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레넌, 김민기 그리고 박은석

박은석을 '올해의 칼럼니스트'로 추천한다

등록 2009.12.31 17:43수정 2009.12.3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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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박은석은 태준식 감독의 <필승 연영석 ver. 2.0>을 스쳐지나간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인 그가 수상자인 연영석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건네는 장면이다. 그것이 인사치레로 들리지 않는다. 올해 그가 <한겨레>에 연재 중인 '세상을 바꾼 노래'를 꾸준히 읽은 사람이라면 그럴 것이다. 박은석은 아티스츠 유나이티드 어게인스트 아파르트헤이트의 <선 시티>(1985)를 소개하며 "'선 시티'에 참여했던 49명 뮤지션의 면면을 통해, 역사의 반동에 임하는 이 나라의 대중음악 스타들을 다시 생각하며 2009년 말미를 갈무리"하였다.

'세상을 바꾼 노래'는 말 그대로 세상을 바꾼 노래들을 소재로 삼는다. '바꾼'에서 풍기는 과거형 늬앙스는 올드팝 팬들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하지만 그것 뿐만은 아니다. 예전 일제시대 독립운동사에 접근했던 이들이 '독립된 오늘'을 믿지 않고 변혁투쟁에 나섰듯, 박은석은 세상을 바꾼 노래들을 글에 담아 세상을 개선하려 힘쓰고, 그럼으로써 오랫동안 유리되었던, 근래에는 서로 닿을 듯 말 듯 했던 문화적 신선함과 정치적 올바름을 연결짓는다. 연영석이나 블랙홀의 노래처럼 말이다. 

삽을 든 '빅 브라더'와 '사상경찰'이 '1984'년쯤에나 가능했던 방법으로 그들만의 '멋진 신세계'를 건설한다며 텔레비전을 볼모 삼으려는 지금,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은 시민적 의무와 다르지 않다.
- 길 스콧-헤론의 <더 레볼루션 윌 낫 비 텔리바이즈드> (1971년)

생각건대, 언론소비자 주권 운동이 범법행위 취급을 받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이 심대한 위협을 받는 지금 여기의 상황은 이 노래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함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 엑스레이 스펙스의 <오 본디지, 업 유어스!>(1977)

역설적으로, 이 노래를 정치/자본/언론 권력에 대해 우리가 견지해야 할 태도의 지침이라고 의도적으로 오역한들 이제 궤변이라고 할 일은 아니다.
- 폴리스의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1983년)

박은석의 음악평론에 녹아든 현실 비평은 추상적 거대담론이 아니다. 그의 화살이나 과녁은 분명하다. "평범한 영웅의 위대한 도전을 허망하게 쫓아버린 우리의 실패를 기억할 일이다." 이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본 투 런>(1975년) 리뷰의 마지막 문장이었으며 게재 시점은 6월초였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바의 <댄싱 퀸>(1976년)을 다루며 이렇게도 썼다. "'댄싱 퀸'은 무엇보다 절충적 실용성의 승리였다. 요즘 우리 곁을 떠도는 일방적 실용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한편 스페셜스의 <고스트 타운>(1981년)에서는 초입부에서부터 경제위기로 인해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 역사의 심판대로 소환되었다고 역설하는가 하면, 마지막에는 "행복도시라는 아이러니한 약칭 탓에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세종시 계획의 분열상에서 21세기 대한민국에 나타날지도 모를 유령도시를 떠올린다면 이 노래는 안성맞춤의 사운드트랙"이라고 추천한다.

그때 거기부터 지금 여기까지,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이념의 차이를 빌미로 재앙의 위험을 외면하는 정치 권력의 비인간성이다.
- 밴드 에이드의 <두 데이 노 이츠 크리스마스?>(1984년)

용산 참사, 촛불 진압, 그리고 법치를 빙자한 일련의 폭력적 조치들 속에서 '피의 일요일'을 살고 있는 우리의 상황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그래서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더 이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일까? 얼마나 더 이 노래를 부르며 각성해야 하는 것일까?
- 유투의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1983년)

박은석이 한국의 음악평단을 이끈 장본인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매주 연재하는 이 짧은 칼럼에도 그의 열렬한 음악애호와 꼼꼼한 조사연구의 자취가 숨어 있음은 이제 별스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읽고 나서 항상 노리에 또렷이 남은 건 문화창작이, 그중에서도 현실정치와는 거리가 멀 법한 음악평론이 이렇게 정치적이고 선동적일 수도 있느냐는 경탄이다. 따지고 보면 이 칼럼의 선배는 꽤 있다. 만화 <20세기 소년>에서 도탄에 빠진 인류를 일으켜 세우는 주인공 켄지의 노래 <밥 레넌>, 뜻하지 않게 거리의 노래가 된 김민기의 <아침이슬> 등이 그렇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박은석은 활자로 노래한다는 것이다. 방송출연으로 친숙했던 평론가는 오늘, 스러져가는 활자로 침체에 빠진 음악을 이야기한다.

인생을 바꾼 음악이 있고, 음악에 건 인생이 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음악이 넘쳐나지만 정작 그것을 느끼고 감사하는 법은 망각해버린 시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무엇이다. 음악은 그렇게 우리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건지 모른다.
돈 매클린의 <아메리칸 파이>(1972년)

2008년 말 그는 킹 크림슨의 <트웬티 퍼스트 센추리 스키초이드 맨>(1969)의 표지 얼굴이 "가진 자의 물욕이 초래한 경제 한파와 성장 만능의 구태의연한 발상이 자초한 사회 분열이란 안팎의 위기를 살아야 했던, 올해 2008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에 다름 아니"라고 썼다. 2008년을 2009년으로 바꾸어 읽어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지난해와 달리 변변한 저항조차 못하고 세밑에 다다른 처지에 이른 이 시민의 귀에는 그 문장이 더욱 우렁차게 울린다. 박은석을 2009년 '올해의 칼럼니스트'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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