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유성호
- 올해 공중파에서 퇴출당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줄을 이었다.
"정작 당하는 사람은 (정치적 이유에서 퇴출당했다고) 인정을 안 한다. 여전히 자기 검열이 강하다. 윤도현도 그렇고 김제동도 그렇고. 구설에 휘말려봐야 힘들다고 생각한다. 제일 아쉬운 것이 '나 좌파야, 어쩔 건데' 그렇게 치고 나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야 논쟁이 붙고 발전하는데, 한쪽에서 '너 빨갱이지' 그러면 가만히 있는 거다. 미국에서 오프라 윈프리가 발언하는 것 봐라.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문화예술인은) 신해철 정도밖에 없다. 왜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얘기 못하냐."
- 예술인이 정치적이길 두려워하는 이유가 뭔가. "'정치적'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부감이 있다. 특정 정당 이해에 소속됐다는 의미로만 해석한다. 왜곡된 한국 역사와도 연관된 문제다. 해방 이후 조금이라도 정치적 색깔이 있는 예술가는 남에서든 북에서든 다 없앴고, 남은 건 찌질이 아니면 친일 세력이다. 그러니까 '예술은 고매하고 비정치적'이라고 예술가들이 스스로 선언하는 것이다.
일정 단계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문화예술인이 처음엔 주변 이야기를 표현하다가 소속된 사회의 부조리나 상상력을 얘기하게 되고, 대중의 지지를 얻으면 사회적 기여까지 한다. 한국에선 첫 단계부터 막혀 있으니까 만날 네가 날 사랑하는지 아닌지만 고민하는 것이다.
U2의 앨범 '원자폭탄 해체하는 법'은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다. 그렇다고 U2가 항상 전투적 노래만 하냐, 안 그렇다. 보편적 대중에 대한 사랑도 노래한다.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는 베트남전 당시 전쟁을 반대하는 가장 확실한 무기가 사랑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노래인데, 당시 최초로 위성 중계돼서 전 세계 시청자가 봤다."
"소속사가 못 나가게 한다? 뭘 위해서 예술 하나"- 잇따른 퇴출사건 이후 문화예술인들이 발언이나 활동을 조심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나."당장 노무현 추모 콘서트 끝나고 몇 달 뒤 노무현재단 창립 공연에서 참여하는 가수의 폭이 확 줄었다. 일단 자기 검열로 막혀 있고 소속사에 막혀 있고, (그런 공연에) 출연했다는 것만으로도 불이익 받는 게 현실로 드러나는데 결단하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스스로 항거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공연에 나가고 싶은데 소속사에서 못 나가게 한다'고 하는 친구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그게 예술인이 가질 태도인가. 그러면 뭘 위해 예술을 하냐. 예술인들이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기능인처럼 되어버리고 있다. 김구라 막말 논쟁도 참 여러 생각 들게 한다. 그가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 먹고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 지난 정권에서 독설로 캐릭터를 구축했다가 지금 와서 변화무쌍해졌다."
- 이유가 어쨌든, 공중파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대중을 만나는 게 도전이 될 수도 있겠다."윤도현씨 같은 경우, 가수가 자기 이름 걸고 프로그램 하는데 공중파에서 그 이상 보여줄 게 뭐 있나. 그런 상황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하차했는데, 새로운 미디어나 채널로 활동하는 것이 플러스 요인이 되고 본인도 즐거워한다. 해외 밴드들도 그런 활동을 많이 한다. 인터넷에서 윤도현밴드의 실험이 괜찮게 만들어질 수 있다."
- 노무현 추모 콘서트 연출자로서 죄책감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지금 마음은 어떤가? 콘서트 자체를 평가한다면?"사실 내가 미안할 건 없다. 탁현민 추모가 아니라 노무현 추모잖아. 가수들이 날 위해 나온 게 아니다. 결단을 요구한 게 미안한 거지.
콘서트는 되도록 많은 가수들이 참여하도록 해서 풍성하게 해보고 싶었다. 추모의 의미도 있고 잔치의 의미도 있고. 한국의 장례는 난장과 축제이기도 하지 않나. 한쪽에서는 분노나 슬픔도 표현하고, 여러 가수들이 모여서 버라이어티한 판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 의도는 구현됐다고 본다. 아쉬운 것은 제대로 된 헌정작품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연세대에서 (행사 불허로) 틀어지면서 DVD나 라이브앨범 같은 기록물을 못 만들고 끝났다는 거다."
- 한편으로는 용산참사나 콜트콜텍 사태 등에서 인디밴드들의 참여가 늘었다. '장기하와 얼굴들', 루시드 폴처럼 전형적인 민중가수가 아닌데 사회현실을 노래에 담는 경우도 많다. "'인디'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문화예술적 가치에서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다. 인디음악 하는 친구들이 신자유주의에 저항감 가지는 게 당연하다. 현장에서 노래한다거나 그런 주제로 음악활동 하는 것은 일견 당연하고 또 필요한 일이다. 제도권 내에서는 절대 그렇게 못하지.
고민인 것은 인디음악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미디어를 통해서 공중파로 입성하는 경우가 과연 가능할까 하는 거다. 그러면서 예술적 정체성도 유지하고. 그게 잘 안되더라. 미디어라는 게 자본보다 더 무섭다. 대중적이지 않은 것 때문에 인정받은 인디밴드가 미디어에서는 대중성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장기하가 여전히 홍대 주변에서 크게 못 벗어나는 이유가 있다. 앞으로 그가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새 앨범에 뭐가 담겨 있을까 가장 궁금하다."
"'빵꾸똥꾸'보다 위험한 이명박 대통령"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유성호
- '빵꾸똥꾸' 논란이 뜨겁다. 뿡뿡이까지 퇴출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최근의 문화 규제를 어떻게 보나."청소년보호위원회 음반 심의도 그렇고 (막말 3번 하면 하차하는) 3진아웃제도 그렇고, 원래 기득권 세력은 체제에 저항하는 기제를 차단하려고 한다. 최근 정부의 과도한 간섭도 그렇게 읽힌다. '빵꾸똥꾸'가 애들 정서에 얼마나 영향 끼치겠나. 오히려 청소년에게 가장 위해가 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다. 대놓고 약속 뒤집고 거짓말하고. 애들이 얼마나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느낄지 정말 걱정된다. '아, 뭘 해도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구나' 생각할 것이다.
정부나 국가가 놔두면 문화예술은 알아서 잘하거나 알아서 망가진다. G드래곤 공연 선정성 시비가 참 상징적 사건인데, 퍼포먼스에 대해 검찰이 수사한다는 게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 공연은 현장예술인데 녹취나 녹음으로 판단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 다른 한쪽에는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의 경찰 진압 옹호 논란이 있다."대중문화라는 게 강력한 힘이 있으니까 독이 될 수도 있고 득이 될 수도 있다. 반대편에서 적절하게 활용할 수도 있다. 대중이 문화를 통해서 강력하게 저항할 수도 있고 1980년대처럼 섹스·스포츠·스크린(3S) 같은 정책 펴면서 대중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 시청자들의 악플도 방송 윤리 규제의 근거로 얘기된다. 올해에는 2PM 박재범 퇴출사건이나 루저 파동이 있었다. "그렇다고 그런 의견을 규제하는 게 맞나, 아닌 것 같다. 규제하면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2PM 사건에서도 확인했지만, 우리 사회에 건강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 더 많다. 재범군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 근거 없는 악랄한 비난보다 표현되는 게 늦을 뿐이다."
- 현실은 우울하지만, 그래서 문화가 해볼만한 일도 많아 보인다. "대중예술의 역할은 끊임없이 부정하는 것이다. 모두 '예' 할 때 '아니다'고 말하는 상상력이다. 지금은 그게 막히고, 체제 순응적인 문화만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잘살기만 하면 되지 않냐'고 이명박 대통령 찍은 것 아니냐. '계약결혼'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던데, 지금쯤 '정말 행복한 결혼생활인가' 돌아볼 때다. 그렇게 생각하는 힘이 문화에서 나올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문화 캠페인이 있다면 져도 멋있게 질 수 있다. 선거도 문화판이 되어야 한다."
"두만강부터 낙동강까지, '강의 노래' 해보고 싶다"- 앞으로 뭘 기획해서 먹고살 생각인가. "사실 그동안 의미보다 재미를 추구했는데, 올해 5·18민주화운동 기념공연, 노무현 추모 콘서트 등 힘들고 돈 안 되는 공연만 했다. 이런 게 내가 할 일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 연출이나 창작의 뿌리는 68혁명에서 나왔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가서 3박4일 난장을 꼭 보고 싶다. 우드스탁은 당시 예술인들이 68혁명의 아니키즘 해방정신에 호응한 것이다. 한국에 락 페스티벌이 많아졌는데, 웃긴 게 모두 '한국의 우드스탁'을 표방한다. 다들 '젊음을 불사른다'고 하지만 왜 불사르나? 뭘 위해서? 만약 정말 '한국의 우드스탁'이라면 더 노골적인 정치적 선언을 해야 한다. '분단 해체' 정도는 말해야 한다. 거대한 퍼포먼스로 통일로를 지나서 철조망에 매달리는, 뭔가 거대하고 놀랍고 충격적인 공연, 그런 걸 정말 해보고 싶다.
그렇게까지는 불가능하지만, 내년에는 산발적 저항이라도 계속 하고 싶다. 꼭 현 정권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보편적인 관습과 체제에 대해서도. 우리 스태프들은 반대하지만,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 '강의 노래' 공연이라든지…. 우리나라 강마다 노래가 없는 곳이 없다. 두만강부터 낙동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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