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누가 봐도 좌파 아닌 내가 영화제 수장으로 버텨야"

[인터뷰]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공동집행위원장이 본 '영화제 좌파 논란'

09.09.22 18:45최종업데이트09.10.05 09:26
원고료로 응원

▲ "난 노사모도 아닌데...."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공동집행위원장은 지난 14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부산국제영화제좌파'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 문성식


"부산국제영화제(PIFF, 10/8~10/16)는 좌파 영화제다"

뜨악한 표정들 짓지 마시라.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부산영화제는 좌파들의 온상'이다. 좌파들의 온상인 부산영화제는 좌파 영화제가 맞다. 논리적으로. 기자의 의견은 아니다. 다행히.

위 명제의 발신지는 '일부' 원로 영화인들이다. 엄밀히 말해, '원로 영화인'이라 쓰고 '부반투'라 읽는다. '부반투'는 '영화기관 부산이전 반대 투쟁위'라는 조직의 약칭으로 지난 3월 결성됐다. 위원장은 '1970~1980년대 한국영화의 에로티시즘을 주도했던' 정진우 감독이다.

영화기관 부산 이전이 '노사모'의 획책?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 김엘림


지난 7월 30일, 부반투가 '전격적으로' 발표한 성명서를 보자.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부산을 아시아 영상문화 중심도시 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만명 서명 운동에 돌입 한다'는 부산일보 7월 30일자 보도를 보고, 영화기관 부산 이전 반대운동을 해 온 우리 영화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무기로 한국영화계를 부산 독식 체제로 유도하려는 저의를 확실하게 드러낸 것이다. 부산 출신 국회의원 유모씨와 국회의장 김형오씨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며,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다.

명심하기 바란다! 결코 서울을 배척하고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 남양주종합촬영소,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부산 이전을 획책 하다가 난관에 봉착하자 제 2의 착상을 내놓은 노사모 일당은 허망한 꿈으로 전락할 것이다. 청와대도, 국회의장도, 부산국제영화제에 포진한 좌파의 주장과 유혹에 빠져들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이들은 한나라당 유재중 의원이 발의한 '부산 아시아 영상문화 중심도시 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만 명 서명운동을 문제 삼았다. 아울러 부반투는 '부산영화제는 영화기관 부산이전을 기화로 부산시민과 서울시민을 이간시키며 부화뇌동하는 좌파 영화인들을 책동하여 영화계를 분열시키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부반투의 요구가 달성되지 않을 경우 "모든 영화인, 영화관계자, 영화후학들의 부산영화제 불참운동과 동시에 영화제 기간 동안 강력한 반대투쟁을 부산에서 실천 한다"고 결의하며. 영화 기관들의 부산 이전은 노사모 핵심 영화인들, 즉 부산영화제 관련 영화인들에 의해 계획됐다는 주장이다.

영화기관 부산 이전이 못마땅한 '부반투'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은 <오마이뉴스>인터뷰를 통해 영화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 문성식

근본 배경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토는 지역균형발전이었다.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을 각 지방으로 분산 시키는 정책. 이전 대상에는 영화진흥위원회는 물론 영상물등급위원회, 게임물등급위원회, 문화예술진흥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부 원로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영화기관)부산이전 반대 운동이 전개됐다.

이 과정에서 '영진위가 부산으로 내려가게 된 배경에는 김아무개 위원장이 있다'거나 '이창동, 문성근과 같은 노사모들이 노 전 대통령을 설득해 (이 기관들을)부산으로 가게 만들었다', '원흉은 부산국제영화제다'라는 말이 떠돌았다.

나는 노사모가 아닌데 노사모란다. 부산영화제가 성공하고 부산이 영상중심도시가 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기관들이 부산으로)내려갔다고 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어떤 개인이나 부산영화제가 주도한 것은 절대 아니다."

지난 14일, 부산영화제 서울 사무실에서 만난 김동호 공동집행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제 기간 동안 부반투가 전개할(지도 모르는) 항의시위에 대해 특별한 대책은 생각 안 해봤다며 이렇게 말했다.

"칸에서도 영화제 기간에 시위하는 일은 많다. (부반투가)시위를 하면 하는 거고 우리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영상중심도시 특별법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다른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많은 도시들이 있고 광주의 경우는 특별한 정치적인 이유가 있어 노 대통령이 강력하게, 보은 차원에서 밀었기 때문에 그 법은 성립이 됐지만 부산 법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특별법 제정을 위한)운동을 전개한다 해서 이뤄질 일은 아니다.

부산영화제를 폄훼하거나 심지어 격하시키는 움직임이 있다 해도 올해의 영화제가 과거보다 수준 높은 국제적인 행사고 내용면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의 영화제가 될 거라는 것을 보여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리 노력하는 것만이 최상의 해결책이라 생각한다."

왜 부산영화제에 좌파 낙인이 찍혔을까

여기서 끝났다면 좋았을 것이다. 아니었다. 이를테면 지난 2008년, '문화미래포럼'이 출간한 <새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은 한국영화의 지난 10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

"...한국영화계가 그동안 이념과 선동의 레드 카펫을 걸었다. '표현의 자유' 확대는 기존의 가치와 인식을 전복하는 빌미로 동원되었으며 '스크린쿼터 수호'는 한국 영화 보호의 명분을 업은 채 반미 선동의 명분이 되었다..."

문화미래포럼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지지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지난 2006년 10월 발족한 뉴라이트 문화단체로 상임대표인 정용탁 교수(한양대)는 뉴라이트문화예술연합의 공동대표를 겸임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미래포럼의 이 같은 주장은 부반투의 또 다른 성명서를 통해 고스란히 되풀이 된다.

"...영화계에서는 부산영화제의 인적인 구성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며, 과거 노사모, 노문모(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의 핵심 인물들이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과 부산영상위원회의 구성원으로 과거 10년간 한국영화계를 독단했던 좌파 영화인이라는 점을 부산 당국에서 왜 모르고 있는지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

글머리에 언급한 좌파논쟁의 연대기가 전개된 방식이다. 김동호 위원장은 그래서 답답하다. 그저 영화제 좌파논쟁의 원인을 더듬어볼 뿐.

▲ "난 노사모도 아닌데..."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공동집행위원장 ⓒ 문성식


"부산영화제를 통해서 한국영화들이 해외에 많이 소개 됐고 또 한국영화 산업자체가 붐을 이뤘는데, 그 중심에 젊은 감독들이 활동을 많이 했다. 젊은 감독들의 성향이 친정부적이라 할 수는 없었으니까. 봉준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 제작자 유인택씨가 만든 영화(<화려한 휴가>)가 어찌 보면 좌파적이라는 시각으로 평가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전체를 매도해 이 사람들이 활동하는 중심무대가 부산영화제니까 부산영화제는 좌파의 온상이라는 이념논쟁에 휘말린 것 같은데…."

'좌파의 온상'에 '서식'하는 좌파의 뿌리를 자르는 게 급선무였을 것이다. 한 영화계 인사에 따르면 영화제 집행위원인 배우 문성근씨와 몇몇 인사를 부산영화제에서 배제시키라는 지침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날아왔으나 김 위원장이 이를 무마시킨 일도 있다 한다. <부산일보>가 실제 '문성근씨는 부산영화제에서 제외될 것'이라 보도했던 것을 보면 이것이 소문만은 아닌 듯싶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발표된 영화인 시국선언은 부산시와 문광부가 이 같은 압박에 박차를 가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전언이다. 박찬욱, 류승완, 임순례 감독들과 나란히 부산영화제 관계자 6인의 이름이 시국선언자 명단에 올랐던 것이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조종국 기획실장이 사표를 제출하는 것으로 일단락 됐지만, 이와 관련해 김동호 위원장은 애써 담담했다.

"영화제 스태프들도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개인적인 의사 표명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두 명의 행동이나 의사 표현이 전체의 그것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공교롭게도 부산영화제가 경찰청에서는 폭력단체로 분류되기도 하고 직원들이 어디어디에 참여했다는 보고서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개인행동은 할 수 있는 거다. 다만 간부로서, 더욱이 좌파 공격을 받는 입장에서는 신중한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나는)갖고 있었는데 조 실장이 자진해서 그만 뒀다. 그리고 다양한 의견을 투영시키는 것이 영화젠데 집행위원(문성근)을 그런 (정치적 성향의) 이유로 그만 두게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뜻하지 않게 좌파 논쟁에 휘말리다 보니..."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 ⓒ 문성식

유인촌 문광부 장관이 취임 직후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발언한 이후 김철호 국립국악원 원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 안정숙 영화진흥위원장,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등 노무현 정부의 인사들이 차례차례 자리에서 물러난 일을 우리는 기억한다.

문화미래포럼이 지난해 9월, 국회 문화 체육관광 방송통신위원회 고흥길 위원장에게 제출한 문건을 통해 '영화제 등 각종 기관 단체에 포진하고 있는 좌파 이념 편향의 인력에 대한 청산'을 당부한 것 또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문화미래포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진흥위원회 등을 '좌파 세력의 근거지'로 지목했다. 그리고 주요 '타깃'들은 지난 4월부터 감사원의 집중감사를 받아왔으며 그 첫 희생자가 한예종이었던 것.

영화계 좌파 청산 사례로 마지막 순번을 받은 부산영화제의 수장은 그러나 교체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무사히' 감사를 마친 김동호 위원장이 애당초 금년까지만 위원장 일을 하겠다던 생각을 고쳐먹었기 때문이다. 부산영화제의 국제적 위상은 어느 정도 다져놨다고 말하는 김 위원장은 1회 때부터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이용관 교수(중앙대)와 지난 2007년부터 공동집행위원장 직을 수행하며 내부적으로 안정된 체제를 구축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부산영화제의 숙원사업이었던 영화제 전용관 두레라움 영상센터 또한 지난해 기공식을 시작으로 올해는 시공사와 감리회사까지 결정돼 공사만 하면 된단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 했다"고 김 위원장은 생각했다. 그래서 금년 영화제까지만 일하고 그만 두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했으나 주변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뜻하지 않게 좌파 논쟁에 휘말리다 보니 객관적으로, 누가 보더라도 좌파가 아닌 내가 (영화제의)수장으로 있으면서 잠잠해질 때까지, 내년까지는 버티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년 영화제가 끝나면 진짜 그만 둘 생각이다!"

한편, 지난 7일 문광부는 조희문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를 신임 영진위 위원장에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 강한섭 전 위원장의 중도사퇴 이후 약 두 달 만이다. 현 정권의 인수위원을 역임한 바 있는 조희문 교수는 문화미래포럼 영화분과의 주요 인사다.

영진위 출범 전에는 영화진흥법 개정과 영진위 설립을 반대했고 이후에는 앞서 언급한 책 <새 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을 통해 "영화진흥위원회를 접수한 좌파 세력들이 영화를 동원한 '문화혁명'을 수행했다"며 영진위 폐지론을 주장해온 조 교수가 영진위의 위원장 자리에 앉은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같은 날, 임명장을 전달한 유인촌 문광부 장관이, 또는 임명장을 전달받은 조 위원장이 '관객'을 향해 이렇게 외쳤을지.

"어쩔 수 없어. 이게 세상의 이치야. 이것들아~"

김동호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 PIFF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반갑습니다. 이화미디어 http://ewha.com 대표 문성식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 되고자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