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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우승' 본야스키, 풀지 못하는 '슐트 방정식'

격돌 때마다 패배, 결과뿐 아니라 내용마저도 좋지 못해

09.12.07 09:24최종업데이트09.12.0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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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없었다면!'

스포츠 세계를 들여다보면 종종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운에 울게 되는 선수들을 볼 수 있다. 조금만 빨리 혹은 늦게 데뷔를 했더라도 마주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전성기가 서로 맞물리며 자신을 2인자 혹은 3인자로 만들어 버리는 상대의 존재. 다른 때 같았으면 1인자가 되기에 충분한 상황에서 결국 안타까운 한숨만 쉴 수밖에 없다.

NBA(미 프로농구)에서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그늘에 가렸던 스타들이 그랬고, 국내스포츠로 눈을 돌려보면 과거 일본 진출 전 '야구천재' 이종범이 전성기를 누렸던 시절이 그랬다.

너무도 완벽하고 대적할 수 없는 그들의 능력에 상당수 선수들은 같은 시대에 활동하게된 것에 대해 하늘을 원망하는 것 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개인통산 4번째 우승을 노렸던 K-1의 슈퍼스타 '플라잉 잰틀맨' 레미 본야스키(33·네덜란드) 역시 이러한 아픔을 톡톡히 겪고 있다.

누군가만 없었다면 4번이 아닌 5번의 우승도 가능했을 것 같건만 너무도 강력한 '천적'의 존재로 말미암아 향후의 행보 및 그동안 이뤄놓은 업적의 가치마저도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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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패턴을 가진 최고의 '테크니션' 레미 본야스키

본야스키는 최고 수준의 스피드나 스탭도 그렇다고 일격필살의 무기를 갖춘 선수도 아니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파이팅 스타일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3차례나 그랑프리 파이널을 정복한 선수다.

'슬로 스타터(Slow Starter)'라는 평가가 말해주듯 본야스키는 초반부터 거칠게 상대를 공략해서 승부를 보는 타입이 아니다. 그는 가드부터 확실히 올린 상태에서부터 공수를 시작한다.

두터운 글러브 속에 숨어버린 그의 작은 안면을 맞추기 위해 상대 선수는 안간힘을 쓰기 일쑤다. 가드 위를 힘껏 두들기는가 하면, 가드를 내려오게 하기 위해 옆구리나 복부 쪽을 공략하기도 한다.

하지만 워낙 바디와 하체의 맷집이 좋아 안면만 착실히 닫아놓으면 상대는 좀처럼 그에게 충격을 주기가 쉽지 않다.

본야스키는 웬만한 공격은 가볍게 흘리듯 맞아주면서 천천히 상대의 경기 리듬을 몸으로 느낀다. 가드를 하는 순간에도 작은 틈만 있으면 얼마든지 짧은 카운터를 낼 수 있으며 회초리 같이 꺾이어 들어가는 로우킥은 결국 후반에 가서는 상대의 기동력을 묶어버리는 효과를 발휘한다.

무턱대고 본야스키를 향해 의미 없는 공격을 퍼붓다가는 되려 상대방 자신이 가랑비에 옷 젖는 식으로 잔매에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

본야스키를 상대로 중반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이후에는 엄청난 반격을 각오해야 한다. 본야스키는 서서히 타이밍이 맞아간다고 느낄 무렵 공격의 횟수를 높여가면서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입히고, 중반부를 넘어서 상대의 압박이나 체력이 떨어질 무렵 급피치를 올린다.

뛰어난 방어 실력만큼이나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날카롭게 들어가는 공격력 역시 매우 강력하다. 하나하나의 위력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펀치-무릎-킥 등을 아주 부드럽게 컴비네이션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지라 아주 잠깐의 빈틈만 허용하더라도 치명적인 연타를 얻어맞을 수 있다.

적어도 이러한 스타일은 대부분의 선수에게 통했다. 철통 같은 그의 가드는 최고의 화력을 지닌 '악동' 바다 하리(25·모로코)마저도 뚫지 못했을 정도이며 아직까지도 체력전이나 판정경기에서 본야스키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문제는 단 한명에게만큼은 이같은 패턴이 절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 그랑프리 파이널 포함 통산 4차례 정상에 오른 '격투로봇' 세미 슐트(36·네덜란드)가 바로 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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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필승패턴', 로봇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본야스키는 그랑프리 파이널을 2년 연속으로 제패한 이후 5년 동안 단 한차례 밖에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5번의 파이널 동안 슐트가 무려 4번을 가져갔다. 나머지 1번마저도 피터 아츠(39·네덜란드)에 의해 슐트가 16강에서 탈락한 가운데 다소 어부지리로 얻은 우승이었다. 그야말로 천적도 이런 천적이 없는 것이다.

물론 슐트는 본야스키뿐 아니라 K-1의 모든 선수들에게 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212cm, 126kg의 엄청난 체구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발차기 공격을 자유로이 구사할 만큼 수준 높은 기술의 소유자다. 체력과 격투 센스마저도 뛰어난지라 약점이 없는 거인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본야스키는 슐트에게 약해도 너무 약하다. 슐트를 제외하고 누구도 자신을 꺾기 힘든 실질적인 '2인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는 슐트와 3번을 격돌해 모두 다 참패를 당했다.

특히 지난 파이널에서의 격돌은 '더 이상 본야스키가 슐트에게 답을 찾기 어렵다'는 인식을 팬들에게 확실하게 심어주었다는 평가. 그는 번번히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커다란 산을 넘기 위해 평소와 달리 초반부터 펀치로 치고 나가는 초강수까지 두며 '타도 슐트'에 이를 악물었다.

예상치 못한 펀치 공격에 당황한 슐트는 다운까지 당했고 드디어 본야스키가 천적을 넘어서는 듯했다. 하지만 전열을 정비한 슐트는 이내 일방적으로 본야스키를 몰아부쳤고 경기는 1라운드에 마무리 지어지고 말았다.

슐트의 공격에 큰 충격을 받은 본야스키는 한참을 누워 고통스러워했고 얼굴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승패를 떠나 본야스키는 슐트에게 너무 약하다. 그보다 한 수 아래인 글라우베 페이토자(36·브라질)는 물론 신예 다니엘 기타(28·루마니아) 등도 어느 정도 슐트에게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에 비춰보면 본야스키는 그야말로 고양이 앞에 쥐가 따로 없을 정도다.

펀치보다는 킥을 위주로 구사하는 본야스키는 슐트가 가장 상대하기 편한 스타일중 하나다. 그나마 슐트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펀치를 통해 안면을 공략해야 하거늘 복싱이 좋지 않은 본야스키로서는 유일한 약점마저 활용이 안 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슐트는 본야스키와 비슷한 스타일에서 체격만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본야스키가 슐트보다 뛰어난 점은 강력한 가드 정도 밖에 없다. 결국 본야스키는 자신이 슐트에게 별다른 공격을 할 수 없는가운데 일방적으로 고공폭격을 당하며 분루를 삼키는 과정을 되풀이하고있는 상황이다.

과연 본야스키는 격투 인생 최대의 숙적인 슐트의 벽을 언제나 넘어설 수 있을지, 확실한 것은 그를 넘지 못한다면 본야스키에 대한 후세의 평가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천적관계 K-1 레미 본야스키 세미 슐트 바다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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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전) 홀로스, 전) 올레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농구카툰 'JB 농구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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