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가 만든 반찬, 엄마 손맛을 느끼다

등록 2009.12.27 15:23수정 2009.12.2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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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나는 남의 집에 가서 밥을 먹지 않는다. 신경장애와 위장장애가 있기 때문에 먹은 것이 나중에 몸에 부담이 돼 일상생활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젠 그럴 수 없었다. 병원을 세 군데나 들러 치료받고 점심때가 지나 친한 선배언니 집에 들렀더니 가자마자 언니가 서둘러 밥을 차려주었다. 내가 치료받느라 고생했다고 여긴 따스한 배려였다.

성탄절에 받은 괴산 은행을 반으로 나눠 언니에게 갖다 주었다. 그리고 신부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루 7알씩만 먹으면 좋다고도 전해주었다. 아마 언니는 본인보다 아픈 엄마에게 은행알을 살짝 구워 날마다 줄 것이다.


언니가 차려준 밥상은 소박했다. 난 남의 집 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내심 좀 부담스러웠는데 소박한 밥상에 나온 고들빼기와 무우, 잘 곰삭혀진 북어국, 그리고 검은서리콩자반과 잘 구워진 조그만 굴비 두어 마리가 입에 너무도 찰지게 잘 들어왔다.

돌아가신 친정엄마 손맛과 거의 흡사한 맛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평생을 홀로 살아가는 언니가 이렇게 돌아가신 엄마 손맛을 낼 수는 없을터라 누가 만들었느냐고 물어봤다.

"어.. 매일 오는 요양보호사 엄마가 해 준 거야!"

요양보호사 엄마라는 분은 환갑이 넘은 할머니였지만 언니는 세상 모든 남녀 어르신들에게 언니와 오빠 아니면 엄마와 아버지라는 칭호로 통일해서 부른다. 듣는 사람이 참 좋아한다고 해서 나도 한 번 해보았는데 자연스럽게 잘 되지 않았다.

상대방 눈치를 다소 보고 살아가는 예민한 나와는 달리 암 수술을 받으며 죽음의 고비를 넘긴 언니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불가에 나오는 티없는 선재의 웃음을 나눈다.


"요양보호사면 언니 엄마만 돌봐야 하는 것 아닌가유? 목욕과 식사수발, 대·소변 등과 말벗 하는 것만도 하루 요양보호 시간이 빠듯할 터인데..."

"응! 맞아! 근데 요양보호사 엄마가 우리집에 와서 보니 요양보호할 엄마도 아프지만, 나도 지금 암투병 중이니깐 절로 자기 딸 집 돌보듯이 청소하고 빨래 등도 도와주다가 요새는 종종 밑반찬이랑 먹고 싶은 것도 잘 만들어줘. 여기 이 식혜하고 약밥도 주말에 연말이라고 만들어 주고 간 거야!"


인정있는 따스한 가슴들은 순간의 인정을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활속에 꾸준한  온정을 나누면서 살아간다. 언니집에 오는 요양보호사 급여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내가 일하는 곳 부설센터에서도 세 명의 요양보호사들이 일한다.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7시에 퇴근하는 2교대 요양보호사는 대략 140만원을 받고 여기서 보험료와 원천징수가 된다. 8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경우는 120만원 수준이고 3교대는 100만원 내외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시급으로 계산해서 매일 5시간 내외로 주 5일 일하는 수준이라면 60-80만원 수준이 되는 셈이니 그다지 넉넉하지 않다.

그런 넉넉하지 않은 요양보호사 일자리도 마음대로 구해지지 않는다고 들었다. 사방에 백만원 단위가 넘는 교육비를 받으며 교육을 하는 곳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동네마다 사설요양보호시설도 늘어나지만, 취직과 일정한 급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거의 계약직이고 임금을 떼여도 호소할 곳이 없는 또 하나의 일용직이 기하급수로 양산되는 것이다. 그런 불안정한 위치에 비례해서 가능한 덜 힘들게 돌보는 일을 골라서 하는 사람도 생긴다.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요양보호사 급여를 받고, 중증뇌졸증환자 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누가 시키거나 부탁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자기 집처럼 청소를 해주고 반찬도 만들어주며 한 식구처럼 그렇게 돕는 넉넉하고 푸근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이것이  바로 아직도 우리가 살아가는 따스하고 아름다운 서민 세상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일부이다.

나는 오랫만에 시중 검은 콩자반과 달리 한 숟갈 가득 떠서 입 안에 넣어도 고소하면서도 부드럽게 잘 씹히는 맛난 콩반찬과 알맞게 익어 입맛을 돋구는 고들빼기와 민들레무침, 그리고 우유빛색깔로 잘 우려낸 시원한 황태국으로 속을 따스히 채웠다.

그리고 길금가루가 잘 삭혀진 식혜를 먹으면서 지난 달에 무심결에 그냥 얼핏 보았던 요양보호사분의 얼굴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이 땅 모든 친정어머니들이 가진 너르고 따스한 가슴의 그 분에게 감사드렸다.

다시금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간다고 한 주말 오후였지만, 요양보호사분이 만들었다는 밑반찬인 검은 자반콩과 1리터 물통에 담아준 식혜는 마음을 그다지 춥지 않게 했다. 오히려 삭풍의 계절과 모진 시간들을 견디면 살아가게 하는 힘은 이렇게 아주 소박한 먹을거리에 담긴 정성들과 작은 것도 나누는 온정에서 솟아나는 것이 새삼 실감이 된다.
#나누는 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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