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은 끼리끼리 동생을 업으며 '엄마아빠 흉내' 놀이를 하기도 합니다.
최종규
제 고향동네 인천으로 골목길 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분들은 으레 '웃는 할머니'나 '찌푸린 할머니'나 '웃는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곤 합니다. 저는 동네 할머니이든 어린이이든 섣불리 사진으로 담지 않습니다. 그림으로 좋아 보인다 해서 함부로 사진기를 들이대고 싶지 않습니다. 이 어르신과 아이들은 '그림'이 아니라 '삶'이거든요. 그리고 이 어르신과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한테 삶을 빼앗긴 채 자꾸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거든요.
우리 옆지기가 아이를 낳기 앞서인 2007년에 동네 꼬마들한테 고무줄을 가르쳐 준 적이 있는데, 아이들은 "고무줄은 전통놀이 아니에요?" 하고 대꾸했습니다. 텔레비전 만화영화 〈검정고무신〉에나 나오는 놀이이며, 저희들이 놀 만한 놀이가 아니라, '전통이니 민속이니 하는 이름을 붙이'며 박물관에서 찾아보거나 교과서에 적히는 숙제거리쯤으로 받아들인다고 할까요. 그래, 처음에는 낯설어 하고 그리 재미없는 듯 여기더니, 며칠 뒤부터는 퍽 재미있어 했습니다. 그러나 고무줄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하나도 모르고, 어떻게 다음 차례로 넘어가는지도 모릅니다. 어찌어찌 넘어가는지 모를 뿐 아니라, 어떻게 즐기면 좋을지를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새 길을 찾으며 푹 빠져들지 않는다면, 이 동네 아이들로서는 한두 해 뒤에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어쩔 수 없는 옛날 옛적 전통놀이'로만 남을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 어울려 놀아야 서로 다름을 배웁니다 .. (80쪽)아이들은 놀아야 합니다. 어른들 또한 놀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놀지 못하고 놀 겨를이 없으며 놀 동무를 찾기 힘듭니다. 어른들 또한 놀지 않으며 놀 돈이 없다 투정인 가운데 놀 겨를에 돈벌이를 걱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서로서로 놀지 못하고 어울리지 못합니다. 서로서로 내 몸과 삶을 아끼고 사랑하는 길하고 멀어집니다. 이런 모습이 하루하루 이어집니다. 우리 손으로 일구는 문화란 어느 결에 가뭇없이 사라지고, 남이 차려 주는 밥상을 받아먹듯 구경만 하는 문화만 자리잡습니다. 돈을 들여 마을잔치나 큰잔치를 벌여야만 놀이가 이루어지는 듯 생각하고 맙니다. 스스로 조촐하게 즐기며 나누던 잔치와 놀이는 새롭게 움을 트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저는 동네 골목길에서 아이들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놀이가 없는 아이들을, 놀이를 빼앗긴 아이들을, 놀이를 모르거나 잊은 아이들을 찍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싱그러운 넋과 얼을 듬뿍 보여주는 아이들이 아니라면 구태여 골목길 아이들을 찍어야 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해맑은 마음과 꿈을 가득 드러내는 아이들이 아니라면 굳이 골목동네 아이들을 담아야 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이제 거의 다 '자전거만 타고' 놉니다.
최종규
.. 새로운 것, 창의적인 것, 아름다운 것을 만든 것은 언제나 놀이였습니다 .. (111쪽)편해문 님 사진책 《소꿉》은 우리 나라에서 우리 어른들이 내버리거나 내팽개친 '놀이'와 '사람'과 '삶'이 골고루 어우러져 있습니다. 놀이하는 사람과 놀이하는 삶이, 살아가는 사람과 살아 있는 놀이가 고루 어깨동무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 찍는 솜씨'나 '사진 멋지게 나오도록 하는 재주'는 아무 쓸모가 없으며, 이런 솜씨나 재주를 부린다면 사진맛은 아주 망가져 버립니다. 어린이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는 어린이 눈길과 눈높이와 눈썰미가 되어야 하며, 찍는 내가 찍히는 나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산을 찍을 때에도 그러하고, 바다를 찍을 때에도 그러합니다. 모델을 찍든 먹을거리를 찍든 다르지 않습니다. 찍는 나를 잊거나 잃지 않으면서 '찍고 찍히는'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과 손길이 만나야 합니다. 편해문 님 사진에서는 이 '길'들이 곱고 부드럽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사진책을 찬찬히 넘기면서 생각합니다. '한국사람 눈길로는 참 가난해서 못나고 모자라다'고 여기는 이 아시아 나라들 어린이들은 '그나마 한국에서 놀이를 좋아하는 어른 한 사람이 사진으로 남겨 주어'서 뒷날 이 아이들 삶자락을 찾아보려고 할 때에 좋은 이야기로 남을 수 있겠다고.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우리 나라 아이들 놀이는 누가 담지? 누가 담았지? 누가 얼마나 담았지?'
이 나라 사진쟁이들은 이 나라 아이들 놀이를 사진으로 담았을까요? 이 나라 사진쟁이들은 이 나라 아이들 삶을 사진으로 담았을까요? 이 나라 사진쟁이들은 이 나라 아이들을 둘러싼 여느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았을까요?
틀림없이 우리 나라에서도 '어린이 놀이와 삶'을 다룬 사진책이 몇 가지 나왔습니다. 이름있고 이름없는 숱한 사람들 작품에 '어린이 놀이와 삶'이 드문드문 섞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뿐입니다. 무언가 살가운 새길을 찾아보지 않습니다. 어딘가 새롭고 즐거운 새길을 걸어가지 않습니다. 고여 있거나 묶여 있거나 멈추어 있습니다. 다른 일에 너무 바쁘고, 돈벌이에 지나치게 매이며, 예술만 말하는 예술로만 뻗어 갑니다.
.. 어른들은 가짜 놀이로 아이들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 (160쪽)앞으로 열 해쯤 뒤에? 아니면 다섯 해쯤 뒤에? 또는 스무 해쯤 뒤에? 누구보다도 편해문 님 살림집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아이가 뛰노는 모습이 담긴 '이 나라 어린이 놀이 모습 사진'이 《소꿉》에 이어 《고무줄》로, 또 《돌》로, 또 《줄》로, 또 《구슬》로 차근차근 거듭나고 새로워질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이리하여, 마지막에는 더도 덜도 아닌 《놀이》로, 또는 《어린이 놀이》로 똑부러지게 빛나는 사진책 하나 우리 아이들한테 신나는 선물로 내어줄 수 있는 날을 손꼽아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소꿉 Children's Playing House
편해문 지음,
고래가그랬어,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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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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