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만 되면, 대중조직 지도자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출마자들이 학연과 지연은 기본이고, 온갖 연고관계를 들쑤셔서 피곤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거란 무엇인가? '모 아니면 도' 게임 아닌가? 승자는 온갖 권한을 다 갖게 되고, 패자는 '알거지'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 소위 '선거' 아니던가? 선거에 패해서 가산을 탕진했다든가, 뒷동산에서 슬그머니 자살했다든가, "정치에는 절대로 말을 들여놓지 말라"고 누가 유언을 남겼다든가, 뭐 이런 말들이 있는 것만 보아도, '선거-정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걸고 총력전을 기울이는 선거 출마자들의 등쌀을 잘 피해가는 것도, 어쩌면 '선거'가 불가피한 간접민주주의 시대의 중요한 처세술의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소신을 가지고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을 지지한다면 문제는 간단하겠지만,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또한 개인의 경우에도 후보자들을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은데, 단체의 경우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 6.2 지방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후보자와 유권자 사이에 '정치적 지지' 문제를 둘러싸고, 한바탕 회오리가 예상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정치활동 경험을 토대로 처방전을 내려고 한다.
나는 지난 1988년 부평지역에서 평민당 국회의원 후보로 팔자에 없는 출마를 한 적이 있다. 참패로 선거는 끝났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꼭 이기려고 출마한 것은 아니니까 선거결과야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빈민촌이나 노동자 밀집지역에서는 표가 좀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노동운동을 한 사람인데, 너무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달리 방법은 없었고, 대우자동차가 관내에 있어서, 우연히 대우자동차 노조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명색이 노동운동한 사람인데, 노동자들이 왜 나를 안 찍었냐?" 신세한탄 겸 항의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 철학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 문제는 '실존과 의식'의 문제 아닌가? '실존은 의식을 만들지만, 창조적인 의식은 실존을 변화시킨다.' 실존은 노동자들이지만, 의식은 '출세주의' '배금주의' 같은 세속적인 흐름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당연하지. 언론이, 교육이, 주위 환경이, 세상이 출세 타령으로 온통 도배되어 있는데, 누구도 미래 희망과 정치와 노동자 역할을 말하지 않는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길이 없는데... 노동자 탓만 할 수는 없는 것이지. 내 탓이지.
나는 고심 끝에 제안했다. "대우노조에 정치고문을 두시오, 활동비까지 줘가면서 법률고문은 고용하면서, 정치고문은 왜 없나? 법률이 정치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냐? 나만 정치고문 임명하면 특정 '정파 지지'로 오해받으니, A당 B당 C당 D당의 지역 지도자들을 모두 정치고문으로 임명하시오. 그리고, 정치적 사안이 발생하면 모두 불러다가, 조합원들 앞에서 10분씩 입장을 밝히게 하시오. 대중들이 비교 검토해서 정치적 판단을 할 기회를 주시오."
물론 지금도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대우자동차 노조는 물론이고 다른 어느 노조가 정치고문을 두었다는 소리를 들은 바가 없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배타적 지지-정치방침'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을 벌여왔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진보정당이 민노당과 진보신당으로 나뉘면서 처신이 곤란해진 노조 지도자들의 문제제기 측면이 강하지만, 차제에 나는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방침을 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진부하지만, 무엇이 진보인지? 묻고 싶다. '노무현'을 좀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진보라는 간판을 붙여야만 진보로 인정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진보정당의 토대를 넓히는 일이, 진보 간판을 단 정당만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면 가능한 것인지? 묻고 싶다.
노조 대중들이 정치적 판단을 위한 열린 정치 토론을 평상시에는 하지 않다가, 오직 '배타적 지지'라는 정치방침에 따라서 정치적 입장을 결정하는 것이, 노동자 정치의식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단순히 '민주노총의 과거 지도부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식의 궤변으로는 이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임은 명백하다. 역으로 '모든 조합원에게는 정치적 자유가 있는데 민주노동당 지지만을 고수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도 아니다. 대중조직의 올바른 정치방침을 결정한다는 차원에서, 이 문제가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3월,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가 정당에 대한 조합원들의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통합민주당이 30.1%, 민주노동당이 17.1%, 한나라당이 16.7%, 진보신당이 12.1%로 나타나 있다. '배타적 지지'가 대중의 정치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비현실적이고도 과도한 정치방침이라는 점이 드러나 있다. '실존과 의식'이 현저하게 궤리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노동자 대중의 정치의식을 어떻게 높여나갈 것인가?
나는 주장한다. 노조를 포함한 모든 대중조직에게 제안한다
1. 열린 정치토론의 기회를 평상시에 많이 만들어 나가라.
2. '정치고문' 제도를 채택하라. 각 당을 대표하는 지도자(중앙-정책위 의장? / 지역-지역위원장?)들로 구성하면 된다.
3. 대중들의 투쟁 동력이 나올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서 정치방침을 결정하라. 이것은 한반도 변혁운동의 흔들림 없는 기본 원리이며, 의식과 실존은 상호작용하는 법이다.
4. 소속 대중들이 70-80% 이상으로 치우치면 그쪽을 지지하는 것으로 정치방침을 정하고, 지지가 흩어져 있으면 토론과 판단의 기회만 주면 된다. 아마도, 같은 정치적인 아이템일지라도, 그 주제에 따라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대중들의 반응을 주시하면서, 사안에 따라서 그 주제와 결의 수준에 적합하게 정치의식을 높일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해 나가라.
'배타적 지지'는 대중들의 정치의식을 제약하는 족쇄가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김용석 블로그 : 네가 대통령(http://blog.ohmynews.com/kys1220/316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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