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사랑, 때를 알고 내리는 봄비처럼

허진호 감독의 사랑에 관한 다섯번째 영화 <호우시절>

09.10.20 11:54최종업데이트09.10.2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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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게 된 동하와 메이 ⓒ 판시네마(주)ZONBO MEDIA


허진호 감독의 사랑에 관한 다섯번째 영화 <호우시절>이 개봉했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1998)를 시작으로 <봄날은 간다>(2001), <외출>(2005) 그리고 <행복>(2007)에 이르기까지 사랑백서를 써내려가듯 그만의 사랑관을 보여준 허진호 감독이기에 이번 작품에 대한 마니아 팬들의 기대도 높았을 터입니다.

허진호 감독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소박함과 작은 울림입니다.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즐겨 다루지만, 영화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고 사건들 대부분이 우리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인물과 사건, 주제는 그리 거창하지 않지만
허감독 특유의 정제된 화면전개와 대사는 사랑에 대한 화두를 던지듯 관객들에게 묘한 울림으로 남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다림(심은하)이나 <봄날은 간다>의 상우처럼 사랑은 소리없이 다가왔다 뜻하지 않게 사라지기도 하고, <행복>의 영수(황정민)처럼 사랑을 믿지 않았으나 지나보니 행복이었고 사랑이었던 적도 있죠. 허진호 감독이 이전 작품속에서 다룬 사랑 이야기들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일상속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들입니다.

<호우시절>도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 유학시절 연인관계였던 두사람 동하(정우성)와 메이(고원원)는 시간이 흘러 중국 청두의 두보 초당에서 재회합니다. 시인을 꿈꾸던 동하는 건설 중장비회사의 팀장이 됐고 연인 메이는 두보초당의 관광가이드가 되었습니다. 다시 못 만날거라고 생각한 두사람의 만남은 필연인 듯 때를 알고 내리는 봄비처럼 서로에게 가슴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설렘 가득한 연기가 인상적

갈등하는 동하와 메이 ⓒ 판시네마(주)ZONBO MEDIA


그동안 두사람 사이에는 행복했던 유학시절의 기억과 짧은 이별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서로의 소식을 모르게 되면서 생겨났던 오해와 서운함은 두보초당 대나무 숲에 내리는 봄비와 함께 사라집니다. 과거의 사랑을 기억하는 동하와 과거의 기억을 부인하는 메이, 두사람 간의 접점은 좁혀질듯 좁혀질듯 하지만 쉽사리 좁혀지지 않고 짧은 긴장과 아쉬움이 교차합니다.

유학시절 메이가 자전거를 즐겨 탓다는 동하와 그런 적이 없다는 메이, 진지하게 사랑을 고백했었다는 메이와 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동하,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요?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오는 깨달음들이 쓸쓸했던 전작들과 비교한다면 후속작인 <호우시절>은 왠지 전작들과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동하와 메이의 마음을 부지런히 넘나들며 그들의 사랑과 현실적인 갈등 그리고 그 이후를 담은 허감독은 아마도 10년 동안 이어온 사랑의 연작시리즈를 정리라도 하듯 나름대로 결론에 도달한듯 합니다.

지난시간을 되돌리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다가온 사랑을 직감하는 동하와 메이, 함께 헤쳐 나가야할 일, 해명해야할 일 그리고 넘어야 할 현실의 벽들이 가로 막혀있지만 어쩌면 이번에는 두사람의 사랑이 이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내 관광객들을 겨냥한 듯한 의도적 장면들과 현실감을 주기위해 선택한 동하와 메이의 영어대사가 오히려 스토리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허감독 특유의 유려한 스토리 전개와 심리묘사, 두사람이 밀회를 나누는 고풍스런 두보초당의 대나무숲들, 다시 찾아온 사랑 앞에 갈등하지만 용기를 내보는 두사람의 설렘 가득한 연기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사실, <호우시절>은 관객수가 말해주듯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20대를 위한 영화는 아닌 듯 합니다. 오히려 중장년층이라면 한번쯤은 되돌아볼 과거의 사랑과 설렘에 관한 영화입니다.

허진호 호우시절 한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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