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금이 1억인데... 이사비용 300만원에 떠나라니

삶의 터전 강탈당한 소설가 유채림... 용산참사는 진행형

등록 2009.12.31 21:19수정 2010.01.0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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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철거 두리반 식당 뒷편 건물이 철거 중에 있다. 두리반 식당도 언제 철거될지 촉각을 다투고 있는 현실이다. ⓒ 김민수


지난 22일, 송년회를 겸하여 지인들과 '두리반'이라는 식당에서 저녁모임을 가졌었다. '두리반'이란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크고 둥근 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두리반은 소설가 유채림과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그리고 성탄전야 24일, 30여 명의 철거용역이 동원되어 여자들만 있던 식당에 들이닥쳐 닥치는 대로 집기를 들어낸 다음 식당을 철판으로 둘러싸서 막아버렸다.

홍대입구역 4번 출구에서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재개발 시행사인 남전디앤씨와 시공사 GS건설이 개발을 위해 철거를 진행하는 곳이 있다. 그곳에는 건설사 측의 회유와 협박에 응하지 않은 점포 서너 개가 위태롭게 남아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으며, 두리반 식당도 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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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철거 집기를 전부 강제로 빼앗긴 두리반 식당 내부 벽에 지인들이 남긴 낙서 ⓒ 김민수


식당이 있는 주변 지역으로 경전철이 지나가기로 되었다. 그러자 주변 땅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고 건물주는 10배가 넘은 시세차익을 남기고 시행사 측에 건물을 팔아 버렸다. 세입자와의 문제는 시행사 측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식당을 차리기 위해 든 권리금만 1억, 그러나 현재 권리금은 고사하고 시설비, 보증금도 없이 이사비용 300만 원을 줄 터이니 당장 떠나라고 한다.

이런저런 법 조항을 들먹이고, 법적인 절차를 거쳐 시행사 측은 이미 자신들의 재개발사업을 위한 강제철거를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어놓았고, 새로 건물을 지으면 그곳에서 다시 장사를 하게 해달라는 소박한 요구를 뭉개버린 채, 엄동설한에 가난한 세입자들을 거리로 내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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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철거 두리반 식당의 인기 메뉴였던 얼큰이만두 등 매뉴가 낙서되어있다. ⓒ 김민수


30일(수) 오후, 전기마저 끊겨버린 식당 안에서 스티로폼을 깔고 엄동 추위와 맞서가며 농성을 하는 소설가 유채림씨의 가족을 만났다. 얼마 전 식당에서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했었건만, 집기들은 철거용역들에 의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식당에는 촛불이 어둠을 사르고 있었다. 담장과 식당 벽에는 그를 지지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온 지인들이 써놓은 글귀들이 빼곡하다.

식당 뒤편 건물은 철거 중이었으며, 아직도 영업을 하는 도로변 상가 몇몇도 머지않아 철거를 피하지 못할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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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철거 철거를 위해 시공사 측에서 막아놓은 철판, 그 철판에 항의성 글들이 적혀있다. ⓒ 김민수


그나마 소설가 유채림은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인천작가회의 지회장으로, 그동안의 사회활동과 폭넓은 인간관계로 마음을 함께 하는 지인들이 있다. 그러나 보통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림도 없을 이야기다. 가난한 이들은 시행사 측의 회유와 협박, 철거용역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뉴스에서는 용산참사가 345일 만에 풀렸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용산참사를 교훈 삼아 재개발사업을 할 때 철거민들의 생계보장을 하고 다시는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정부 측 입장발표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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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철거 땅주인과 세입자의 차이, 가난한 자와 부자의 차이는 이렇게도 크다. ⓒ 김민수


그러나 그 뉴스를 들으며 헛헛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제2, 제3의 용산은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엄동설한에 철거하는 모양새도, 철거용역을 동원해서 강제로 집행하는 것도, 세입자들의 최소한 요구도 뭉개버리는 모양새도, 남아있는 세입자들이 돈을 더 많이 받으려는 불순한 의도로 협조하지 않는다는 유언비어를 날조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자행된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용산참사보다도 더 무서운 살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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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함께 우로부터 세번째가 소설가 유채림, 직장 동료와 지인들이 함께 농성을 지지하며 위로하는 예배를 드렸다. ⓒ 김민수


용산에서와 똑같이 야만스러운 일들이 여전히 진행형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 야만스러운 폭력 앞에서도 기적같이 용산처럼 사람이 죽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용산참사도 만일 인명피해가 없이 철거용역과 경찰의 진압으로 철거가 진행되었다면 지금쯤은 다 잊혔을 것이다.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야만 비로소 자신들이 얼마나 야만적인 행동을 했으며, 가난한 자들을 무자비하게 거리로 내몰았는지를 깨닫는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큰 비극이다. 345일 만에 타결되었다는 용산참사도 일 년 가까운 싸움 끝에 얻어낸 절반의 승리인데, 그냥 잊혀버릴 가능성이 농후한 일의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오늘 이 야만의 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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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철거 철거는 가장 야만스러운 자본의 폭력이다! ⓒ 김민수


12월 28일,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인천작가회의는 "유채림 소설가의 삶터, 두리반 식당을 빼앗지 마라"는 성명서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작가들의 이름으로 말한다. 가난한 자들을 더 이상 짓밟지 마라! 기어이 또 다른 용산참사를 일으킬 셈이 아니라면, 세입자의 생존권을 존중하라! 아무리 개발이 가져다 줄 이익에 눈이 멀었다 해도 어찌 안온한 가정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죄악을 저지른단 말인가! 새행사와 시공사는 당장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눈으로 자신을 살펴보고 이웃을 돌아보라! 그리고 지금 당장 소설가 유채림씨의 가족의 소중한 삶터 '두리반'을 돌려주어라!

재개발 시행사 남전디앤씨와 시공사 GS건설은 이러한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귀를 막는다면 정부 측에서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야 할 것이다. 곳곳에서 용산과 다르지 않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나 몰라!' 하는 것은 직무유기며, 직무유기를 밥 먹듯이 하는 정권은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 용산참사 345일 만에 타결이라지만 여전히 용산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형이다.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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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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