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찾으려고 하는 손길에는 반가운 책이 시나브로 찾아갑니다.
최종규
'도시 재개발'이란 '미명'입니다. 곧, 허울좋은 이름입니다. 이름만 예쁘게 붙인 일입니다. '재개발이 될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 정책 꿍꿍이를 넌지시 숨기는 이름입니다. '재개발을 한 다음 돈을 얼마나 버는가'에만 눈길을 맞추고, 이곳에서 오래도록 뿌리내리며 살아온 사람들 문화와 역사는 가볍게 내동댕이치는 끔찍한 주먹질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재개발이 끔찍한 주먹질이거나 발차기라고 못 느낍니다. 쫓겨나는 사람들이건 시세차익을 얻는 사람들이건 어마어마하게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건, '깨끗하지 못한 동네를 깨끗하게 바꾼다'고만 여깁니다. 그런데요, 말이 '재개발'이지, 재개발을 하려는 동네치고 처음부터 '개발을 제대로 한' 적은 없습니다. 좀더 살기좋고 넉넉하고 느긋하며 아름답고 깨끗한 삶터가 되도록 '개발'을 해 놓지 않았으면서, 나중에 이곳이 집값이 싸며 가난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 어깨동무하며 조촐하게 문화와 역사를 이룰 즈음이 되면, 어김없이 삽날과 법률과 경찰을 이끌고 '철거'를 한다며 들이닥칩니다.
제 삶자리도 재개발 때문에 시끌시끌합니다. 아니 시끌시끌할 뿐 아니라, 동네를 통째로 없애느니 마느니 하면서 시청 공무원과 건설업체 사람들이 '공사를 가로막고 공청회를 못 열게 하는 주민들이 위법행위를 한다'며 형사고발을 하기까지 했고 손해배상청구마저 했습니다. 개발업자와 개발업체와 개발부서 공무원이 만나는 '주민'이 누구인지 도무지 모르겠는데, 이들은 우리 주민을 놓고 '당신들은 목소리가 모든 주민 목소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겠지요. 모든 주민이 한목소리를 내지는 않겠지요. 그러면, 공무원과 개발업체는 모든 주민 목소리를 얼마나 골고루 듣고서 계획을 짜고 밀어붙이려고 하는지요. 느긋하게 돌아보고 살피면서, 넉넉하게 귀담아듣고 내다보면서, 동네 하나에 깃든 문화와 역사를 받아들이고자 했을까 모르겠습니다. 아니, 재개발뿐 아니라 교육과 정치와 예술과 과학에서도, 우리들은 얼마나 내 터전과 내 이웃 터전을 살뜰히 톺아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도 빨리만 나아가려 하지 않나요. 너무도 크게만 되려 하지 않나요. 너무도 밥그릇 챙기기에 매여 있지 않나요. 좀 느긋할 수 없을까요. 좀 넉넉할 수 없을까요. 좀 사랑스러울 수 없을까요.

▲ 헌책방에서 만난 여러 가지 책들을 바닥에 깔아 놓고.
최종규
느긋하지 못하면 책을 살 수 없습니다. 아니, 느긋하지 못하면 책방마실을 못합니다. 새책방 찾아가는 마실이든 헌책방 찾아가는 마실이든 못합니다. 도서관 또한 못 갈 테지요. 아니, 책을 읽을 겨를이나 있겠습니까.
100만 원 아닌 90만 원이나 80만 원을 벌어도 알뜰살뜰 살아가면 얼마든지 넉넉할 뿐더러 다달이 책을 몇 권쯤 장만해서 읽을 수 있고, 좀더 가난하면 헌책방을 찾아가서 좀더 값싸게 책을 마련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련해서 읽은 책을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할 수 있고, 동네사람 스스로 조그맣게 '마을 도서관'을 열 수 있습니다. 꼭 으리으리 새집을 수 억 원이나 수십 억 원을 들여 지어야 도서관이 되지 않아요. 반드시 새책으로만 갖추어야 도서관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즐겨 읽던 책을 다섯 평짜리 방 하나에 차곡차곡 갖추어 놓아도 '작은 도서관'이 됩니다.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읽어도 좋고 열 사람이 찾아와서 읽어도 좋습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가야 하지 않고, 옥천에서 대전까지 가야 하지 않으며, 고흥에서 광주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 삶터 크기에 걸맞게 '작은 책쉼터'를 일구면 돼요.
책이란 작은 사람 작은 목소리 작은 넋 작은 기운 작은 땀방울 작은 사랑을 모두어 내는 자그마한 나뭇잎입니다.
덧붙이는 글 | ― 서울 신촌 〈공씨책방〉 / 02) 336-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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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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