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후 어진 화가 김은호, 그의 친일을 만나다

[서평]격동의 20세기를 살았던 15인의 예술가 -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

등록 2009.11.24 10:00수정 2009.11.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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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청아출판사)는 한국 근·현대, 즉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동란 등 우리 민족의 운명이 소용돌이치던 그때, 예술을 위해 살고 죽었던 우리 예술가 15인의 이야기다.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이당 김은호(1892.6.24~1979.2.7)는 식민지 시대의 문화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친일화가로 분류된다.

 

<금차봉납도>를 그린 것을 시작으로 김은호는 본격적인 친일활동에 나서게 된다. 일제가 만주 침략에 이어 대동아 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며 경제수탈과 침략전쟁에 광분해 있을 때, 그는 조선인의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 창씨개명에 동조하며 군국주의에 영합했다. '쓰루야마'라는 일본식 성으로 창씨개명을 한 그는 화가로서 일본 천황에게 화필보국과 회화봉공의 충성을 맹세하며 친일 대열의 선두에 섰다. …그의 친일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총독부와 아사이 신문이 후원한 일만화 연합 남종화 전람회를 비롯해 조선남화 연맹전, 애국백인일수 전람회 등 전쟁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각종 전시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책속에서

 

김은호가 그렸다는 <금차봉납도>는 1937년 8월 20일에 결성된 '애국금차회'에서 있었던 일을 그린 것이다. 이 애국금차회는 순종의 외척인 윤덕영의 처 김봉완이 회장인 애국부인회로 우리에게는 국방헌금조달과 황군원호에 앞장섰던 단체로 유명하다.

 

"결성식에 모인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금비녀 11점과 금반지와 금귀걸이 각 2점, 은비녀 1점, 그리고 헌금 889원 60전을 모아 일제의 성전 승리를 위한 국방헌금으로 냈다."

 

1937년 8월 21일자 <매일신보>는  김은호의 <금차봉납도>의 바탕이 되는 '애국금차회'의 일을 이렇게 보도하고 있는데, 그는 그림 왼편에는 모아진 금붙이를 증정하는 회장 김봉완과 한복 차림의 부인들을, 오른쪽에는 이를 증정 받는 미나미 총독과 일본 고위관리들의 모습을 그린 이 영광스런(?) 그림을 같은 해 11월 미나미 총독에게 증정했다고 한다.

 

1941년에는 '경성미술가협회'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한다. '미술가 일동도 궐기해 서로 단결을 굳게 하고 조선총력연맹에 협력해 직역봉공을 다하자는 목적으로 발기'된, 즉 일제에 충성을 다하고자 결성된 일종의 관변단체로, 총독부 학무과장이 회장으로 조선인 화가들과 조선에 와 있던 일본 화가들이 회원인 친일 미술인 총 집합체였다.

 

1943년, '경성미술가협회'는 다른 예술 단체들과 함께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에 배치되어 국방기금마련을 위한 전시회를 여는 등 전시체제 유지에 협조를 다한다. 이때 중추적인 역할을 한 김은호는 총독부로부터 그 적극적인 공을 인정받아 총독부 정보과가 후원하는 '반도총후 미술전'의 일본화부 심사원으로 선정되는 권력과 명예(?)를 거머쥔다.

 

반도총후 미술전은 일제의 군국주의 찬양과 황국신민화의 영광을 고무시키고자 만든 전람회였다. 그는 이렇게 얻은 권력과 부로 당시 가장 권위 있는 미술 공모전인 '선전'에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특선의 영광을 남발, 독식하는 등의 영향력으로 이후 우리 화단을 좌지우지한다.

 

이런 일련의 경력 때문에 김은호는 화단에 친일파 화가들을 대량으로 배출시킨 장본인, 인맥에 의한 파벌 조성과 일본풍의 채색화가 풍미하게 된 요인을 제공한 화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황국신민의 영광을 안고 열과 성을 다해 작품 활동과 후진양성에 힘썼던 김은호는 일제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해방 후 결성된 '조선미술건설본부'에서 제외 당했다. 이때 제외자 명단에는 그와 함께 김기창, 이상범, 김인승, 심형구 등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런 시련도 잠시, 김은호는 미군정 이후 친일파의 재기용 붐에 편승해 자신이 키운 제자들의 비호를 받으며 다시 화단의 총수로 떠올랐다. 그 후 그는 대한미술협회와 국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며, 제자들과 함께 미술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화 권력으로 떠오르게 된다. -책속에서

 

김은호는〈신사임당>·〈이이〉·〈이순신〉·〈논개〉등의 공인 영정과 인도 간디 수상의 초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최근 몇 년 김은호의 친일행각 때문에 그가 그린 이 그림들도 불명예의 논란에 휩싸이며 논개 영정이 논개사당에서 떼어지기도 했다.

 

저자는 대표적인 친일예술가요, 친일화가인 김은호가 부농의 2대 독자로 태어나 어떻게 조선 최후 어용화가가 되었는지,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친일을 했는지 등을 그의 삶 따라 순서적으로 들려준다.

 

a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겉그림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겉그림 ⓒ 청아출판사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겉그림 ⓒ 청아출판사

이 책은 미술계와 문학계, 연극과 영화, 사진과 건축, 성악과 무용 등 우리 예술계 다양한 분야 다양한 예술가들의 삶과 죽음 및 예술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미술계 예술가로 김은호와 함께 소개되는 또 다른 인물은 이중섭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절망에 황폐해져 쓸쓸한 죽음을 맞는 그의 삶은 불우하고 애잔하다.

 

김은호가 친일 인사들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한 십여 년 후 이중섭도 형의 적극적인 격려로 일본 유학을 하고 김은호가 그랬던 것처럼 일본이 주최하는 각종 상을 수상, 둘 다 같은 시기 화가로써 명망을 떨친다. 그러나 둘의 삶은 극명하게 대립된다. 책을 읽는 동안 둘의 삶은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책을 통해 같은 시대 한 땅에서 살았던 두 예술가의 전혀 다른 삶을 비교해보는 것도 한사람의 삶에 있어서 예술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혹자들은 '살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는 말 등으로 친일 예술가들에게 면죄를 주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설령 그랬을지라도 김은호의 적극적인 친일행적은 우리의 광복은 전혀 오지않으리라 믿고 있었던 것처럼, 아니 광복은 영영 오지 않기를 바랬던 것처럼 보여져 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기분이 나빴다.

 

김은호와 이중섭 외에 고바우 영감을 그린 시사만화가 김성환, 민족음악의 선구자인 작곡가 김순남의 북한에서의 최후, 한국 성악계의 대모로 불리는 소프라노 김자경의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단 창립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은 부분들이다. 우리 영화계의 풍운아 나운규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이들 예술가들 중에는 김은호처럼 친일자란 낙인이 찍힌 경우도 있고 김순남이나 최승희처럼 월북한 사람들도 있다. 책속 예술가들이 살았던 20세기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들 예술가들 주변 이야기까지 들려줌으로써 당시 우리 예술계와 역사적 지식까지 함께 아울러 정리해볼 수 있다.

 

역사는 이들을 예술에만 몰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급변하는 사회, 정치적 상황에 적극 참여하거나, 소극적으로 적응하거나, 무관심하거나, 혹은 대항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일정한 입장을 취할 것을 요구했다. 예술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 격동의 시대에 대응했고, 바로 그것이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오늘 우리가 이들의 일대기를 그저 한 사람의 인생역정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민 지배, 가난, 전쟁, 이데올로기의 갈등, 분단 등 한 사람의 개인이 감당하기에 벅찬 엄청난 역사의 소용돌이를 감내해야 했던 이 시대의 예술가들에게 연민, 존경, 분노 등이 중첩된 감정을 느꼈다. 이 모든 악조건에도 예술에 대한 열망과 창조력은 더욱 불꽃처럼 타올랐으니, 그 치열한 예술혼을 배우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 서문 중에서

덧붙이는 글 격동의 20세기를 살았던 15인의 예술가-<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 진회숙 (지은이) | 청아출판사 | 2009-10-08 |정가 : 15,000원 

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 - 격동의 20세기를 살았던 15인의 예술가

진회숙 지음,
청아출판사, 2009


#친일인명사전 #친일화가 #친일자 #김은호 #금차봉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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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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