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은 배달 안 되는데요"

등록 2010.01.31 17:05수정 2010.01.3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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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정말 오랜 만에 겨울다운 겨울을 보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중 겨울을 제일 좋아합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찬바람이 부는 날씨를 좋아합니다. 온몸을 얼려버리는 겨울날씨는 내 몸에 들어있는 온갖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씻겨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찬바람이 부는 겨울날씨를 좋아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언 몸을 녹여줄 따뜻한 집과 방이 없으면 겨울은 가장 견디기 힘든 계절입니다. 어릴 때 얼음이 꽁꽁 무논이나, 강가에서 썰매를 타다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 집에 돌아와 장작불로 땐 온돌방에서 언 몸을 녹이면 추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콧물이 흐르다가도 금방 멈추었습니다. 그 때가 한없이 그립습니다.


이제 썰매도 탈 수 없고, 장작불 온돌방이 아니라 보일러로 언 몸을 녹입니다. 아직 연탄보일러를 쓰는 분들도 있지만 일반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기름보일러, 아파트 사는 사람들은 도시가스로 난방을 합니다. 아파트는 도시가스로 난방을 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아니지만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분들은 연탄이 꺼지지 않도록 밤을 지새워야 하고, 연탄이 떨어지면 배달 주문까지 해야 하니 겨울 한철 나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등유로 난방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10월쯤부터 등유 넣을 준비를 하는데 겨울이 오기 전에 기름통에 가득 넣으면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그런데 등유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 기름이 얼마 남았는지 알려주는 눈금을 살피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우리 집은 30년 넘은 건물이라 겨울 한 철을 보내려면 난방비가 70만원 넘게 들어갑니다. 난방비가 70만원이면 적게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기름 값을 절약하기 위해 방을 하나만 쓰기 때문에 적은 것이 아닙니다. 올해는 등유 값이 지난해보다 난방비는 더 많이 들어갑니다.

겨울이 오면 커튼을 달고, 바람막이 공사를 해도 오래된 집이라 외벽이고 단열이 안 되어 있어 방바닥은 따뜻한데 위에는 입김이 나오고 손이 시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 집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는 사는 분들도 있지만 입김이 나오는 방안에서 살다보면 한 번씩 아파트에 사는 분들이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지난 12월 초 기름을 한 드럼 넣었는데 기름이 손가락 한 마디쯤 남아 있기에 기름을 조금 더 아끼려고 보일러 온도를 외출로 낮추었습니다. 외출로하면 며칠은 더 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외출로 낮추지 방바박에 온기만 조금 남아 있을 뿐 보일러를 돌리지 않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아침이 일어나자 추위에 약한 아내가 화를 냈습니다.

"오늘도 당신이 온도를 낮추었어요."
"그래. 요즘은 별 춥지도 않잖아요.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야지."
"방이 얼음 방이잖아요, 얼음 방. 많이 안 춥다고! 그럼 당신은 밖에서 자면 되잖아요. 이렇게 자다가는 감기 들어요. 기름 아끼려다고 아이들 감기 들면 돈이 더 들어가는 것 몰라서 그래요."
"이제 기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온도 높였다가 밤에 기름이 떨어지면 얼음 방이 아니라 북극이다! 북극."
"손가락 한 마디쯤 남았으니 오늘이라도 기름을 넣으면 되잖아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살면서 조금 아껴 쓰면 안 되나. 그래 알았어요. 어쩔 수 없지. 당신과 아이들이 추우면 온도 높이고, 오늘은 기름 넣자."


맞습니다. 감기 걸려 병원에 다니는 것보다 따뜻하게 지내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기름을 아껴 쓰는 것도 정도 어느 정도이지 방을 냉방으로 만들면 안 되겠지요. 점심을 먹고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갔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말을 들었습니다.

"보일러 기름 좀 넣어주세요."
"얼마치 넣어드릴까요."
"10만원치요."
"10만원요. 우리는 10만원치는 배달을 하지 않습니다. 15만원은 넘어야 합니다."
"아니 10만원은 배달이 안 된다고요. 그런 일이 어디 있어요. 10만원은 안 되면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라고요."
"주유소 방침이니 그러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0만원은 안 된다고 말하니 아내는 기름 값이 많이 올라서 그런 것 같으니 너무 화를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손에 든 돈이 10만원 밖에 없어 그런데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화가 얼마나 나는지 그냥 시청에 민원을 넣을까 생각도 했지만 이런 일로 민원을 넣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에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기름을 넣지 않을 수도 없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또 다시 가면 화가 나서 싸울 것 같으니 당신이 가서 주인을 잘 설득해 기름을 좀 넣어달라고 잘 부탁해보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가서 한 번 부탁해보세요. 나는 성격이 급해 그만 화가 나서 집에 돌아와버렸는데 기름은 넣어야지."
"아니 마음을 조금만 차분하게 해서 부탁을 하면 될 것인데 그것도 못 참아 집에 돌아와서요."
"기분이 나쁘잖아요. 왜 10만원은 안 돼요. 소비자가 부탁하면 당연히 넣어주어야지. 차에 기름도 넣고, 석유난로 기름도 넣는데. 나도 그 집 단골이잖아요. 단골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되지."
"단골이라도 어느 정도이지. 생각을 한 번 해보세요. 그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죠."
"그래도 10만원은 안 된다는 것은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아내가 가서 말을 잘 했는지 기름을 넣어주겠다고 약속을 받아왔습니다. 물론 10만원을 넣으면 주유소 경비와 인건비를 빼면 손해를 볼 수 있어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돈이 부족해 10만원치만 넣을 수도 있고, 나중에 돈이 있으면 20만원치도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15만원은 되어야 기름을 배달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해서든 넣었는데 앞으로 두 번 정도는 기름을 더 넣어야 겨울을 넘길 수 있는데 이래 저래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기름보일러 #등유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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