병'을 앓고 있다.

 

교육청마다 학교별로 담당 교사 연수를 가졌고, 수시로 학교별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있으며, 서술형 답안 채점단도 곧 꾸릴 예정으로 알려졌다. 또, 시험장 관리를 위해 학교마다 평가본부가 운영되고, 교실 감독관 2인에 복도 감독관 1인이 지정되며, 감독관 명단은 시험 당일 발표되는 등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

 

당일 현장체험학습을 일절 허용하지 않도록 하고, 교육청 홈페이지에 탑재된 일제고사 대비 문제집 자료를 교사와 학생들이 활용하도록 권장하는 등 지침이 내려왔다. 과목 교사는 일제고사 범위를 숙지하고 진도를 확인한 후 학생들에게 핵심정리를 해달라고 주문하며, 심지어는 학교별 중간고사 범위를 일제고사 범위와 연계시켜 공부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며 소개했다고 한다. 교육청이 일제고사 족집게 강사 노릇을 자처하는 셈이다.

 

이쯤 되면 학생 개개인의 학업성취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학습 결손을 보충하며, 교육과정 개선 및 행정, 재정적 지원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겠다는 일제고사에 대한 현 정부의 취지는 온데간데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실 지금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부작용은 이미 충분히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입시에 교육과정이 철저히 종속돼 있는 현실에서, 학교별, 지역별 점수가 공개되는 일제고사의 시행은 학교의 학사일정을 왜곡시키고, 공교육의 붕괴를 재촉할 게 뻔하다. 학부모들의 자녀 성적에 대한 불안을 더욱 부채질하며, 학교마다의 다양한 개성과 특징을 오로지 점수라는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점수와 서열에 얽매이기는 교육청도 사정은 비슷하다. 선거에 나설 현직 교육감이 임기 내 치적으로 내세우기 가장 쉽고 뚜렷한 것이 바로 지역 학생들 성적이다. 교육청마다 입구에 보란 듯 내걸려 있는 '즐거운 학교 만들기'나 '창의적 인재 육성' 등은 이미 철 지난 '헛구호'일 뿐이다.

 

학교자율화계획 급물살, 학교장 인사재량권이 핵심

 

일제고사의 광풍이 전국의 모든 초, 중, 고등학교를 휩쓸고 있는 요즘, 공교롭게도 다른 한쪽에서는 이른바 '학교자율화계획'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예체능 교과목의 학기별 집중이수제와 사회 교과와 역사 교과의 분리, 그리고 학교별 재량활동과 특별활동의 통합 운영 등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핵심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국민공통기본교과별로 연간 수업시수의 20% 범위 내에서 학교별로 자율로 증감 운영을 할 수 있고, 학교장에게 인사 재량권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거칠게 말해서, 학교장 권한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그의 '교육철학'에 따라 특정 교과목을 다른 교과목으로 대체할 수도 있고, 특정 교사를 채용할 수도 해임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모든 학교와 교육청의 초미의 관심사인 일제고사는 학교자율화계획이 연착륙될 수 있도록 나침반(?)이 돼 주고 있는 모양새다. 입시와 일제고사 시험 교과목은 20% 재량의 수업시수를 더 확보할 게 불 보듯 환하고, 지금도 그렇지만 예체능을 비롯한 '기타 교과목'은 천덕꾸러기로 나앉게 될 것이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공개될 학교별 점수와 서열은 지역 사회로부터 '명문'과 '삼류'라는 딱지를 선택적으로 부여받게 될 것이니, 일제고사에 대한 '올인'은 학교장으로서는 오로지 순응할 수밖에 없는 단 하나뿐인 선택지다. 학교장의 교육철학도 학교마다의 건학이념도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간 큰' 교사가 일제고사 시행의 부당성을 공공연히 주장할 수 있을까. 과정과 방법이야 어떻든 학생들의 점수를 끌어올리는 교사가 학교장의 총애를 얻게 될 것이고, 모든 교과목에 걸쳐 학생들의 학습 부담은 경쟁적으로 무한정 올라가 이른바 '4당5락(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의 시대로 퇴행할 것이다.

 

기실 학교자율화계획은 학교마다 다양성을 살려 학생 선택권을 보장하고 특화된 교육을 받도록 하는 취지라며 자랑해 왔다. 그러나 일제고사 시행과 점수 공개는 모든 학교를 일거에 획일화시킨다. 정규 수업은 물론,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사교육 없는 학교' 운영도,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조차도 시나브로 일제고사 대비반이 돼가고 있다.

 

일제고사가 '꼬마 수능'으로 광풍이 되어 몰아치고 있는데도 학교는 막아낼 힘은커녕 의지조차 찾기 어렵다. 정부와 교육청의 지침에 순치된 학교장은 그렇다 해도, 교사들조차 이에 맞서서 버텨내기 힘들다는 투다. 나섰다가 괜히 한 대 얻어맞을 따름이라며 대부분 몸을 움츠리고 있다.

 

오늘도 일제고사 대비 문제집과 씨름하고 있는 쾡한 눈의 아이들과 불안감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학부모, '교육자'임을 잊고 상명하복의 평범한 월급쟁이로 순치된 교사들을 마주하고 있다. 과연 무엇을 위한 일제고사이고, 누구를 위한 학교자율화일까.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2009.09.19 16:56ⓒ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일제고사 #학교자율화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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