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할아버지 변호사를 닮고 싶다

망년(忘年)

등록 2009.12.30 15:38수정 2009.12.3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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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술을 푸는 날이 많았던 해다. 올 초 새해 계획부터가 영 글러먹었다. 올 한해만 마무리하면 10년 변호사 생활을 꽉 채웠기에 무작정 변호사 일을 쉬겠다고 결심했다. 아무런 구체적 대안도 없었다. 변화도 발전도 없는 사무실의 답보 상태에 스스로 지쳐 버렸다.

 

정체를 극복할 힘도, 자신감도 원천적으로 샘솟지 않는 데 자신을 가두어 두는 것이 참으로 답답했다. 10년을 꽉 채울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그런데 변한 게 하나도 없다. 타성이 극복하기 어려운 중병이라는 차가운 현실이 거대한 벽처럼 서 있다.

 

술을 풀 수밖에 없는 무서운 세상, 더러운 세상이다. 술 푸는 내 귀에 들리는 세상의 민심이다. 술에 취해 세상을 뒤집어야 속이 후련해진다. 시국이 10년을 훌쩍 되돌아 퇴보하고 곳곳에 정체만 난무할 뿐 진전이 없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는 구호소리가 사뭇 진지하게 다가온다.

 

얻은 적도 없어 잃어버릴 것도 없는 입장에서는 시답잖게 들렸었다. 타령을 늘어놔 봤자 설거지, 청소나 할 신세에 불과할 뿐이라고 얕본 게 화근이었나 보다. 곳곳에서 패퇴할 뿐 승전보가 그닥 없다. 타올랐던 촛불은 어느새 원점이 되고 말았다. 시대를 초월하여 다시 피아를 구분케 하고 있다. 영 돌파구도 마뜩찮다. 되돌이표 노래를 불러야 할 참이다. 깔보았던 역량에 당하고 보니 자책과 타박만이 남았다.

 

스스로 진로에 대해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이 부족했다. 가야 할 머나먼 길에 대한 청사진 없이 무대포로 질렀다. 한참이나 걸어 나와 보니 빈 수레만 요란하다. 아무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누군가 끝까지 버티면 된다는 일리 있는 소리도 했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식이다. 무대포 정신으로 뚫고 나갈 국면이 아니다.

 

세상의 변화는 희망을 준다. 변화를 풀어낸 이들이 마냥 부럽다. 노쇠한 줄로만 알았던 오키나와 변호사들 사이에 몇 년 사이에 순식간에 젊은 변호사들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무기력한 모습을 보며 핀잔주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역전이 되었다. 변변찮은 사무실 하나 제대로 꾸려나가지 못하고 지쳐나가는 동안 그들은 묵묵히 사람들을 모았나 보다. 장기 침체의 나락에서 작은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며 우리를 놀라워하던 그들이 대국에 맞장을 뜨며 최전선에 후배들을 앞장세워 나가고 있다. 뜨뜻미지근했던 모습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비등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형국이다.

 

아뿔싸, 거기에 해답이 있었다. 침체와 나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작은 변화를 소중히 하며 거기에 인생을 걸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신과 똑같은 이상을 지향하는 후배들에게 길을 밝혀주고 있는 오키나와의 할아버지 변호사들을 닮고 싶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오키나와 주민들과 함께 한 그들의 모습이 큰 위안이 된다.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더 이상 소진하지 말아야겠다. 무기력에서 벗어나 일상의 작은 변화부터 만들어 나가고 싶다. 신명나는 세상을 향한 지름길이 분명하다. 새해 희망을 다듬어본다.

덧붙이는 글 |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09.12.30 15:38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인권연대 #인권 #장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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