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독을 수리하자

웬수같은 자식, 마녀같은 엄마 (24)

등록 2009.12.30 15:10수정 2009.12.3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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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니는 자식을 둔 부모들 입장에서 가장 속 터질 일이 무엇일까. 아마도 자기 자식이 공부하지 않고 빈둥대는 꼬라지(?)일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를 학원으로, 독서실로 내몬다. 학교 다니는 자식들 입장에서 가장 속 터질 일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저 보기만 하면 공부하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해 대는 부모의 잔소리일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집밖으로 나돈다.

그렇다면 부모나 자식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가장 속 터질 일은 무엇일까. 아무리 돈을 들여 학원에 보내고, 공부하라고 잔소리해 대도 도무지 요지부동으로 꿈쩍도 않는 아이의 성적이지 않을까. 들인 돈이 얼만데 왜 성적이 안 오르는 거야. 내 자식은 정말 구제불능의 돌 머리인가. 자책과 한숨이 이어진다.

이런 상황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나름대로 한다고 열심히 공부했건만 아무리 해도 점수는 오르지 않고, 자신의 무능력함이 너무도 뼈저리게 와 닿는 순간, 죽고 싶을 뿐이다. 부모님 뵙기도 민망하고, 어찌 어찌 성적표를 숨기거나, 심한 경우에는 위조를 해서 불효자식의 굴레를 슬쩍 피해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나라는 인간에 대한 환멸과 동정 사이를 오락가락 하면서 삶에 대한 자신감만 상실해 간다.

도대체 왜 점수가 안 오르는 것일까. 물론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열심히 하는 데도 안 오르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필시 뭔가 다른 곡절이 있는 것이다. 그저 무작정 공부를 해대겠다고 덤벼 들 것이 아니라,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그 이치를 따져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왜 나는 안 되냐고 한탄만 할 게 아니라, 공부하는 당사자로서 자신의 공부 방식에 개선의 여지는 없는지 항상 반성하고 점검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 보고 공부 안 하냐고 윽박지르고, 왜 성적이 이 모양이냐고 인상만 구겨 댈 게 아니라, 정말 아이 성적이 그렇게 갑갑하다면, 그리고 아이 성적만 잘 나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로 갈망하는 것이라면 부모가 함께 공부에 동참해 볼 일이다. 왜 성적이 안 오르는지 이유를 알기 위해서 말이다. 그 정도의 진지함과 자기희생도 없으면서 아이 성적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과도한 욕심이 아닐까.  

우리 속담에 '깨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 일을 빗대어 이르는 말이다. 부모와 학생의 공통된 고민인 점수 따기(성적 올리기)와 딱 들어맞는 속담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이 바로 깨진 독에 물 붓는 상황과 딱 들어맞는다는 소리다. 깨진 독에 물을 채우는 방법을 알아내기만 한다면 아이의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방법도 자연스레 알게 되리라.

과연 깨진 독에 물을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무턱 대놓고 물만을 부어가지고서는 될 일이 아니다. 아무리 많은 물을 드럼통으로 가져다 부어댄다고 해도 깨진 독은 결코 차지 않는다. 처음에는 차오르는 것 같지만, 언젠가는 밑으로 다 새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물의 양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붓는 물의 양에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의 올바른 처방은 깨진 독을 때워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깨진 부분을 어떻게 해서든 막고 나서 물을 부어야만, 그 독에 -양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물이라는 것을 채울 수가 있다. 깨진 자리를 때우는 작업이 물 붓기 작업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일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공부하기가 '깨진 독에 물 붓기'라면, 일차적으로 할 작업은 공부라는 과업에서, 독의 깨진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적 올리기'라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아는 것이 많아진다는 소리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기가 모르고 있던 것을 찾아내서 그것을 아는 것으로 바꾸어 간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작업은 무엇이 모르는 것인지를 분별해 내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 시간을 늘여 투입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먼저 모르는 것을 찾는 게 우선이다. 모르는 것을 찾은 다음 그것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많은 아이들이 교사가 설명하고 풀어주는 것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넘어간다. 마치 교사의 설명이 자기의 지식으로 자동 전환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 공부는 교사가 한 것이지 학생 자신이 한 것은 아니다. 남이 푸는 것을 보는 것과 내가 풀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축구 경기를 관전하면서 하는 훈수 실력은 실제 축구 경기장에서 선수로 뛸 때의 실력과 무관하다.

교사의 설명은 교사의 것이지 학생의 것이 아니다. 자기 혼자서 해결하지 못한 것은 교사가 백 번을 풀어주어도 자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자기가 모르는 것에 해당된다. 즉 깨진 부분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독의 깨진 부분을 땜질하듯이, 복습이라는 방식을 통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학습해야 하는 것이다. 관전이 아니라 직접 내 손으로 풀 수 있도록 반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비로소 자기가 아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교사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자기 것이 된다고 믿어버리는 단순함 때문에 아이들은 자기 항아리의 깨진 부분(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분별해 내지 못한다. 그저 수업 시간에 교사가 풀이하는 과정을 진지하게 관전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자신의 실력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관전 실력으로는 점수가 올라가지 않는다. 유명한 축구 경기만 열심히 시청한 축구 선수가 실제 시합에서는 맥 못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 시험 문제를 받아들면 전혀 손도 못 쓰고 무능력하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무리 공부를 해도 성적은 제자리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자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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