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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 남포동의 끈질긴 구애

[PIFF 통신] '영화제 발상지' 위상서 밀려나며 부른 남포동 블루스

09.10.08 11:35최종업데이트09.10.14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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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에서 지난해 핸드프린팅이 개봉되고 있다. ⓒ 성하훈


태풍의 영향인 듯 7일 부산의 바람은 거셌다. 흐린 하늘에 간간이 빗방울이 날렸지만 부산 남포동은 형형색색의 조명들로 반짝였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담한 광장에 손님들이 가득 들어차, 흡사 잔칫집 분위기였다. 8일 수영만에서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남포동에서 서막을 열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날 전야제를 시작으로 14번째 행사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7일 저녁 남포동 피프광장에서 열린 부산영화제 공식 전야제 행사 '렛츠 고  피프'(Let's go Piff)에는  김동호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허남식 조직위원장 등 부산지역 단체장들과 영화배우 박준규·조재현씨 등이 참석했고,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과 함께 14번째 영화제의 성공을 기원했다.

전야제 행사에는 지난해 부산에서 흔적을 남긴 홍콩의 서극 감독, 프랑스 배우 안나 카리나, 이탈리아 감독 파올리타비아니의 핸드 프린팅이 공개됐고, 피프 광장의 전등들도 환하게 불을 밝히며 축제의 분위기를 돋웠다. 공식 행사가 끝난 뒤에는 방송사의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이 이어지며 백지영, 크라잉넛 등의 가수들이 축하 공연을 펼쳐 광장에 나온 시민들을 즐겁게 했다. 

성장할수록 천덕꾸러기 된 부산영화제 발상지

상징 조명으로 꾸며진 남포동 피프 광장 입구 ⓒ 성하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7일 전야제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줬다. 남포동과 거리를 두려던 영화제가 남포동의 끈질긴 구애를 결국 뿌리치지 못한 듯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가 준비에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야행사는 지난 97년 2회부터 시작된 이래 13년째 이어져 오고 있지만 사실 영화제 조직위원회가 관여하는 행사는 아니었다. 남포동을 관할하고 있는 부산 중구청에서 모든 행사를 준비하고 조직위 관계자들은 참석만 할 뿐 영화제 측이 마련하는 공식행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영화제 중심이 남포동이었을 때는 축제 분위기를 띄우는데 일조했으나, 8회부터 주 행사가 해운대로 서서히 옮겨지면서 남포동 행사는 예전의 활기를 잃어갔다. 축제 분산에 대한 염려 때문에 영화제 측이 남포동을 부담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제 내부적으로도 남포동과 해운대로 분산된 축제를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며, 남포동과 결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남포동에서 치러지던 행사들이 점차 줄어들면서 부산영화제를 상징하던 남포동의 명성은 서서히 잦아드는 상황이었다. 영화제가 세계적으로 성장하면서 해운대가 뜨는 반면에 발상지인 남포동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해 버린 것.

지난해는 영화제 측이 자체적으로 준비한 공식 전야행사가 열리면서 남포동 전야행사는 전야제라는 명칭을 아예 사용하지 못한 채 '피프광장 여는 마당'이란 이름으로 진행됐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공식적인 전야제로 인정되며 영화제 측이 전야제 준비에도 함께 한 것이다.

행사 준비를 담당한 실무관계자는 "배우 등 게스트 섭외를 비롯해 여러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줬다"며 "올해는 공식 전야제 행사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면서 들뜬 모습이었다.

영화제를 붙잡은 남포동의 구애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 행사에서 역대 핸드프린팅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동호 집행위원장 ⓒ 성하훈


남포동 전야행사와 관련해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남포동이 부산영화제의 모태와 같은 곳으로 고향의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는 남포동을 존중할 것이고 전야제에도 비중을 두어 화려하게 꾸밀 예정"이라고 말했다. 해외 게스트나 영화인들을 수용하기 어려운 환경이기에 해운대로 옮겨갔지만 남포동 영화제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고민이 담겨 있었다. 

그간 떠나려던 영화제의 바짓가랑이를 잡기 위해 남포동이 들인 노력은 끈질겼다. 수십억을 들여 바닥을 다시 깔았고, 화려한 조명으로 거리를 꾸며 놨다. 영화제를 상징하는 시설물을 거리에 가득 장식해 놓은 것은 '이래도 떠날 것이냐'는 영화제를 향한 압박이었다. 중구청장이 영화제 사무국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읍소한 모습에 결국 부산영화제 측도 다시 남포동의 손을 붙잡아 주기로 마음을 돌려먹은 것이다.

그러나 전야제 행사는 단순한 지역 축제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그동안 영화제 측이 전혀 관여하지 않은 채 자치단체가 행사를 주도한 탓도 있겠지만 세계적 위상을 가진 영화제 전야제 치고는 밋밋하면서 단조로웠다. 시장과 구청장, 지역 국회의원의 인사말과 축사로 채워지는 행사는, 영화제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게 보였다.

영화제나 남포동이나 각자의 기대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영화제 측이 의미를 부여해준 마당이기에 형식적인 행사가 아닌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 행사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는 앞으로 부산영화제가 떠 안아야 할 과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옛 사람을 그리워하던  남포동블루스

피프 광장의 네온 조명. 영화제 상징 거리를 만들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였다. ⓒ 성하훈


'네온이 춤을 추는 남포동의 밤/이 밤도 못 잊어 찾아온 거리/그 언젠가 사랑에 취해 행복을 꿈꾸던 거리/사랑을 잃은 내 가슴 속에/추억만 새로워 이 밤도 불러보는/이 밤도 불러보는 남포동 블루스

이슬비 부슬부슬 / 내리는 이 길 첫사랑 못 잊어 / 찾아온 이 길 어디선가 부를 것 같은 / 다정한 님의 목소리 사랑이었네 / 행복이었네 첫 사랑 못 잊어 / 이 밤도 불러보는 이 밤도 불러보는 / 남포동 블루스'

가수 김수희는 노래 '남포동 블루스'에서 사랑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이야기했다. 초창기 부산영화제를 지칭했던 '남포동 블루스'는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마음이었고, 영화의 거리에 새겨진 추억이었다.

그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영화제 기간 중 공식 행사 외에 자체적으로 준비한 이벤트를 벌여 남포동의 존재감을 알릴 예정이라는 남포동을 관할하는 중구청 관계자의 의지.

2009년 전야제는 조금 더 발전적인 모습을 기대해 보는 '남포동 블루스'였다. 식지 않은 애정으로 옛 사람을 못 잊고 그리워하다  미소 짓는 모습.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을 앞둔 남포동에서 엿볼 수 있는 표정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 PIFF 남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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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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