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한 번 해주고 '고맙다'는 말 챙기는 남편

등록 2009.12.30 14:47수정 2009.12.3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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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동네 목사님 소개로 아내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두 번째 만난 날 자기는 허리가 약해 아기를 낳기 힘들다는(?) 말을 했습니다. 만난 지 두 번밖에 안 되었는데 처녀가 먼저 총각에게 허리가 약해 아기 낳기 힘들다는 말을 왜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한 번씩 묻는데 자신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를 셋이나 낳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쉽게 자연분만을 했습니다. 그리고 12년 동안 허리 아프다는 말을 잘 하지 않았는데 지난 주 월요일부터 허리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일어서기가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이면 낫겠지 하면서 넘어갔는데 지난 금요일에는 자꾸 아프다고 하는 아내를 그만 두고 볼 수 없어 병원에 갔습니다. 다행히 별 다른 것은 아니고 집안 일을 조금 덜 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집안 일을 좀 덜 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이 마음이 걸렸습니다. 그 말은 남편인 내가 집안 일을 해야 한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이 30년이 넘은 2층 슬레이트 집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은 춥습니다. 추위를 워낙 많이 타는 편이라 겨울에는 집안 일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내 허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어쩔 수 있나요. 설거지와 빨래, 청소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설거지를 하다보니 정말 허리가 아팠습니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남편이라고 한 두 번은 도와주면서 내 할 일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이를 하루에 3번 만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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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하는데 허리가 아팠습니다. 아내가 허리가 남아 나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김동수


"허리 정말 아프다. 당신 많이 힘들어겠다."
"그래도 옛날 싱크대보다는 훨씬 괜찮아요. 그 때 생각만하면."
"옛날 싱크대 때문에 고생한 것이 지금 와서 허리에 통증이 있는 것 아니에요?"

"벌써 8개월 전이에요."
"8개월 전이라도 이제 드러나는 것일 수 있잖아요. 원래 병이란 바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다가 발병하는 것 아니에요?"
"당신이 오늘만 설거지하지 말고, 자주 도와주면 좋겠어요."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추운 날씨에 당신이 고생하는 것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네요."


설거지를 끝내고 이제는 빨래입니다. 갑자기 옛날 자취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자취를 중학교 1학년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약 20년을 했는데 정말 자취만 생각하면 지긋지긋합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아내를 도와주는 것이 부족합니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으려고 하는데 아내가 놀라면서 세탁기에 넣지 말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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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세탁기에 돌리면 될 것을 왜 손빨래를 해야하는지 궁금했는데 아내가 하는 말 "세탁기에 돌릴 빨래가 있고, 손빨래 할 것이 따로 있다"고 했습니다. ⓒ 김동수


"아니 누가 '울' 제품을 세탁기 빨래를 해요?"
"그럼 추운데 세탁기로 빨래를 하지 무엇으로 빨래를 해요?"
"울 제품은 세탁기로 빨면 다 버립니다. 다 버려. 손빨래로 해야지."
"추운데 그만 세탁기에 돌리면 안 되나?"

"세탁기에 돌려 옷이 다 해지면 당신 사 줄 수 있어요?"
"그것은 아니고."
"울 제품은 손빨래도 힘을 주면 안 돼요. 부드럽게 빨아야지. 물에 헹굴 때도 세게 하면 안 되고, 부드럽게 헹구어야 해요."
"하필이면 울 빨래야."


첫날은 설거지와 빨래를 도와주니까 아내가 미안해서 그런지 설거지를 했습니다. 다행히 울빨래가 없어서 빨래는 세탁기에 돌렸습니다. 빨래를 다 한 후 아내는 허리가 아프다면서 빨래를 널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빨래를 널고 나니, 다 마른 빨래도 개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하니 어떻게 합니까. 빨래를 개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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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도 널어야 했습니다. ⓒ 김동수


"빨래하고, 빨래 널고, 빨래 개고. 이제 내가 도맡아 하네요."
"아니 어제하고, 오늘 좀 한 것 가지고. 도맡아 했다고 할 수 있어요."

"남편이 좀 도와주면 고맙다고 해요."
"그래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빨래한 것 가지고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괜히 쑥쓰러워졌습니다. 그 때 눈에 들어 온 것이 청소기입니다. 허리가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청소기를 샀는데 결혼 12년 만에 처음 산 청소기입니다. 오래되고, 차가 많이 다니는 길가 집이라 먼지가 많이 들어와 아내가 걸레를 한 번 훔칠 때마다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내는 이럴 때 청소기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는데 허리 아픈 선물로 청소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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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7만원 주고 청소기를 샀는데 결국 남편이 맡았습니다 ⓒ 김동수


"야, 청소기로 청소하니까 좋네."
"청소기로 먼지 한 번 털어내고, 걸레질을 하면 정말 편해요. 이불에 있는 먼지도 털 수 있어요."
"앞으로는 내가 이불 먼지를 털어야겠다."

"내 허리 때문에 당신이 사람이 조금씩 되어 갑니다."
"나 같은 남편 없지."
"그래요 당신 같은 남편 없지요."

자기를 한 번 도와주고 '고맙다'는 챙기는 못난 남편을 그래도 아내는 좋은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의 작은 배려에 감격합니다. 한 번 도와주고, 고맙다는 말 듣는 것보다 아내 허리가 빨리 낫는 것이 훨씬 좋은 일입니다. 오는 새해에도 아내가 건강하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허리가 안 아파도 당연히 집안 일을 같이 해야겠지요.
#아내 #설거지 #빨래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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