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중증 장애인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심각한 육체적 손상을 입었지만, 지난 23년 동안 부모님의 극진한 보호를 받은 까닭에 장애인이라고 해서 위축된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덕분에 내 나이 또래 비장애인들은 군대를 다녀와 여자 친구와 연애를 하고 다니겠지만, 나는 혼자 힘과 의지로 외출을 한 경험이 없다. 문자 그대로 단 한 번도 없었다. 여자 친구? 물론 없다.
10월 30일, 이 날은 내게 특별한 날이다. 드디어 혼자 힘으로 외출하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 활동보조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내 계획에 귀를 기울여주었으며, 잠깐 동안 고민하더니 이 '모험'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여느 때처럼 오전엔 복지관에 들러 컴퓨터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은 뒤엔 근처 재활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았다. 이윽고 신도림 테크노마트로 향하는 장애인 콜택시에 탔다. 콜택시 안 요금기가 '1800'이라 표시된다. 기사에게 물어봤다. "저 숫자가 무엇인가요?" 택시 요금이란다. 내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태어나서 그 동안 택시요금 1800원치 거리를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겐 대수롭지 않겠지만, 내겐 혁명적인 사건이다.
처음 가본 테크노마트는 어마어마했다. 11층 그랜드 볼룸으로 갔다. 가슴은 기대감으로 들뜬 상태다. 이곳에서 오후 4시부터 '장애인 직업재활 전진대회 및 직업재활의 날 선포식'이 열리기 때문이다. 모토가 참 마음에 들었다. '일이 없으면 삶도 없다' 평소 내 문제의식을 한 마디로 압축하는 문장이기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화환과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처음엔 잘못 왔나 싶었다. 장애인 행사인 줄 알았는데, 장애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 행사장에 가고자 입구를 열자 이 안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무대는 따뜻하고 밝은 빛으로 화려했으며,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축하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때 스태프라는 푯말을 목에 건 단 정장 차림의 남자가 다가왔다. "예약이 되어 있나요?" 무슨 말인지 몰라 활동보조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가 대신 말했다. "예약이 안 돼 있습니다." 그러자 스태프는 내가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
스태프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나는 행사장 옆 '가든'이란 곳으로 이동했다. 가든이란 곳에 플라스틱 간이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정면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어 초대받지 않은 사람도 행사를 볼 수 있게 배려했다. 그러나 가든의 중앙에 조형물이 세워져 있어 뒤에선 스크린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처지다.
활동보조인에게 물었다. "장애인 행사가 아니었나요? 왜 장애인이 별로 보이지 않지요?" 그가 말한다. "대로가 기대한 장애인 행사가 아닐 뿐이야. 이 행사에 초대받아 식탁에 앉은 사람들은 장애인 보호시설작업장의 시설장이나 장애인을 채용한 회사의 사장이니까. 시설 관리자와 복지관 직원들도 많이 왔네."
그가 말을 이었다. "장애인이라고 다 같지 않아. 시설을 운영하는 시설장이 장애인이라고 해서 그가 장애인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까. 너는 취업을 원하고, 시설장은 정부에 시설에 대한 투자 및 지원이 증가해야 한다고 주장해. 그것이 중증 장애인의 취업을 위해 대안이라고 말이야. 그런데 시설장은 높은 이윤을 남기길 원하고, 시설 노동자에겐 월 5만원에서 20만원 정도의 월급만 주거든. 결국 네가 보호작업장에 취업이 된다고 해도 자립은 꿈도 꿀 수 없어."
다시 물었다. "일이 없으면 삶도 없다잖아요. 맞는 말이 아닌가요?" 그가 말한다. "절반은 맞는 말이야. 일이 없으면 넌 영원히 실업자가 될 것이고,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할 테니까. 단, 일을 하더라도 단돈 20만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넌 수급권자가 아니잖아. 생각해봐."
큰 소외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우울해졌다. 나는 일을 하고 싶고, 받은 월급으로 자립생활을 하고 싶다. 내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다가왔다. 그때 지나가는 누군가가 내게 "어, 너도 여기에 왔네"라며 아는 체를 한다. 그러나 누군지 모르겠다. 아마 복지관에서 나를 본 적이 있는 관리자인가 보다. 활동보조인에게 말했다. "기분이 더럽네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이나 하고 말이에요. 이게 상식인가요. 그만 집에 가요."
신도림역, 난생 처음으로 리프트를 탔다. 어릴 땐 어머니 등에 업혀 다니고, 성장해서는 재가 장애인 생활을 하고 있으니 리프트를 타볼 기회가 없었다. 저 계단 위에서 아주 천천히 리프트가 내려온다. 10분 정도 기다린 듯싶다. 리프트에 탔다. 개미 발걸음보다 조금 더 빨리 리프트가 올라간다. 노래를 불렀다. '엉금 엉금 기어서 가자' 공익근무요원이 말한다. "너무 느리지요. 그래도 이건 약과예요. 1번 출구의 리프트는 40분이 걸려요." 비장애인이라면 20초밖에 안 걸려 보이는 거리를 40분에 걸쳐 가야 한다니. 숨이 턱 막힌다. 활동보조인이 말한다. "신도림역은 그나마 다행이야. 노량진역엔 리프트도 없어. 최악이야. 어떤 장애인은 노량진에 가려고 용산역에서 내려 한강대교를 건너 간다니까."
전동차가 도착했다. 활동보조인이 차와 플랫폼 사이의 틈을 보라고 한다. '악' 소리가 났다. 10cm가 넘는 게 아닌가. 혼자 힘으론 전동차를 탈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온수역에 내렸다. 또 리프트를 탔다. 활동보조인이 말한다. "지금 우리가 온 거리는 비장애인이 올 경우 15분도 안 걸려. 하지만 대로는 1시간 30분이 넘게 걸리는구나."
이게 전부인지 알았다. 그런데 넘어야 할 산이 산 너머 또 있었다. 온수역에서 집으로 가는 방향의 인도 폭이 1m도 되지 않았다. 비장애인이라면 혼자서 갈 수 있는 폭이지만 휠체어는 통과할 수 없다. 차도를 역주행해야만 집에 갈 수 있었고, 내 눈 앞으로 어두운 밤 길을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이 다가왔다. 다행히 차들이 나를 피한다. 언덕 길에서 끙끙거리며 휠체어를 밀던 활동보조인이 말한다. "아, 시X 힘들다. 힘들어." 활동보조인에게 말했다. "형, 나도 힘들어 죽겠어요. 장애인이 차별 체험을 해보니 말입니다."
| 2009.10.31 19:49 | ⓒ 2009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