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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구워온 군밤. 고마운 마음으로 아련한 추억들을 반추하고 회상하며 즐겁게 까먹을 따름이지요.
ⓒ 조종안
▲ 아내가 구워온 군밤. 고마운 마음으로 아련한 추억들을 반추하고 회상하며 즐겁게 까먹을 따름이지요.
ⓒ 조종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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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아침부터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더니 아내가 잘 익은 군밤 한 접시를 내왔다. 토실토실한 알밤이고,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기에 얼른 집어 까먹었더니 고소한 단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어이구, 무슨 군밤이야!"로 대신하고 "군밤은 맛도 있지만, 까먹는 재미가 별미라고, 그러니까 자기도 하나 까먹어봐!"라고 했더니 "나는 직장에서 먹으니까 염려 말고 잡수세요!"라며 웃었다.
다시 아내에게 "군밤은 여럿이 둘러앉아 옛날이야기 들으면서 까먹어야 제 맛이 나는디 혼자 먹으라니, 그럼 내 정력 보강을 위해서 구웠남?" 하고 삐딱하게 물었더니 "정력은 무슨 정력, 지난 번에 박 선생이 농사지은 거니까 먹어보라고 주기에 보관하고 있었어요"라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그 옛날 겨울밤 길거리 풍경과 안방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던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 "가찹게 허믄 게을러진다"고 어머니에게 접근 금지당했던 화롯가, 부엌 아궁이에서 있었던 아련한 추억들을 떠오르게 해주는 군밤을 구워온 아내가 고마웠다.
군밤에 얽힌 추억들
밤은 관혼상제, 제사상에 오르는 3색 과일 중 하나로 조상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군밤은 긴긴 겨울밤 이불 속에서 옛날이야기 들으며 먹어야 제 맛이 나는데 영양소도 풍부해서 우리 정서에 맞는 간식이다.
함박눈이 내리던 60-70년대 겨울밤 거리 풍경이 새로운데, 텁수룩한 수염에 누덕누덕한 방한모를 쓴 군밤장수 아저씨, 흰 실에 군밤을 5-10개씩 꿰어 사과박스에 올려놓고 연탄불을 쬐며 손님을 기다리던 아주머니 모습도 그려진다.
눈이 내리는 어느 일요일 은행에 다니는 아가씨를 만나 군밤을 까먹으며 지금은 뱃길이 끊어진 충남 장항에 다녀오던 추억도 잊지 못한다. 도선장 출구 옆에서 밤을 굽는 아주머니가 불쌍하다며 두 봉지를 사면서 웃돈을 얹혀주던 아가씨였는데 불행하게도 이듬해 연탄가스로 이승을 떠났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놀라고 어이가 없었던지….
길에서 군밤을 한 봉지 사서 잠바 주머니에 넣고 한 개씩 꺼내 먹으며 극장에 가는데 찬바람만 횡횡하던 거리 풍경도 엊그제 일처럼 떠오른다. 영화를 보고 오는 길에는 이성당과 쌍벽을 이루던 조화당 제과점에 들러 토스트와 따끈한 우유를 한 잔 마시고 어머니가 좋아하던 모찌(찹쌀떡)를 사오면 "비싼 걸 머더러 사왔다냐!"라고 하면서도 다 드셨다.
겨울의 진객 군밤, 군밤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하나 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어렸을 때 큰 누님이 누런 봉투나 신문지로 만든 조그만 봉지를 들고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누런 봉지만으로도 군밤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잘해야 한두 개, 봉지가 아버지 손으로 넘어가면 얻어먹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 "나는 언제 아버지가 된댜?"라며 '아버지 타령'을 했는데, 지금은 한 되를 구워 혼자 다 먹어도 시비 걸 사람이 없는 부러운? 아버지가 되었다. 그것도 지천명을 넘어 육순, 더 할 말이 없다.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형제들이 모이면 '아버지 타령'이 생선회에 초고추장처럼 따라다니며 웃음바다가 되곤 한다. 이제는 아름답고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인데, 군고구마, 누룽지, 식혜, 등을 먹을 때도 '아버지 타령'을 했기 때문에 형제들이 더 잘 기억하는 것 같다.
밥을 해먹던 막내 누님을 놀라게 했던 적도 있다. 밥이 끓으면 아궁이의 장작불에 물을 뿌리고 숯을 꺼내 풍로에 담아 찌개나 국을 끓이는데, 그 틈을 이용해서 밤을 누님 모르게 아궁이에 넣고 기다리다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에 간 것까지도 좋은데 깜빡 잊고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과 휩쓸렸다. 그리고는 한참을 놀다 문득 밤이 생각나 들어왔더니 막내 누님이 "야야, '뻥' 허는디 간 떨어질 뻔 혔다!"라며 얼마나 야단을 치던지. 나에게는 밤 두 알 때문에 아버지에게도 된통 혼났던 대형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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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전 계룡산 동학사 입구에서 만났던 밤 굽는 학생. 30대 후반의 멋쟁이 중년 신사가 되었을 학생을 만나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살아온 얘기를 듣고 싶더군요.
ⓒ 조종안
▲ 20년 전 계룡산 동학사 입구에서 만났던 밤 굽는 학생. 30대 후반의 멋쟁이 중년 신사가 되었을 학생을 만나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살아온 얘기를 듣고 싶더군요.
ⓒ 조종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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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쯤 되었을까. 계룡산 동학사에 갔다가 다리 위에서 군밤장수 아주머니를 보았다. 그런데 점심때가 되니까 옆에서 잔심부름하던 학생이 어머니 자리에 앉아 밤을 구웠는데 그 모습이 보기 좋아 셔터를 누른 적이 있다. 지금은 30대 후반의 어엿한 중년 신사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한번 만나보고 싶은 학생이다.
'5대 과일'에 '5대 영양소'를 함유한 밤 |
의학이 발달한 요즘에는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면 얼마든지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약이 귀했던 시절에는 들녘의 풀이나 과일에서 찾기도 했는데, 그중 밤은 맛도 좋고 영양소도 풍부해서 민간요법에 이용되기도 한다.
호두, 잣과 함께 견과류에 속하는 밤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미네랄, 비타민 등 '5대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고, 이뇨작용에 효과적이어서 한의학에서는 '신장의 과일' 대접을 받으며 약제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해서 밤이 보유한 영양소와 이용 방법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밤은 '동의보감'에 '기운을 북돋우고 장과 위를 든든하게 하며, 정력을 보하고 사람의 식량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한방 서적에도 '밤은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하여 독이 없다'고 적혀 있다.
예부터 밤은 '대추', '살구', '복숭아', '자두'와 함께 '5대 과일'이라 하여 귀하게 대접받았다. 특히 비타민 C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피부미용, 피로회복, 감기예방에 좋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에 생밤을 씹어 먹으며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기원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밤은 껍질이 두껍고 전분으로 둘러싸여 겨울철에 중요한 비타민 C의 공급원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술집에서 하얀 생밤이 안주로 올라오는 걸 자주 보는데, 알코올 분해를 돕는 기능이 탁월해 숙취를 없애주기 때문이라고.
맛도 좋고 영양소도 많은 밤은 겨울밤에 먹는 간식 중에 으뜸으로 친다. 허리 아플 때 말린 밤을 이른 아침에 열 개씩만 까먹으면 효험이 있다니, 가정에 한두 되쯤 상비해둘 것을 권한다. 아이들 간식이나 긴급처방 등 여러 방면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싸우다 칼이나 날카로운 송곳 같은 것으로 찔렸을 때, 피부병이나 벌레에게 물렸을 때, 생밤을 찧어 환부에 붙이면 덧나지 않고 잘 나으며, 차멀미가 심한 사람은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씹어 먹으면 울렁거리고 메슥거리는 증상이 가라앉는다니까 말이다.
밤은 노화예방에 좋은 비타민 B₁이 쌀보다 4배나 많이 함유되어 있고, 신체 발육에 필요한 영양소도 골고루 들어 있어 아이들 간식에 빠질 수 없는 과일이다. 특히 밤이 함유한 당분은 소화를 촉진해주기 때문에 이유식이나 영양식으로 이용하면 아주 좋다고 한다.
밤을 삶아 으깨고 우유, 생크림, 설탕을 넣어 만든 간식은 허약해진 아이들이나 환자 회복에 좋다고 하는데, 입맛을 잃고 밥을 멀리 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먹이지 않고 밤을 이용한 간식을 만드는 것도 지혜일 것이다. |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12.21 1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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