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인 문제, '통찰력'과 '단순함'이 해법

등록 2009.09.25 14:33수정 2009.09.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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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나면 챙겨보는 것 중에 하나가 문제 부부를 진단하고, 상담해서, 회복으로 이끄는 조정 프로그램이다. 내용은 부부 문제지만, 갈등과 폭력, 분노와 좌절 등의 이야기는 학교 생활에서 마주치는 학생들의 문제, 또 내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상황과 때로는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부부들이 대개는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자신들의 문제를 객관화해서 보게 되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통찰력을 갖게 되면서, 회복의 실마리를 풀어가는데, 그 해법의 과정이 흥미롭다.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면을 보고 나면, 왜 저럴까 싶었던 부부들의 언행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내가 가장 심취하며 보는 대목이 마지막 후반부 조정에 관련되는 부분인데,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조정 항목 때문이다.

 

    그 중 어느 부부에게 부과된 항목은, 남편과 아내에게 각각 네다섯 가지가 제시되었는데, 매우 단순했다. 기억나는 것 중  하나가 남편은 아이와 놀아줘서 육아를 분담하기, 아내는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을 일주일에 한 가지씩 해주라는 것이다. 칼부림까지 갔던 부부에게 내려진 특단의 제시안이 '아이와 놀기' '반찬 챙기기'라니. 그런데, 이 단순한 행동을 실천하겠다고 선언한 두 부부를 다시 제작진이 찾아가자, 서서히 변화의 모습이 포착됐다.

 

    웃음기 없던 아내의 얼굴에 화색이 돋아나고, 매일 술 마시고 12시 넘어 집에 오던 남편이 일찍 퇴근해서 아이와 놀아주는데, 프로그램 전반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신감이 묻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보건실에서 아이들과 상담하다보면, 가끔 이런 단순한 방법이 오랜 고민의 해결책이 될 때가 있다. 향후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할 것인가에 따라, 문과 이과를 나누다 보니, 뜻하지 않게 남녀공학 학교에서는 한 반에 남학생과 여학생의 비율이 심각하게 불균형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3년전인가, 그 때 담임선생님이 상담을 의뢰한 아이도 그런 반 아이였다. 40명 내외의 학생 중에 5명이 남학생,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여학생이었던 것. 반항적이고, 아이들에게 공격적이던 아이가 무기력하게 변하고 있어서 선생님이 걱정돼서 보내신 것이었다. 아이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이의 항변이 정말 그럴 만하다.

 

    아이의 말인즉, 자기 반에 남자 아이들이 다섯이 있고, 여자 아이들이 나머지인데, 자기는 남학생들이 뭔가 뜻을 함께 하면서, 주도적으로 반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여학생들의 기가 너무 세다보니, 주눅 드는 남학생들이 보기 싫다는 것. 1학년 때는 반에 남학생만 있어서, 2학년 때는 반에 남녀 비율이 균형이 있어서 괜찮았는데, 3학년이 된 지금, 가끔 분노를 못 참겠다는 것이다. 

 

반에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남학생들끼리 미리 전날 어떻게 하자고 사전 결의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두 그렇게 하자고 하다가도, 막상 다음날이 되면, 모두 여학생들이 웃으면서 살랑이는, 엉터리 의견에 넘어가면서-아이의 표현이 그랬다-, 자기만 남는다는 것. 그러니,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밀고, 친구들이 밉고, 그것을 도저히 넘어가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싫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했다. 다행히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내게 제안했던 해법이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때 친구가 선물을 줬는데, 저금통이었다. 저금을 하라는 게 아니고, 앞으로 다가올 새 해에 혹시 싫은 일, 짜증 나는 일 있거든, 그 자리에서 쏟아내지 말고, 종이에 적어 저금통에 넣으라는 것, 그리고, 그 일은 깡그리 잊은 후 1년 후에 열어보라고. 그러면서, 나를 이해 못하는 주변에 대고 신경질을 쏟아내면, 차분한 목소리로 꼭 한 마디씩 했다.

 

 '지학아, 언니가 그러는데, 사람마다 이해하는 영역이나 수준이 다 다르대. 어떤 사람은 100을 이해하고, 어떤 사람은 10을 이해하는데, 100을 볼 수 있는 사람이 10밖에 못 보는 사람에게 왜 20을 모르냐고 하면, 그 사람에게는 고통이 된다고. 그걸 알면, 100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냥 나머지 90은 자기가 감수하는 것으로 생각하라구. 어떻게 하냐고, 하나님이 그렇게 어느 부분은 그 사람만 100을 보게 한 것인데.'

 

친구 덕분에 얼결에  100의 수준이 되니, 우쭐해지기까지 했다.

 

 아이에게 짐짓 점잖은 척 하면서, 친구의 레파토리를 그대로 읊어줬다.  본인에게만 보이는 균형, 조직, 협력, 시스템인데, 친구들에게 똑같은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을 하면서, 이런 본인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경영학이나 행정학을 전공하면 어떻겠느냐고 덧붙였다. 물론 저금통을 사서, 분노․좌절․절망의 마음을 담은 글들을 써 넣어두고 1년 후에 열어보기를  실천하도록 권했다. 침울했던 아이가 서서히 물먹은 화초처럼 살아났다. 자기의 장점 때문인 줄 몰랐다면서.

 

    거창하고 화려한 대안들이 거침없이 현실을 바꿀 것 같지만, 막상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통찰하게 하고, 단순하게 실천하도록 격려하는 데서 시작되는 게 더 많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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