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말고 적금 통장으로 냉장고 사기

[가정경제 119] 저축에 대한 오해를 벗자

등록 2009.10.06 16:21수정 2009.10.0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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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경제교육전문기업 '에듀머니'와 함께 '가정경제 119'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서민과 중산층이 주식·부동산 등 무모한 재테크의 함정에서 벗어나 우리 집 위기 상황을 점검하고 최소한의 안정된 삶을 지키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편집자말]
저축만 해온 자신이 너무 무능하게 여겨진다는 어느 주부

최근 재테크가 크게 유행하면서 저축에 대한 사회 인식이 크게 후퇴했다. 금리가 낮아 저축해 봐야 소용없다는 회의감이 커졌다. 그에 비해 부채이자는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빚이 공짜라는 인식이 생겼고 신용카드와 마이너스 통장 발급이 일상화된 위험한 금융환경에서 저축 없이 빚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필요한 자금은 투자를 통해 준비해야만 하기 때문에 낮은 이자의 부채로 투자하라는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사회 통념이 되기에 이르렀다.

상담중에 만났던 어느 주부는 평생을 아끼고 살고 저축만 해온 자신이 너무 무능하게 여겨지고 남편의 월급을 쪼개 생활하는 자신이 남편에게 죄인이 된 것만 같다는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저금리 자금을 빌려 투자에 성공해 남편이 자신의 월급을 용돈처럼 쓴다는 성공담이 많은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돈 까먹어 빚만 남은 사람들 많아

그러나 생각보다 투자를 통해 성공한 이야기는 그리 흔한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얼마 벌었다는 이야기들 상당수는 아직 투자가 진행중이어서 손에 쥔 돈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나만 빼고 많은 사람들이 돈을 쉽게 벌고 있는 것 같지만 현실은 오히려 돈을 까먹어 빚만 남은 경우가 적지 않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저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라면서 저축률이 글로벌 꼴찌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과거에는 성실히 적금을 부어 만기가 되면 만기금을 손에 쥐고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남들은 투자를 통해 큰 돈을 쉽게 버는데 자신만 불편하게 저축하고 산다는 생각을 하거나 원금에 붙은 이자를 보면서 소문에 흔한 투자 수익률 때문에 기가 죽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저축에 대한 동기가 심하게 꺾인 상태에서 저축에 대한 인식은 이제 돈을 안 쓰는 불편한 것, 투자를 하지 못하는 무능함, 물가상승보다 낮은 이자율 때문에 괜히 앉은 자리에서 돈 까먹는 것으로만 남아 버렸다. 그러고는 쓰는 것이 남는 것이라는 의식까지 생기게 되었다.

저축은 돈을 안 쓰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쓰기 위해 하는 것


a  각종 통장

각종 통장 ⓒ 김시연


이런 사회 인식 속에서 어느 상담자는 저축하는 돈이 아깝기까지 했다는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돈을 써야 하는데 쓰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까울 뿐, 모아봤자 만기 때 허탈한 생각만 들어 저축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저축액을 최소로 잡거나 아예 저축이 없는 가정이 대다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저축은 이렇게 이자율만 따지고 하거나 돈을 쓰지 않고 막연히 쌓아두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저축은 돈을 쓰기 위해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냉장고 한 대를 산다고 가정해 보자.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로 가전제품을 교체하는 것이 일반적인 소비 형태다.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로 120만원짜리 냉장고 한 대를 산다면 당연히 공짜로 고가의 냉장고를 쉽게 구입했다는 만족감이 들 것이다. 게다가 12개월간 나눠서 결제하는 것에 비용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기회비용까지 벌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다르다. 우선 소비 만족을 살펴보면 처음 신용카드만으로 공짜로 냉장고를 샀을 당장에는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달부터 신용카드 명세서에 찍히는 할부금 잔액은 그리 유쾌한 것이 아니다. 왠지 생돈이 그냥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 것이다. 소비 만족은 처음 짧은 순간으로 그치고 나머지 달 내내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소비만족이 반감된다. 심지어 금융비용이 공짜라고 여기지만 그것에도 함정이 많다. 이미 상당수 가정은 이런 저런 고정지출이 많이 쌓여 있는 상황이다.

이미 매월 현금흐름 균형이 깨져 마이너스 통장을 쓰는 가정이 상당하다. 그런 상황에서 할부금까지 더하고 나면 마이너스 부채로 할부금을 갚는 것, 즉 빚으로 빚을 갚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할부금을 갚기 위해 마이너스 통장의 비싼 금융비용을 지출하게 된다.

반대로 저축을 통해 냉장고를 산다고 가정해 보자. 120만 원짜리 냉장고를 사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당장 구입해서 소유하는 즉각적인 만족감은 포기해야 한다. 대신 소비욕구를 1년 지연시키는 것이다. 구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월 10만 원짜리 적금을 가입하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불편해 보이지만 소비목표를 정해 적금을 가입하고 그 적금 통장에 저축을 하는 수고는 여러가지 면에서 소비 만족의 효용가치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

'줄지 않는' 할부 잔액, '쌓여가는' 저축액

첫째 할부금을 갚아나갈 때는 할부 잔액이 지겹도록 줄지 않는 것 같았는데 반대로 저축은 생각보다 빨리 쌓여가는 것을 경험한다. 이런 느낌은 단지 우연한 것이 아니라 행동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손실회피 성향으로 설명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대체로 최종적으로 가지게 되는 부의 수준보다는 이익과 손실의 실현을 평가하면서 만족감을 다르게 느낀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한다.

즉, 부의 절대 수준보다는 그 변화(증가 혹은 감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익보다는 손실보는 것을 더 싫어하며 같은 크기의 손실은 그만한 크기의 이익보다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소유한 냉장고보다는 매월 할부금으로 갚는 돈은 손실로 여기게 되고 반대로 저축을 통한 소유는 이익으로 여겨 같은 냉장고 소유지만 다른 만족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할부잔액은 쉽게 줄지 않지만 냉장고를 목표로 한 저축액은 더 즐겁게 쌓이게 되는 것이다.

집안 인테리어에 걸맞게 제대로 선택할 수 있어

둘째, 그런 과정에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집안 인테리어와 걸맞은 것을 제대로 선택하게 함으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아무래도 충동소비는 주로 미디어를 통한 조작된 욕망일 가능성이 크다. 정말 필요하고 본인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한 것이 아닌 유행과 트렌드를 좇아 욕구를 순간적으로 강하게 끌어당긴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막상 광고나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 속에서 빛나던 냉장고가 우리 부엌에 어울리지 않아 소유를 하고도 오히려 짜증만 증가시킬 오류를 범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지연된 욕구는 충동적인 욕구보다 크다

세번째 지연된 욕구는 충동적인 욕구에 비해 욕구의 크기가 크다. 냉장고를 갖고 싶다는 욕구를 12개월 동안 의도적으로 결핍하게 만든 결과다. 욕구를 당장 실현시키지 못한 결핍은 그 욕구를 더욱 절실한 것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당연히 12개월이 지나 적금 만기금을 타서 냉장고를 구입할 때는 커다란 욕구를 만족시키는 효과를 만들 수 있다. 또한 만기까지 저축을 유지했다는 성취감까지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 만족은 신용카드를 통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저축 통한 소비, 금융소득은 덤

마지막으로 저축을 통한 소비는 적금 만기시 금융소득을 추가로 발생시킨다. 그것이 아무리 적은 이자율일지라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는가? 게다가 50만 원 이상의 목돈 소비를 신용카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저축계획에 맞춰 소비하는 구조로 돈을 관리한다면 생애 전반에 걸쳐 갖게 될 금융소득은 상당한 수준이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할부수수료로, 마이너스 통장의 금융비용 및 주택 담보 대출이자 등으로 지불하고 사는 금융비용은 생각보다 무서운 돈이다. 마이너스 통장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고 가정해보자. 1000만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20년간 지속적으로 사용한다면 금융비용만 대략 1600만 원 가량 된다.(8% 가정)

어떤 미친 사람이 마이너스 통장을 20년씩이나 쓰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이미 기본 월급통장을 마이너스 통장으로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상의 금융소비 구조가 마이너스 통장이 기본 단위라면 20년 이상 쓰게 될 위험도 충분히 있다. 심지어 예금통장에 잔액이 있어도 현금흐름의 불안정성에 대한 불안함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일상적으로 쓰는 사람도 적지 않은 현실이다. 무심코 이런 금융소비를 이어가다 보면 20년이 아니라 그 이상 금융비용을 푼돈이라 여기며 새나가도록 방치하며 살게 될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아무리 이자율이 낮아도 이자를 내고 소비하는 것과 이자를 받고 소비하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재무상태를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빚으로 사는 게 일상이 돼버린 한국 가정

애초 저축은 국가의 미래 경쟁력이고 그 가정의 미래 경제력이다. 저축이 아닌 투자로 큰 돈을 쉽게 벌면 된다는 이상한 사회인식이 자라면서 저축의 가치가 손상되고 저축에 대한 오해가 커지면서 대신 우리나라 가정경제는 빚으로 사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저축할 돈이 어딨느냐며 저축의 긍정성에 대한 이야기는 한가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화를 낼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매달 신용카드금을 결제하고 마이너스 통장의 금융비용을 부담하는 등의 빚을 갚을 여력은 애초 저축이 가능한 구조였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단지 욕구를 조금만 지연시켜 체계적으로 소비하는 구조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저축을 통한 소비구조를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빚으로 사는 일상은 무의식중에 늘 빚을 갚아야 한다는 강박증과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한다는 자괴감을 준다. 월급노예니 신용카드 노예니 하는 말들이 월급쟁이들의 술자리 안주로 종종 등장하기도 하지 않는가.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이 돈에 대해 스트레스 받고 경제적 불안감을 크게 갖게 된 것은 빚으로 점철된 일상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저축하는 경제 습관은 사람들에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주는 경향이 있다. 저소득층 상담 과정에서 만난 모 자활 수급 가장은 재무 상담 후 소득의 상당부분을 강제저축을 했다. 교통비 아끼기 위해 걸어다니기도 하고 매 순간 푼돈도 쉽게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드디어 저축 만기금을 타게 되었다.

그때 그 상담자는 눈물을 보였다. 만기금의 액수는 그리 큰 돈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고 이전에 맞보지 못한 커다란 성취감이 든다는 것이다. 또한 막연히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잡아 통장에 이름 붙여가며 저축을 했더니 늘 미래를 꿈꾸게 되어 저축하는 불편한 과정에서도 통장 때문에 행복해진다고도 한다.

결핍을 채우는 과정이 행복

실제로 행동경제학자들의 몇 가지 실험에서도 최소한의 자극으로도 저축률에 상당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고 한다. 저축계획을 구체적으로 짜고 임금인상분에 대해 저축을 하도록 동기부여 한 것만으로도 저축률이 2배 가까이 상승한 실험결과가 있다. 또한 국가나 기업에서 자동적으로 강제저축을 시키는 경우 저축률이 크게 늘어나는 결과도 여러 사례를 통해 접해 볼 수 있다.

사람은 당장의 충동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삶에서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결핍을 채우는 과정에서 행복해진다. 저축은 일상에서 자신의 결핍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천함으로 채워나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당연히 그 불편하고 어려운 수고로움에서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불어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으로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저축에 대한 불편한 오해부터 벗어내자. 그리고 돈으로 진짜 행복해지고 싶다면 하늘에서 돈 떨어지길 바라는 황당함이 아닌 오늘부터 행복하게 저축을 시작해 보자.


#저축 #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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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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