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옛사람한테서 책을 배운다

[헌책방 나들이 214] 서울 신촌 <공씨책방>

등록 2009.10.30 14:52수정 2009.10.3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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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공씨책방> 앞모습. 바깥에 책을 꽂아 놓아, 책이 있는 곳임을 알도록 이끕니다. ⓒ 최종규


(1) 홀가분하지 못한 마음

돌을 지난 아기는 제법 잘 걷습니다. 처음 걸음마를 뗄 때에는 비틀비틀 넘어지기 일쑤였고, 신을 신기고 걷던 한두 주에도 힘들어 했지만 이내 신발과 맨발 모두 잘 받아들입니다. 이제는 집안에서도 제 신(아직 길을 걷게 하지 않은 신)을 신으려 하고 신겨 달라 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신겨 달라고 신을 들고 와 흔들고, 어느 때에는 풀썩 주저앉아서 소리를 지르며 신겨 달라 합니다. 그러다가 저 혼자서 발을 요리조리 쑤셔넣으며 신기도 합니다. 저는 제 어릴 적을 하나도 떠올리지 못합니다만, 딸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제 지난날을 더듬어 봅니다. 딸아이가 떼를 쓰거나 장난이 끊이지 않는 모습은 '나 어릴 때에도 저렇게 하면서 엄마를 힘들게 했겠지?' 하는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이러구러 이제는 아기를 데리고 헌책방마실을 할 때에 내내 안고 업고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세 식구가 조금은 마음 가벼이 헌책방마실을 즐길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기 아빠는 서울에 일하러 오가는 몸이고, 새벽같이 나가서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니 함께 헌책방마실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아기 아빠가 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주 잠깐 헌책방에 들러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후다닥 책을 골라서 대충대충 가방에 우겨넣고 집으로 돌아올 수만 있습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홀가분한 마음이나 홀가분하지 못한 몸으로 헌책방마실을 했다면, 이제는 홀가분한 몸이나 홀가분하지 못한 마음으로 헌책방마실을 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삶이 이어지려나 생각하니 아찔한데, 아무래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지요. 앞으로는 언젠가 홀가분한 몸과 마음이 되어 세 식구가 올망졸망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서 단골 헌책방마다 돌아다니며 인사를 드리고 반가운 책을 만날 수 있으리라 믿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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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때가 사다리에 배어 있습니다. ⓒ 최종규


(2) 죽지 않은 '죽은' 책한테서 배우기

여느 날에는 여섯 시 땡 하고 울리면 부랴부랴 짐을 꾸리고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을 탑니다. 이런 나날이 하루하루 이어지면서 몸이 무척 고단하고 마음마저 매우 버겁습니다. 지옥철에 시달리는 동안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지칩니다. 워낙 이런 지옥철을 안 좋아하며 멀리 하다가 모처럼(?) 시달리니 더 힘든가 싶은데, 그렇더라도 이 지옥철을 여러 해째, 또는 열 해나 스무 해째 꾸준히 타면서 시달리는 분들은 몸마음이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괜찮을까요? 괜찮은가요?

저번 화요일에도 머리 지끈거리며 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대로 돌아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이런 몸과 마음이라면 집에 닿아도 아기하고 옆지기랑 살갑게 어울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발길을 돌려 버스를 타고 연세대 앞에서 내립니다. 사람들 숲을 뚫고 헌책방 <공씨책방>으로 찾아듭니다. 반 해 남짓 못 찾아왔으니 저를 기다리는 책 또한 많이 밀렸겠지요. 어쩌면 저를 기다리지 못하고 다른 책손한테 갔을는지 모르고.


더위가 아직 꺾이지 않은(제 느낌으로는) 가을저녁을 느끼면서 책방 앞에서 사진 몇 장 담습니다. 밖에서 철지난 잡지 두 권을 집어들어 펼칩니다. 잡지 <아동문예>(아동문예사) 65호(1982.5.)와 56호(1981.7.)입니다. 차례를 살피니 저한테는 딱히 읽을 만한 꼭지가 안 뜨이지만, 권혁준 만화 <이쁜이 방울이>가 있고, 'E.O.플라우엔'이 그린 만화 <아버지와 아들>이 실려 있습니다. 오, 그렇군, 그렇지. <아버지와 아들>이 '새만화책'이나 '규장'에서 낱권책으로 나오기 앞서, 이렇게 <아동문예>에 이어실렸고, 이렇게 이어실린 책이 '아동문예사'에서 꽃등으로 나왔지.

그런데, 잡지 <아동문예>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작품이 누구 만화인지 밝혀 놓지 않습니다. 고개를 갸웃합니다. 왜 안 밝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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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플라우엔' 만화가 실린 잡지 <아동문예> ⓒ 최종규


생각해 보면, 1980년대 첫머리뿐 아니라 끝머리까지도 이 나라 잡지쟁이와 책쟁이는 '나라밖 만화이며 동화이며' 원작자를 잘 안 밝혔습니다. 으레 해적판을 내놓았으며, 몰래 도둑책을 펴냈습니다. 만화책이나 동화책뿐 아니라 백과사전과 자연도감마저도 일본책을 고스란히 베끼듯 펴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 잡지쟁이와 책쟁이 가운데 이런 도둑질을 부끄러워 한다든지 뉘우치는 목소리를 아직 못 들었습니다. '그때 우리 나라는 가난한데 어떻게 로열티를 치르고 책을 옮겨 내느냐?'는 핑계만 더러 듣습니다.

<백철-인간탐구의 문학>(창미사,1986)이라는 평론모음을 봅니다. 문학평론을 하던 백철 님은 1908년에 태어나 1985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 책은 백철 님 제자인 이명재 님이 이듬해에 묶었습니다. 백철 님은 1985년 10월 13일에 당신 집에서 돌아가셨다는데, 책끝에는 같은 해 5월 24일에 권영민 교수와 주고받은 이야기가 하나 실려 있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몸져누워 세상을 뜨기 앞서 당신 일이나 생각을 밝힌 마지막 마디마디가 아닌가 싶습니다. 몸이 아파 힘들다고 하면서도 백철 님은 "글쎄, 나는 나이 때문에 일의 능률이 안 올라요. 내 마음으로는 '신문학사'를 조금 보충해야겠다는 것입니다. 1960년대까지 문학사를 정리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국문학사 고대편을 내가 생각하는 그 어떤 기준과 차원을 놓고서 완성시켜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작업을 조금씩 하고 있읍니다.(342쪽)" 하고 밝힙니다. 백철 님 당신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 학자길을 걷는 곧은 매무새를 느낍니다.

.. 단테는 한편 라틴말의 세련되고 우아한 맛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더 이탈리아말을 써야 한다고 의식한 것은 거기에 커다란 새시대에 선구하는 창조와 발전의 보람을 느꼈기 때문이다 … (뒤 벨레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한 언어를 보고 어떤 딴 것을 낮게 천시해선 안 된다. 왜 그러냐 하면 그 모든 언어들은 각기 같은 근원, 즉 같은 인간의 상상력에 의하여 같은 목적과 같은 판단으로 만들어진 것, 사람들 상호 간의 의사와 감정을 표시하기 위하여 되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 프랑스어가 그리이크나 라틴어만큼 풍부한 것이 못 된다 치더라도 그것은 우리 말이 그 자체로서 빈곤하다는 결점으로 비난될 것이 아니고, 차라리 결점이라면 우리 선조의 무지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말하자면 우리 말을 무력하게, 그리고 옷을 입히지 않은 알몸뚱이로 내버려 둔 때문이다.' … 여기서도 우리들은 우리 한글에 대하여 과거의 사람들이 얼마나 태만한 농사꾼이었던가 하는 사실과 아울러 우리 연대에 와서도 우리들은 모범적인 일꾼 노릇은 못하여 왔다는 사실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반성해야겠다는 사실이다 ..  (119, 123, 125쪽)

문득, 요즈음 대학교 국문학과에서 백철이라고 하는 분 삶이나 문학을 얼마나 읽거나 알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문학평론을 하는 젊은 분들은 찬찬히 읽기는 하겠지요? 그러면 문학을 좋아하거나 아끼는 분들은 어떠할까요. 앞으로 이 나라에서 문학이나 문학평론에 뜻을 두려는 이들은 얼마나 이 책을 가까이할 수 있을까요. 그저 낡은 생각으로만, 그예 오래된 이야기로만 여길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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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마루를 스스로 차근차근 누비면서 내 마음을 적시는 책을 찾아나섭니다. ⓒ 최종규


.. 그러나 자연은 공평해서 그런 벽촌에도 제대로 계절이 왔고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하고 했다. 그 마을엔 살구꽃이 피는 대신에 하얀 배꽃이 소복을 한 미인처럼 봄마다 순박한 단장을 하였다 … 말하자면 이런 산골에선 사람들의 생활이란 극히 단순하고 변함이 없는 것이어서 그 대신 자연이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달리하고 나타나는 것이 어린 마음에는 커다란 놀라움이요, 또 큰 즐거움이었다 ..  (184∼185쪽)

기독교방송에 나와 들려준 이야기를 엮었다고 하는 <김수환,성내운,송건호,이돈명,함석헌-오늘을 생각하며 (1) 나라꼴이 이래서야>(청년사,1986)라는 책을 봅니다. 2권도 나왔는지, 또는 3권이나 뒤엣권이 더 나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 책에는 제가 좋아하는 성내운 님과 송건호 님 글이 있어서 반갑게 집어듭니다. 성내운 님 대목은 따로 전집이나 선집으로 묶인 적이 없기에 이 책에 담긴 '라디오 방송 이야기'를 만날 수 없었는데, 송건호 님 대목은 '송건호 전집'에 실렸을까요? 전집에서는 이러한 방송 이야기까지 찬찬히 훑어내어 담았을까요?

.. 일제시대 교육도 유교적 전통 속에서 진행된 위에 군국적 요소가 가미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미군정하에서도 미군은 당연히 미국의 이익을 생각해서 군정을 폈을 것이 아닙니까? 미국은 3·8선 이남에 반공정신을 심어 주는 것이 시급했던 것이죠. 그래서 반공에 이력이 난 교육자를 찾다 보니까 일제시대에 교육행정에 종신했던 한국사람들이 아쉬워졌읍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교육전문가로서 그들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미군정청에 기용했읍니다. 때문에 교육계에는 다시 군국주의적인 것이 묻어 들어왔읍니다. 그 반민족적인 일제시대의 교육과 교육체계가 미군정하에서는 반공교육 시책으로 채택되었던 것이므로 일제 교육의 잔재가 남게 되었고, 또 분단 속에서 반공교육이 6·25이후에 더욱 가속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누구나 6·25를 경험한 바에는 반공교육을 모두 찬성했었지요. 결과적으로 일제 교육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상황이 오늘에 이르고 있읍니다 … 조선왕조 5백 년 동안에는 과거급제 한 사람에게만 벼슬을 주고 잘 살게 해서, 누구나 학교 다니는 것이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다니는 것처럼 여겼었고, 일제시대에는 고등관시험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의 시험에 합격만 하면 잘 살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농사나 지었는데, 그나마 농작물도 거의 빼앗기고 해서 살기가 고되었기 때문에 학교 다니는 목적을 오직 고등고시 합격으로만 여기고 지냈읍니다. 그러다가 해방 후에는 우리 나라 정책도 미국의 정책도 그것을 허락하지 않아 민족정기가 사라지면서 입신출세가 어둡게 되었던 것인데, 여전히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사람 대접도 받을 수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어요. 이제는 학교에 보내는 목적이 아주 어려서부터 오로지 그 목적 하나에 매달리게 되니까, 모든 것이 대학입시에 편중되고 있는 것입니다 … 그 글에서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하기를, 일제시대의 교육칙어를 연상케 한다고 하면서 그 근거도 밝혔지요. 지금이 민주국가라면 국민의 권리가 언급되어야 하는데, 권리는 하나 없고 의무만 있어요. 그리고 정의가 빠져 있어요 ..  (성내운)

잡지 <아동문예>도 그렇고, 백철 님 평론을 모은 <인간 탐구의 문학>도 그러한데, <나라꼴이 이래서야> 또한 '죽은' 책입니다.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책입니다. 백철 님 평론모음 <인간 탐구의 문학>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없습니다. 그나마 <나라꼴이 이래서야>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이라고 모든 책을 꼼꼼하게 갖추어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판이 끊어진 책을 도서관에서 찾기가 퍽 어려운 우리 나라입니다. 또한 큰 도서관은 서울에만 있고, 전국 곳곳에 골고루 있지 않습니다. 제주대학교에서 백철 문학을 파고드는 분이라면 이 책을 찾으려고 서울까지 마실을 해야 합니다. 이는 인천에서도 부산에서도 광주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대학교 도서관이라 한들 알뜰살뜰 갖추지 못합니다. 광역시와 도청 도서관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날마다 쏟아지는 책이 수없이 많은데 그 책을 어찌 다 갖추느냐?' 할 수 있을 텐데, 지자체에서 '보도블록 까뒤집기'만 안 해도 책 살 돈은 모자라지 않습니다. 전국에 수없이 새로 깔리는 새 고속도로와 고속국도 가운데 하나만 덜 놓아도 여러 해 동안 이 나라 모든 도서관에 새 책을 한 권 넘게 장만할 돈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아파트 한 채를 덜 짓고 온나라 도서관 책살림을 북돋울 수 있습니다. 경부운하니 4대강정비니 하는 데에 쏟을 돈이라면 무상교육을 비롯해 도서관 책 살 돈이나 숱한 보건복지를 튼튼하게 다질 수 있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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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이든 똑같이 대접을 받는 헌책방 헌책입니다. ⓒ 최종규


우리한테는 돈이 없지 않으나 돈을 알맞고 즐겁게 쓸 마음이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한테 책이 모자라지는 않으나 어떠한 책을 어떻게 만나고 간수하고 돌보면서 마음을 닦으면 좋은가는 모르지 않느냐 싶습니다. 새로 나오는 책도 죽고, 철이 지난 책도 죽는 우리 터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책방에서 사라지고 도서관에 깃들지 못하는 책이 마지막으로 헌책방에 모이는데, 이 헌책방을 눈여겨보지 않는 흐름이라 한다면, 앞으로 쉰 해쯤 뒤 우리네 책문화가 어떤 모양새가 될는지 적잖이 걱정스럽습니다(뭐, 그때가 다가오면 저는 죽고 없겠습니다만).

.. 지금 한국의 기독교신자가 7백만에서 1천만이라고 하지만, 그중에서 정말 사회정의와 사회구원을 위해서 십자가를 메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3%인지 아니면 2%인지는 모르겠읍니다. 하여간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의 기독교신자들은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하는 식의 기복신앙에 젖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나와 우리 남편과 우리 자식에게 복을 내려주소서." 해서는 교회에서 하나님만 믿게 되지, 그 이상은 생각지도 않게 됩니다. 나라가 거꾸로 되든 바로 되든 관심도 없는 기독교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그리고 목사님들 중에서도 가령 헌금을 많이 하는 신자에 대해서는 관심도 많이 쏟고 신방도 자주 하고 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우리 나라 교회의 일부 폐단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돈 없으면 하나님도 믿지 못하고 접근도 못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읍니다. 그리고 교단별로 나누어져서 교단별 정치를 하고 싸움을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  (송건호)

밑줄을 그으며 읽다가 책을 덮으며 후유 하고 한숨을 쉽니다. 1986년부터 스물세 해가 지난 2009년까지 그리 달라지거나 나아진 구석을 찾아보지 못하니, 그예 갑갑하고 아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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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마트 끈도 헌책방에서는 되쓰기를 합니다. ⓒ 최종규


만화책 <아다치 미츠루/편집부 옮김-터치>(대원씨아이,2007) 소장판이 1권부터 4권까지 보입니다. 만화책방에서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권수도 많고 두툼해서 미뤄' 두고 있던 녀석입니다. 마침 헌책방에서 만난 김에 살까 하고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래도 11권까지 나온 녀석인 터라 나머지 일곱 권을 장만하자면 주머니가 꽤 털려야 합니다. 새책은 한 권이 7000원이거든요.

.. "왜 그렇게 기뻐하는 거야?" "응? 그러니까 타츠야가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거 드문 일이잖아." "그런 게 기쁜 거야?" "응?" "흐음." "응원 갈 테니까, 힘내!" "됐어." "왜?" "복싱 같은 데 흥미없잖아. 야만스럽다고 해 놓구선." "복싱을 보러 가는 게 아니야. 타츠야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러 가는 거지." ..  (2권 348∼349쪽)

아다치 미츠루 만화는 주인공 생김새나 이야기 흐름이 거의 비슷합니다. 그래도 이 책 저 책 꾸준히 장만해서 보도록 손을 잡아끕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짜임새가 탄탄하며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애틋하고 깊은 마음씀이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만화영화가 아닌 만화책에서는 이런 짤막짤막한 이야기 한 줄 두 줄이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립니다. 만화영화는 쉴 틈이 없이 다음 쪽으로 넘어가지만, 만화책을 펼칠 때에는 가슴이 찡한 쪽에 오래도록 눈을 처박으면서 마음밭에서 꿈틀꿈틀하는 느낌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왈칵 울 수 있고 활짝 웃을 수 있습니다. 혼자서 보던 책을 그대로 옆지기한테 넘기면서 이 대목이 어떠하느냐고 물어 보면서 함께 즐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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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을 찾아오는 모든 분들한테 반갑고 기쁜 책이 찾아들기를. ⓒ 최종규


(3) 느긋하지 못하면

만화책 <야마모토 오사무/이주련 옮김-사랑의 집 (1)>(대원,1997)와 <황미나-李씨네 집 이야기 (1)>(서울문화사,1999)를 봅니다. 모두 1권만 보입니다. 그러나 다문 한 권뿐일지라도 장만합니다. 만화책은 대여섯 해만 지나더라도 짝 맞추기가 어렵고, 고작 한 권만 보일지라도 틈틈이 갖추어 놓으며 권수를 맞춰야 합니다.

<1982 원색한국우표목록>(금화출판사,1982)을 보니 어릴 적에 우표모으기 하던 일이 떠오릅니다. 1982년이면 국민학교 1학년 때입니다. 이무렵 형하고 푼푼이 돈을 모아 우표목록 한 권 가까스로 장만해서 날마다 수없이 보고 또 보며 종이장이 닳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무렵에 아마 1981년치 우표목록을 장만했을 텐데, 돈은 없어도 우표목록에 나온 우표만 들여다보며 '나한테 하나도 없는 이 우표들이 마치 나한테도 다 있는 듯' 생각하며 홀로 부자가 되어 있는 듯한 꿈을 꾸곤 했습니다. 이제 우표모으기를 하지 않아 우표목록은 더 안 사도 되지만, 헌책방마실을 하며 철지난 우표목록이 눈에 뜨이면 어김없이 손이 갑니다. 어김없이 끄집어내어 펼치면서 피식 웃습니다.

<カ-ドキャタさくら>(講談社,1998)는 '카드캡처 사쿠라' 만화영화를 책에 그러모은 판입니다. 이런 판으로도 나오는구나 싶어 장만하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책을 바닥에 풀어 놓으니 우리 딸아이가 이 책을 덥석 집어들어 펼칩니다. 무지개빛으로 알록달록한 책이 눈길을 끄는가? 푸훗, 그래도 아기는 아기라고 책을 거꾸로 들고 들여다봅니다.

<곽영훈-우리 땅의 내일을 위하여>(산업도서,1987)라는 책을 하나 집어듭니다. 건축일을 하는 사람이 집짓기와 도시설계와 얽힌 글을 짤막짤막하게 써서 그러모았습니다.

.. 서울이 천만 인구를 수용하는 대도시로 성장되어 있는 지금까지 사대문 안을 그대로 도심이라고 간주하고 도시계획을 구상하고 집행하는 것은사대문 안의 옛모습을 없애는 문제뿐만 아니라 서울시 전체의 구조와 유통상 역기능을 낳을 것임을 알 수 있다 … 도시 재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융자와 세제 혜택을 주면서까지 사대문 안의 고유성을 제대로 가릴 줄 모른 채, 다 허물고 다 새로 짓는, 그것도 규모가 엄청나게 큰 재벌의 터전화로의 변모를 어떻게 정치경제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 후손들에게 납득시켜질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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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으려고 하는 손길에는 반가운 책이 시나브로 찾아갑니다. ⓒ 최종규


'도시 재개발'이란 '미명'입니다. 곧, 허울좋은 이름입니다. 이름만 예쁘게 붙인 일입니다. '재개발이 될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 정책 꿍꿍이를 넌지시 숨기는 이름입니다. '재개발을 한 다음 돈을 얼마나 버는가'에만 눈길을 맞추고, 이곳에서 오래도록 뿌리내리며 살아온 사람들 문화와 역사는 가볍게 내동댕이치는 끔찍한 주먹질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재개발이 끔찍한 주먹질이거나 발차기라고 못 느낍니다. 쫓겨나는 사람들이건 시세차익을 얻는 사람들이건 어마어마하게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건, '깨끗하지 못한 동네를 깨끗하게 바꾼다'고만 여깁니다. 그런데요, 말이 '재개발'이지, 재개발을 하려는 동네치고 처음부터 '개발을 제대로 한' 적은 없습니다. 좀더 살기좋고 넉넉하고 느긋하며 아름답고 깨끗한 삶터가 되도록 '개발'을 해 놓지 않았으면서, 나중에 이곳이 집값이 싸며 가난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 어깨동무하며 조촐하게 문화와 역사를 이룰 즈음이 되면, 어김없이 삽날과 법률과 경찰을 이끌고 '철거'를 한다며 들이닥칩니다.

제 삶자리도 재개발 때문에 시끌시끌합니다. 아니 시끌시끌할 뿐 아니라, 동네를 통째로 없애느니 마느니 하면서 시청 공무원과 건설업체 사람들이 '공사를 가로막고 공청회를 못 열게 하는 주민들이 위법행위를 한다'며 형사고발을 하기까지 했고 손해배상청구마저 했습니다. 개발업자와 개발업체와 개발부서 공무원이 만나는 '주민'이 누구인지 도무지 모르겠는데, 이들은 우리 주민을 놓고 '당신들은 목소리가 모든 주민 목소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겠지요. 모든 주민이 한목소리를 내지는 않겠지요. 그러면, 공무원과 개발업체는 모든 주민 목소리를 얼마나 골고루 듣고서 계획을 짜고 밀어붙이려고 하는지요. 느긋하게 돌아보고 살피면서, 넉넉하게 귀담아듣고 내다보면서, 동네 하나에 깃든 문화와 역사를 받아들이고자 했을까 모르겠습니다. 아니, 재개발뿐 아니라 교육과 정치와 예술과 과학에서도, 우리들은 얼마나 내 터전과 내 이웃 터전을 살뜰히 톺아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도 빨리만 나아가려 하지 않나요. 너무도 크게만 되려 하지 않나요. 너무도 밥그릇 챙기기에 매여 있지 않나요. 좀 느긋할 수 없을까요. 좀 넉넉할 수 없을까요. 좀 사랑스러울 수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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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만난 여러 가지 책들을 바닥에 깔아 놓고. ⓒ 최종규


느긋하지 못하면 책을 살 수 없습니다. 아니, 느긋하지 못하면 책방마실을 못합니다. 새책방 찾아가는 마실이든 헌책방 찾아가는 마실이든 못합니다. 도서관 또한 못 갈 테지요. 아니, 책을 읽을 겨를이나 있겠습니까.

100만 원 아닌 90만 원이나 80만 원을 벌어도 알뜰살뜰 살아가면 얼마든지 넉넉할 뿐더러 다달이 책을 몇 권쯤 장만해서 읽을 수 있고, 좀더 가난하면 헌책방을 찾아가서 좀더 값싸게 책을 마련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련해서 읽은 책을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할 수 있고, 동네사람 스스로 조그맣게 '마을 도서관'을 열 수 있습니다. 꼭 으리으리 새집을 수 억 원이나 수십 억 원을 들여 지어야 도서관이 되지 않아요. 반드시 새책으로만 갖추어야 도서관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즐겨 읽던 책을 다섯 평짜리 방 하나에 차곡차곡 갖추어 놓아도 '작은 도서관'이 됩니다.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읽어도 좋고 열 사람이 찾아와서 읽어도 좋습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가야 하지 않고, 옥천에서 대전까지 가야 하지 않으며, 고흥에서 광주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 삶터 크기에 걸맞게 '작은 책쉼터'를 일구면 돼요.

책이란 작은 사람 작은 목소리 작은 넋 작은 기운 작은 땀방울 작은 사랑을 모두어 내는 자그마한 나뭇잎입니다.

덧붙이는 글 | ― 서울 신촌 〈공씨책방〉 / 02) 336-3058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 서울 신촌 〈공씨책방〉 / 02) 336-3058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헌책방 #공씨책방 #책읽기 #절판 #책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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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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