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의 원시적 상상력, 그 야성의 소리

등록 2010.01.31 16:25수정 2010.02.06 19:46
0
원고료로 응원
1. 배경이 좁은 그녀

그녀에게선 늘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듯한' 돌연성이 느껴진다. 어느 모임에서고 거기서 만났다는 말보다는 그녀가 거기에 '나타났다'는 표현을 나는 늘 해 왔다. 배경을 한 겹 뒤로 젖히며 중심으로 돌진해오는 듯한 씩씩한 행진식 걸음 때문이었을까? 그녀가 거기에 나타나면 그때까지 존재했던 모든 배경이 일시에 물러나고, 그 자리엔 그녀가 입고 있는 검은 바바리코트 자락만 펄럭이고 있음을 나는 보았다. 호탕한 목소리에 큰 몸짓, 깊은 밤도 그녀 앞에서는 대낮처럼 깨었고 우리는 모두 그녀를 돌출시킨 배경에 불과했다. 그녀는 야성의 싱싱한 바람이었다.


그녀는 '무리 지어' 다니지 않는다. 시인협회에서 주최하는 세미나나 야유회 등에서도 그녀는 거의 혼자이며 그런 만큼 가볍고 경쾌하다. 아무나와 어울릴 수 있되 아무나와의 끈끈하다 못해 축축한 유대는 단호히 거부하는 생생한 자유로움을 가지고 있다. 길들여지지도 않고 길들이지도 않는 그녀의 원시적 상상력은 그런 그녀의 행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것은 그녀를 홀로 있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녀는 말한다.
"나의 언어는 지고지순한 처녀이거나 잘난 지식인 여성을 원하지 않는다. 나의 언어는 포르노나 음흉한 악녀를 꿈꾸며 낯설고 버르장머리 없는 무법자가 되어 언제나 불새처럼 날고 싶다." (시집 <남자를 위하여> 시작노트 중에서)

우리는 시를 읽으면서 고상한 충고조의 잠언이나 입적을 앞둔 노스님의 훈계를 원하지 않는다. 풍요로운 그 무엇, 상상력의 비상, 한 예술가의 야생의 혼을 세례받기를 꿈꿀 뿐이다. 예술이란 그런 게 아닌가. '기술'이 아닌 저 아득한 원시성, 그 태고의 목소리에서 우러나오는 신비한 힘. 99프로의 노력으로도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1프로의 그 무엇! 문정희의 시에는 분명 그것이 있다.

이 글은 문정희 시에 나타난 건강하고 솔직한 소리, 가공되지 않은 원시적 상상력에서 뿜어 나오는 야생의 목소리를 추적해봄으로써 그것이 그녀 시의 중요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관능에 어떤 식으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언어의 적극적 사용이 얼마만큼의 상상의 확대를 가져오는지를 알아보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하겠다. 오독에 대한 불안은 없을 수 없으나, 어차피 시의 해독이란 '오독'의 연속임을 시인은 물론이고 평자들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2. 저돌성과 안정감, 양날의 조화


그녀의 시가 잘 읽힌다는 것은 모든 평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녀가 구사하는 언어는 무엇보다도 나른하지 않다. 젊은 시절에 대한 뼈아픈 동경조차도 그녀에게 오면 스펀지 같은 탄력을 갖는다. 쓸쓸한 반성조의 고백 풍이 주는 나른함 대신 "사랑에 은퇴하고/ 가을 하늘처럼 투명해지면/ 터키석 반지 하나 사고 싶다"(시 <터키석 반지>중에서)고 자신을 추스르는 힘으로 역이용하는 것이다. 아들 장가 보낸다고 청첩장을 건네는 친구에게 "내가 시집가도 시원찮을/ 이 청명한 계절"(시 <중년>중에서)이라면서 눈을 흘기고, 폐경조차도 "그런데 이제 와서/ 이 무슨 뜻하지 않은/ 해탈이냐? 해방이냐?"(시 <나목을 위하여>)라며 늦게 온 손님을 나무라듯 두려움 없이 받아들인다.

그녀의 시에는 여성 시인들이 사용을 꺼리는 시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막힌 배열과 타고난 감각 조율로 또 하나의 카타르시스를 생산해낸다. "황홀하게 몰락"(시 <백수광부의 아내>중에서)한 "몰상식한 정부"(시 <고흐 씨와의 데이트>중에서)는 교양과 제도에 편입된 현대 사회 여성들의 숨어 있는 원초적 본능을 일깨우는 꿈으로 작용한다. "항문"(시 학문을 닦으며>중에서)이란 가장 본능적인 배설 쾌락의 일차적 통로다. 문정희에게 있어 시란 삶을 흡수하고 또 흡수된 삶을 배설하는 가장 솔직한 통로, 즉 '항문'인 셈이다.


화폭 같은 까마귀 떼와
마녀 같은 해바라기들 속에 숨어
나는 그 남자의 몰상식한 정부가 되었다
           시<고흐 씨와의 데이트>중에서

나는 그동안 확실히 학문보다
항문을 더 열심히 닦고 살았어
그래서 세상이 더 깨끗해진 것도 아니야
실제로 길 하나 따로 내지 못했어
달맞이꽃 하나 새로 피우지 못했어
           시<학문을 닦으며> 중에서

문정희는 결핍이나 열등에게 당당하게 저항하며 반역한다. 그리고 반역과 위반의 쾌락을 통해 그는 여성으로서의 완전한 원형을 찾으려고 한다. 반역과 위반의 원동력인 '광기와 불'은 그녀의 시집들 도처에서 가장 원시적 감각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불과 짐승'으로 표출된다. 그것은 그 안에 내재한 가공되지 않은 관능적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날엔 내 몸 안에
눈뜬 짐승 한 마리 살고 있어

느닷없이
밤에도 울었는가 하면
사흘 낮 사흘 밤을 굶어도
배고프지 않아
우르르 모닥불로 타올랐는데
          시<나이의 창>중에서

허허벌판에 누워서
깨끗한 남자를 기다린다

불꽃이 울면서 짐승같이
젖무덤 밑으로 기어든다
          시<떠오르는 방>중에서

문정희는 각질화된 도덕이나 관습을 사랑의 불로 태워버리고 있다. "도덕이란 오히려 뜨거운 사랑/ 감정에 정직하고 몸이 말하는 대로/ 꾸밈없이 사는 거"(시<연극대사조로>중에서)라고 말한다. 때문에 문정희가 노래하는 사랑은 전통적, 숙명론적인 것이 아니라 저돌적이면서 강렬한 부름 같은 원시적 표출로 이어지며, 한국 전통 서정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한의 서정과 막연한 그리움을 탈피하고 있다.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되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으로 뛰어들어"(시 <겨울 사랑>중에서) 사랑의 태도를 분명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불안하지 않다. 아니 통쾌하다.

우리가 그녀의 시에 열광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울어야할 때 대신 울어주는 '곡비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가장 슬픈 사람들의 울음
천지가 진동하게 대신 울어주고
그네 울음에 꺼져버린 땅 밑으로
떨어지는 무수한 별똥 주워 먹고 살았다
          (중략)
엉겅퀴 같은 옥례야, 우리 시인의 딸아
너도 어서 전문적으로 우는 법 깨쳐야 하리
이 세상 사람들의 울음
까무러치게 대신 우는 법
알아야 하리
               시<곡비>중에서

"이 세상 사람들의 울음/ 까무러치게 우는 법"으로 그녀는 시를 택했다. 따라서 곡비 문정희의 울음은 죽은 언어, 허위와 폭압의 시대적 어둠, 고루한 인습 따위를 겨냥한 싱싱한 주술의 소리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원시적 본능을 가진 여성의 소리임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냉수 한 사발의 사랑이
폭풍보다 더 무서운 힘인 것을
너무 울어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진 이 살갗이
지진보다 더 무서운 힘인 것을
             시 <새 아리랑>중에서

그때부터 나의 동면은 시작되었건만
오늘 당신 앞에 다시 살아나
           (중략)
오늘 긴 머리채 잘라버리고
다시 불같이 사랑하고 싶은 것은
            시<햇살>중에서

이제 와서 무슨 일인가
들짐승 하나를 또 갖고 싶은 것은
           (중략)
남이야 알 듯 모르듯
세간 아무렇게나 흐트려놓고
들짐승 가는 대로
따라가고 싶은 것은

가서는 그대로 들에 살고 싶은 것은
            시<들녘에서>중에서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고 싶었다
죽고 싶었다
            시 <목숨의 노래>중에서

사랑을 정서의 불안한 곡예가 아닌 생애를 던져 쟁취하고픈 원초적 욕구로 노래한 시인은 많지 않다. '들짐승'을 따라 들에 가서 '목숨을 내놓고' '맨발로 너와 함께 타오르며 죽고 싶은' 사랑. 그것이 문정희가 허위와 가식에 비웃듯 던지는 사랑의 정의인 것이다. 저돌적인 언어로 원시적 순결성으로서의 욕망을 표출하던 문정희는 마침내 '황진이'라는 인물을 찾아냄으로써 문정희 식 여성으로서의 원형을 완성한다.

나는 바람인가 봐요

담도 높은 대궐 안엔
문도 많은데
문마다 모두 열어젖히고 싶어요
          (중략)
지체 있는 뭇 별들을
죄다 따고 싶어요
          (중략)
높은 벽에 온몸 부딪고
스러지고 싶어요
          시<황진이의 노래1>중에서

황진이는 관능과 위반의 대명사이다. 시인은 남성들이 만든 온갖 금기에 도전하는 황진이를 통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되확인한다. 그래서 이제 문정희는 평화롭다.

3. 아름다운 어른으로

문정희에게 있어 '오빠'란 가장 안정감 있는 세계로 나타난다. 난폭한 불같은 사랑의 대상이었던 '사내'가 비로소 '오빠'로 불려질 때, 그 오빠야말로 그녀 시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원시적 상상력의 극점을 통과하는 아름다운 존재로, 가장 싱싱한 어린애의 목소리로 우리 앞에 우뚝 서는 것이다.

딸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신이 나오는 길을 알게 된다
        (중략)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서 으르릉거리던 짐승과
화해한다
아름다운 어른이 된다
         시<남자를 위하여>중에서

오빠! 이렇게 불러주고 나면
세상엔 모든 짐승은 사라지고
헐떡임이 사라지고
         (중략)
오빠들이 사방에 있음을
나 이제 용케도 알아버렸다
        시<오빠>중에서

"내 허리를 휘감아 줄/ 사내는 없는가"(시<폭풍우>중에서)처럼 관능적 욕망의 대상이었던 사내가 이처럼 온화한 대지 같은 모습으로 시인 앞에 서게 되었음은 "불꽃을 찾아 온 사막을 헤매이며/ 검은 눈썹을 태우는/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시<다시 남자를 위하여>중에서)이었기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정희의 시에는 사랑과 관능에 대한 질곡의 역사가 함께 한다. 핏줄을 건드리는 그 무엇! '날 것'으로서의 본능 같은 것.

4. 시인 문정희

누군가 그녀를 '천재였'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각 대학의 문학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고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등단을 '했었다'고 했다. 1969년 동국대 국문과 재학 중에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천재'란 타이틀을 가시관처럼 머리에 쓰고 있는 현역 시인 문정희. 남들은 천재 소릴 듣는 게 왜 가시관을 쓰는 거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녀에게 붙은 찬란한 수식어인 '천재'야말로 일평생 그녀가 이고 가야 할 가시관임을 십자가를 보며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주저앉는다. 문득 발견한 그녀의 시 때문이다. "처녀의 생간"(시 <젊은 시인에게>중에서)처럼 뜨거운 매질을 한바탕 당한 온몸이 모처럼 상쾌하다.

라스베이거스는커녕
장충체육관 링에도
한번 올라가 보지 못하고
동대문 시장 입구나
고속터미널 부근쯤에서
잔 주먹을 휘두르는
주먹쟁이로는 살지 말아라

더운 코피를 닦으며
씽씽 새벽의 링으로 올라가거라

처녀의 생간을 거기 바쳐라
          시<젊은 시인에게>전문
#문정희 #서석화 #시인론 #야성 #원시적 상상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나경원 육성, 통일교 재판에 등장 "일정 어레인지하고 싶다"...윤석열·펜스 회동 직전 나경원 육성, 통일교 재판에 등장 "일정 어레인지하고 싶다"...윤석열·펜스 회동 직전
  2. 2 경기도 자가에 팀장인데요, 복싱장에서 만난 고2 때문에 각성했습니다 경기도 자가에 팀장인데요, 복싱장에서 만난 고2 때문에 각성했습니다
  3. 3 1인당 100명 식사 준비, 월 208만 원... 답글이 충격입니다 1인당 100명 식사 준비, 월 208만 원... 답글이 충격입니다
  4. 4 "집에서 어머니가..."라며 김용현 변호인단 어르고 달랜 지귀연 "집에서 어머니가..."라며 김용현 변호인단 어르고 달랜 지귀연
  5. 5 디스패치 보도와 배우 조진웅 은퇴가 던진 질문 디스패치 보도와 배우 조진웅 은퇴가 던진 질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