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골 별미, 꼴도 보기 싫어 '꼴두국수'

등록 2009.12.31 11:43수정 2009.12.3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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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두국수 이 집의 대표적인 메뉴로 콧등치기와 비슷하다. ⓒ 김종길


"혼자인데 식사됩니까?"
"혼자라고 밥을 안 먹을 수는 없지요."

괜한 걱정을 한다는 투로 주인 할머니는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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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촬영 대한민국 모든 방송사에서 다녀갔을 정도로 유명한 식당이다. 주인 윤함구(72) 할아버지가 설명하고 있다. ⓒ 김종길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가장 힘든 점이 혼자서 식사하는 것이다. 길 떠난 지 10년이 넘었으니 익숙해질 법도 한데 식당을 들어설 때마다 잠시 주춤하는 것은 여전하다. 사실 혼자라고 식당에서 박대도 많이 받았다.

전라도의 어느 식당에서는 종업원이 혼자는 식사가 안 된다고 하더니 어깨에 걸려 있는 카메라를 본 주인이 갑자기 환대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에도 과하게 친절해진 주인이 부담스러웠다.

주인이 여행자에게 기대한 건 말을 안 해도 뻔한 것이었다. 심지어 밥값도 받지 않으려고 하는 상술에 식탁 위에 돈을 던져주고 부리나케 나와 버렸다. 물론 맛이 월등했음에도 그 식당에 대한 기사는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 후 맛집에 대한 기사를 한동안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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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두국수 꼴두국수는 메밀로 면발을 만든다. 보릿고개 시절 매일 메밀로 만든 국수만 먹었던 아이들이 ‘꼴보기 싫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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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두국수 토종 메밀 100%로 면발을 뽑아내고 매일 반죽하여 칼국수처럼 손으로 썰어 면을 삶는다. ⓒ 김종길


영월 주천면의 골목길에 있는 신일식당은 꼴두국수로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어떤 맛이기에 이리도 요란할까 싶어 식당을 찾았다. 생각보다 허름한 식당 내부에 놀랐지만 이내 정이 들었다. 식당은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윤함구(72)씨와 임덕자(63)씨였다. 종업원은 별도로 없고 주인 부부가 식당을 운영한다고 하였다. 3~4년 전만 해도 종업원이 있었는데 자주 바뀌는 통에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힘들지만 부부가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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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 이 집의 별미인 꼴두국수, 메밀막국수, 울창묵 등의 가격표가 소박하다. ⓒ 김종길


이 식당에서 소문난 것은 '꼴두국수'이다.


"국수 이름이 왜 꼴두국수이지요?"
"어릴 적 보릿고개 시절 하도 많이 먹어서 꼴두 보기 싫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지요."

여행자의 궁금증을 단박에 풀어 주는 할아버지의 답변이다. 이 일대에서는 다들 꼴두국수로 부른다고 하였다. 그래도 어디선가 먹어본 듯한 맛에 다시 물어 보았다.

"할아버지. 그럼 혹시 콧등치기국수와는 어떻게 다릅니까?"
"콧등치기국수가 바로 이 국수지요. 같은 건데 이쪽 지방에서만 꼴두국수로 부르니 이름만 다를 뿐이지요."

'아, 그랬었구나.'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물론 꼴두국수에는 감자옹심이가 없고 고명도 서로 약간은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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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내부 식당 안 방의 사방 벽은 손님들이 남긴 글로 빽빽하다. ⓒ 김종길


꼴두국수는 메밀로 면발을 만든다. 보릿고개 시절 매일 메밀로 만든 국수만 먹었던 아이들이 '꼴보기 싫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셈이다. 예전에는 주식이었던 이 국수를 지금은 식당에서 맛볼 수 있게 되었다.

토종 메밀 100%로 면발을 뽑아내고 매일 반죽하여 칼국수처럼 손으로 썰어 면을 삶는다. 육수는 무, 다시마, 멸치로 우려낸다고 하였다. 국수를 다 끓인 후 그 위에 고명으로 김, 참깨, 마늘 등을 얹는다.

제법 두툼한 감자와 두부도 올려져 있어 음식이 제법 푸짐하다. 메밀이 재료여서 면이 빨리 불어 서둘러 먹어야 한다. 소식을 하는 여행자에게는 약간 많은 양이었다. 면은 씹는 맛이 좋고 부드러웠으며 국물은 생각보다 얼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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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방명록이 무려 다섯 권이나 된다. ⓒ 김종길


식사를 다하고 나니 할아버지가 식당 이곳저곳을 소개하였다. 언론에만 20군데 이상 취재를 다녀갔다고 하는 할아버지의 표정에는 식당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식당의 보물을 보여주겠다고 하더니 족히 다섯 권은 되는 두툼한 공책을 가져왔다.

식당을 다녀간 사람들의 방명록이었다. 식당을 연 지가 20년이 넘었으니 그동안 왔다갔을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방명록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행자에게도 글을 남길 것을 부탁하여 악필이지만 어설프게 몇 자 적었다.

"방 한 번 구경하실래요?"라는 뜬금없는 제안에 방에 뭐 특별한 것이 있나하고 여겼는데 방안을 보는 순간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사방 벽면이 식당을 다녀간 사람들의 글로 빽빽이 도배가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천장도 보라고 은근히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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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소 김치를 넣어 직접 만든다. ⓒ 김종길


이 식당은 꼴두국수 외에도 여름에는 메밀막국수가 별미라고 하였다. 메밀반죽을 옛날식으로 솥뚜껑에서 얇게 부쳐 양념장에 찍어먹는 부침개와 멧옥수수로 만든 울창묵도 이 집의 별미라고 한다. 김치를 넣어 직접 만든다는 만두소를 보여주는 모습에서 음식에 대한 할아버지의 긍지를 알 수 있었다. 모든 음식에 조미료는 일체 쓰지 않으니 몸에도 좋을 거라는 말씀을 덧붙였다. 신일식당(033-372-7743)은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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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식당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 있다. ⓒ 김종길

#꼴두국수 #신일식당 #콧등치기 #울창묵 #메밀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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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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