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쓰기 스승은 초딩 딸내미

[Oh my 글쓰기 6] 뻔뻔스럽게 글쓰기

등록 2009.12.31 12:27수정 2009.12.31 12:2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막상 자기 삶을 글로 써놓고 보니 이게 글인가 싶어 어디 내놓을 수가 없다. 글이란 꼭 누구를 보여주려고 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콩 한 톨도 나눠먹으라고 했는데, 자기 삶을 나누지 못할 일이 있겠는가.

 

글 잘 쓰는 방법은 따로 없다. 쓰는 것도 용기지만 쓰고 나서는 그 글을 남에게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쓰는 용기는 자신감이지만 보여주는 용기는 자신감에다가 뻔뻔스러움이 더해져야 한다. 어디 묵묵히 일만 하던 사람이 정치인도 아닌데 이 뻔뻔스럽게 글을 내놓는 일이 쉬운가. 하지만 어쩌랴. 뻔뻔해지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는데.

 

경남 함안의 산골마을에 살 때다. 이웃에 함께 농사를 짓던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 집에 가보면 문학전집이 가득 꽂혀 있다. 충청도 산골에서 자란 이 친구는 중학교를 마치고는 집을 떠나 산업체학교가 있는 마산의 한 회사에 취직하여 주경야독을 하였다. 방직공장에서 실을 뽑으면서 문학소녀의 꿈을 접지 않았다. 공장을 다니면서 방송통신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결혼 후에는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그 꿈을 접지 않았다. 농사를 지으며 생긴 일이며, 때론 이웃 할머니들과 고구마를 먹으며 나눈 이야기를 남몰래 공책에 꼬박꼬박 적었다.

 

글을 한 번 보자면 늘 감추곤 했다. 글을 써달라고 해도 내가 무슨 글이냐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날마다 쓰잖아! 하며 따지면 남에게 보여줄 정도가 아니라 한다. 보여줄 정도라는 기준이 어디 있느냐 물으면 "부끄러워서……"라며 말끝을 감춘다. 충청도 순박한 산골 출신 아니랄까봐 글쓰기에서도 그대로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뻔뻔함이 지나칠 정도다. 나는 글 한 꼭지라도 쓰면 온갖 호들갑을 떨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여준다. 또 글 좀 쓸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발목을 붙들고 귀찮게 한다.

 

나는 참 좋은 사람이 옆에 있었다. 한 사람은 김해화라고 초등학교 마치고 평생 막일을 해서 몸의 뼈가 비 맞은 철근처럼 녹이 줄줄 흐르는 노동자이자 시인이다. 형이 공사장에서 산업재해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나는 새로 글을 쓰면 들고 병원으로 달려가 환자의 깁스한 발을 붙잡고 평을 해달라고 했다. 병원 앞 잔디밭에 앉아 소주에다 가나 초콜릿을 안주 삼아 먹으며 내 글에 대한 이야기를 별이 깜박깜박 졸 때까지 들었다. 또 한 사람은 서정홍인데, 지금은 경남 합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이자 시인이다. 마찬가지로 집에 원고 뭉치를 들고 쳐들어가 밤새 귀찮게 했다.

 

경남 함안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때는 초등학교 1학년인 내 딸을 불러다 무릎 앞에 앉히고 글을 읽어주었다. "무슨 말인 줄 알아?", "재미있어?" 하며 딸의 충고를 들으며 내 글을 다듬었다.

 

가장 나를 잘 아는 사람에게 내 글을 읽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고, 스스럼없이 꼬집어 줄 수 있고, 내게 "이걸 글이라고 썼나?"라는 말을 해도 원수지거나 갈라질 염려가 없는 사람. 꼭 그 사람이 글을 잘 쓰는 사람일 필요도 없다.

 

포털 사이트에 자신의 까페나 블로그를 만들어 올리는 방법도 좋다. 그곳에 벗이나 친지들을 불러 읽게 한다. 혹 가슴에 상처가 남는 사이버 테러를 당할까 걱정마라. 유명인이 아닌 이상 당신이 올리는 게시판에는 일단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만이 올 테니까.

 

물론 이곳에서 글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나 빨간 색연필을 그으며 글을 고쳐주는 사람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쓴 글 가운데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는 알 수가 있다. 형식적인 인사들이 댓글로 달리지만 그 가운데 "이 글이 당신의 매력을 가장 잘 살린 좋은 글이다'"라는 의미가 담긴 댓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을 보다보면 내가 어떻게 글을 써야 되는가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이것도 자신이 없다. 그러면 별 수 없다. 이건 뒤에 말을 하려고 아껴둔 것인데, 여기서 잠깐만 소개하자. 다들 잠든 밤, 자신이 쓴 글을 들고 조용히 뒷간으로 간다. 물론 십오촉 전구라도 달려있는 뒷간이어야 한다. 그곳에 쪼그려 앉아 아주 조용히 자신에게 그 글을 읽어 준다. 내 글의 첫 독자를 나로 만드는 것이다. 반드시 눈으로 글자를 읽지 말고, 자신에게 속삭이듯(너무 큰 목소리도 안 된다)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소리가 가슴속으로 들려올 것이다.

2009.12.31 12:27 ⓒ 2009 OhmyNews
#글쓰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니, 소파가 왜 강가에... 섬진강 갔다 놀랐습니다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배달하다 숨진 26살 청년, 하루 뒤에 온 충격 메일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