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라며 걸려온 전화, 알고 보니 상술

나를 슬프게 하는 전화들

등록 2009.12.31 11:56수정 2010.01.01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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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시작입니다. 그간의 배려에 새삼 감사드리며 새해에는 더욱 행복한 한 해 되세요. ★(~.^)s★)

 

틀에 박힌 안부 문자메시지, 반가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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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박힌 문자메시지 내용 상대방이 내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고 고마워할지는 다시한번 생각해볼일이다. ⓒ 네이트온

▲ 틀에박힌 문자메시지 내용 상대방이 내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고 고마워할지는 다시한번 생각해볼일이다. ⓒ 네이트온

"너는 몇 통이나 받았어?"

"글쎄, 하도 많이 받아서...."

 

이른바 문자메시지 보내기 달인 범주에 속하는 '엄지족'이 연령층을 불문하고 늘어나면서 성탄절과 새해 안부인사를 간편한(?) 문자메시지로 대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통신회사나 포털사이트에서 수백건씩 무료로 제공하는 SMS서비스 덕분에, 이러한 문자메시지는 최근 가족이나 친구 범주를 넘어 동료, 거래처, 모임 등 대상이 무궁무진하게 늘고 있다.

 

하지만, 문자메시지의 홍수 속에 사는 상대방이 내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고 고마워할지는 글쎄....의문이다.

 

틀에 박힌 문구에 성의없는 문자는 받는 사람이 오히려 불쾌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나를 슬프게 한 '휴대폰'사건의 이모저모를 되돌아 본다.

 

#1.

 

"삐리리~!"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발신번호를 보니 02-XXXX-XXXX

 

'어? 모르는 번호네?'

 

일단 전화를 받는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주 상냥한 여인의 아름다운 목소리....

 

"안녕하세요? 김XX 고객님 되시죠... (대답할 틈도 없이) 여기는 XX카드 고객상담실인데요. (내가 어떻게 알아? 고객상담실인지.....) 저희 XX카드를 이용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리구요~...어쩌구 저쩌구(중략)...혹시 카드사용에 불편한 점은 없으셨구요?...앞으로도 많은 이용 바라는 차원에서 전화드렸구요...(이제 실상을 드러낸다)...이번에 최우수 고객분(특히 강조~!!)들만을 대상으로 XX보험과 제휴하여 한달 1만원선으로 최고 1억지급에 15가지 질병뿐만 아니라.......(후략)..."

 

이와 비슷한 전화는 카드사 백화점 홈쇼핑 할인카드회사 등등 수없이 걸려온다.

 

게다가 쉴새없이 들어오는 정체불명의 문자메시지....

 

"XX카드 김XX님, 오늘은 결재일입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1588-XXXX"

"<대출정보센터>전화 한 통으로 무보증 즉시 대출가능 1566-XXXX"

"비오는 날씨, 안전운행 바라며 보람찬 하루 되시길/XX자동차 XXX드림"

"현재 포인트 5XXX점, 포인트로 쇼핑하세요 www. XXXX .com"

 

그나마 이런 일들은 대처만 잘하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가볍고(?) 사소한 일에 속한다.

 

#2.

 

나를 정말 슬프게 한 전화는 바로 이것이었다. 휴대폰 벨이 두 번 울리더니 이내 끊어졌다.

02-2XXXX-XXXX.

 

'어? 어디지?? 모르는 번혼데.... 에이, 자기가 필요하면 전화하겠지...'

 

몇시간 후 다시 똑같은 번호로 휴대폰이 한 번 울리더니 또 끊어졌다. 호기심이 발동....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봤다.

 

상대방 남자 : (목소리를 깔며) "여보세요..."

나 : "전화가 두 번이나 들어와서 전화드렸는데요...."

상대방남자 : (역시 목소리를 깔며) "혹시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시나요?"

나 : 011-XXXX-6102 (친절히 또박또박 알려줌)

(서류 뒤적이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상대방남자 : "아...김XX씨 되시죠? (아주 반가운 듯) XX고등학교 나오셨죠?"

나 : (놀라서) "아... 네 맞는데요"

상대방남자 : (당차게) "혹시 몇회죠?"

나 : (당황하여...) "저 36횐데요..."

상대방남자 : "아... 나 XX일보사 부장으로 있는 31회 박XX라고 하는데..... 동창회 주소록 보고 전화했는데, 맞게 전화했나 보네"

나 : (더욱 당황해서) "아, 네 반갑습니다. 선배님"

상대방남자 : (갑자기 반말로) "사는 건 어때? 결혼은 했고? (어쩌구 저쩌구)......(중략) 자네동기들 거의 서울 있던데....혹시 동기중에 치과하는 박XX 자주 연락하나(모르는 친군데 -_-;) 또 방송국있는 서XX 알지?(헉! 몰라요....) 그 친군 자주 만나고 있어. 며칠 전에는 고향 내려가서 시청 간부로 있는 김XX와 만났는데 아주 반갑더군, 자네 시청간부로 있는 김XX 선배 알지?(그분도 몰라요 -_-;) 자네 동문회 통 안나오는군... 살기 바쁘겠지만 동문회도 좀 신경 좀 쓰고 그래.....(후략)"

나 : (난감...) "예....." 

상대방남자 : (위엄있게) "아.. 다름이 아니라 참 신문사 부장생활도 참 힘들군.. 기사 쓰고 취재로 바쁘지만 이 자리 지키려니 회사 눈치도 봐야 하니 원.... 자네, 우리회사 자매지인 시사주간지 XXXXX 자주 보지?(안보는데요 -_-; 흑흑, 그러나 가끔 보고 있다고 대답하고 말았다)....(지금부터는 대답할 틈도 없이 아주 빠르게 말을 하는 상대방)...부장급들은 정기구독자 일정량을 할당받았는데 내가 이번에 승진케이스라서 500부를 할당받았다네... 그나마 동창회에서 많이 도와줘서 한 450부 정도는 처리했는데 아직 50부 정도가 남아서 참 힘들군... 동창 좋은 게 뭔가? 얼마 안되는 돈이니까 자네가 도와줄 거라 생각해... 주소좀 불러주게나....(헉, 한다고 말도 안했는데 주소까지?)....."

나 : (침묵+냉정...) "선배님, 저 지금 다른 시사주간지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도와드리기가 좀 힘들 것 같습니다...(어쩌구 저쩌구)....(후략)"

상대방남자 : (태도 돌변) "동창 좋다는 게 뭔가.....(어쩌구 저쩌구)...(후략)"

(이후 약5분간 실랑이) => 결국 거절 후 통화끝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통화할 때는 그저 선배가 전화하여 부탁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끊고보니 여러모로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 듯 했다.

 

-전화후 벨이 울리게 한 후 바로 끊어 호기심을 유발한 점(하루 종일 그런 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걸어도 통화비 안들이고 전화를 오게 했다?)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 누군지 모르고 핸드폰 번호를 재차 물어본 점(전화를 얼마나 많이 했으면 누구인지도 모르는지...)

-동창회 주소록에서 전화번호를 알았다.(저.. 고등학교 동창회 한 번도 안나갔거든요? 아마 주소록 리스트에도 없을듯...)

-입장을 바꿔서 내가 임의로 전화를 걸어 아무에게나 어느 고등학교 몇 회 졸업생인지 대뜸 물어본후 내가 선배라고 한다면? (선밴지 후밴지 그걸 어떻게 믿지?)

-혹시 연락 하느냐고 이름을 댄 다수의 사람들은 실존인물인가?(알게 뭐여..)

-결론 : 기가 막힌 사기인가? 어려움에 빠진 선배의 간곡한 부탁인가? 판단은 자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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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메시지 발송제한 '네이트온'의 팜업공지는 성탄이나 연말에 문자메시지 발송이 얼마나 넘치는지 쉽게 알수있는 대목이다. ⓒ 네이트온

▲ 문자메시지 발송제한 '네이트온'의 팜업공지는 성탄이나 연말에 문자메시지 발송이 얼마나 넘치는지 쉽게 알수있는 대목이다. ⓒ 네이트온

모르는 아주머니(나이가 많으신)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응, XX맞지? 호호호... 나 자네 어머니하고 아주 친한 친구네... 오늘 집에 놀러갔더니 자네 전화번호 알려줘서 전화한 거야..... 응,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늘그막에도 아직 일을 하고 있다네. 먹고 살려고 하니까 쉽지가 않네. 자동차보험하고 있는데 자네들이 도와줘야 우리 부모들이 힘을 내지. 안그래? 차 번호만 좀 알려줘봐... 오늘 영업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로 실적과 무관하게 차량번호를 몇십 개 적어서 제출해야 하는데 다른 걱정 말고 차 번호만 불러주면 돼....(나, 무심코 불러준다) 응, 고맙네... 건강히 잘 있어."

 

그 일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약 두 달 후...다시 그 분에게 전화가 왔다.     

 

"응, 잘 지냈나? 다음 달에 자동차보험 만기 맞지? 그래서 내가 미리 보험 들어놨거든? 자네 어머님이 내 말이라면 꼭 들어줄거라고 해서 내가 그냥 미리 계약해놨어. 호호호...(후략)..."

"컥...."

 

그리하여 그 해 뿐만 아니라 그 다음 해까지, 보험만기 한 달 이상 전부터 미리 보험을 계약해놓는 바람에 그분에게 보험을 들어주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우연한 기회에 어머님께 여쭈었다.

 

나 : "엄마, 친구분 중에 이XX 알죠?"

어머님 : "누구? 모르겠는데.... 아~... 이XX!!!... 친구는 무슨.... 그냥 찜질방 가서 몇 번 봤는데... 그런데 왜?"

나 :  ".........(중략)"

 

알고 보니 영업활동하려면 전화번호가 많이 필요하다고 해서 무심코 불러줬단다.

 

휴대폰 벨이 한 번 울리고 끊어진다. 사람 심리상 '누가 전화해서 끊었을까' '어? 전화가 와 있었네?' 하고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결국 다시 전화를 해 보고 만다. 어떤 번호는 전화를 거는 순간 요금이 몇백 원부터 시작한다고 하는데....무단으로 시도 때도 없이 야릇한 단어(오빠....오늘 한가해요?) 등 문자로 유혹하는 것은 그나마 애교(?)에 속한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전화를 이용하여 돈을 벌려는 사람들. 그것도 모자라 혈연 지연 학연을 악용하는 전화사기의 달인들. 혈연 지연 학연은 가족 친밀성을 넓히고 공동체적 신뢰를 강화하는데 쓰여야 함에도, 기발한 마케팅과 사기성 상술의 일환으로 쓰여짐이... 정말

 

나/를/슬/프/게/한/다....

 

업자 여러분!

상대방이 당신의 친구, 형제, 부모, 자녀들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하는지요?

새해에는 전화 업자 여러분들도 복 많이 받으시고, 우리를 기쁘게 해주세요!

2009.12.31 11:56 ⓒ 2010 OhmyNews
#원링 #전화사기 #문자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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