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하는 글
그를 떠올리는 일은 원하지 않은 고통과의 조우처럼 정신을 힘들게 한다. 애써 피하려 해도 언젠가는 덜미를 잡힐 것 같은 삶의 막연한 불안과는 다른, 살아서 펄떡이는 '날것'으로서 공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기억을 추슬러보면 나는 그를 세 번 만났다. 개인적인 이유가 전혀 배제된, 같은 출판사 시인 선에 각자의 시집이 들어 있다는, 지극히 공식적이고 건조해서 '만남'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냥 같은 장소에 초대되어 나와 있는' 그런 마주침이었다.
그는 건강하지 않았다. 살집이 두툼한 그의 몸과 뻘밭같이 짙고 축축하던 눈, 짐승의 울음보다 더 서럽게 내지르던 노래들, 누군가 그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 줬다. 우울증!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더 이상 그를 보지 않았다. 전이가 무서웠다.
그는 가난하다. 그의 가난은 설익은 예술가가 치장으로 껴입은 듯한 로맨틱한 우수의 가난이 아니라, 그를 병들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처절한 생존의 가난이다. 때문에 그가 쓰는 시는 표피만 긁적이는 시가 아니라, 살갗을 벗기고 심장을 드러내는 아픔을 거느린다. 따라서 1990년대 시인들의 공통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는 다소 코믹하며 사소하고 피상적 표면적 일상을 노래하는 데서 벗어나 타나토스적이고 삶의 구차함을 정곡으로 찌르는 시를 쏟아낸다.
"그는 천진하게 웃는 무서운 아이"라고 말한 문학 평론가 황현산의 지적은 그가 지닌 병과 더불어 그 안에 내재된 시적 재능과 욕망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불행을 겹겹이 껴입은 그의 웃음이 천진하다는 데서 나는 그의 시적 재능을 본다. 그의 시들을 읽다보면 잘못 이식된 자본주의에 대한 차갑고도 냉정한 비판의 명쾌함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문명'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되어온 모든 도시적 공해에 대한 지적이므로, '객관성 확보'라는 시적 성취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또 하나의 무산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가난'이 시인에게 용해되는 과정과, '도시시'로 명명되는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 현대시 속에서 자본주의가 낳은 '무산의 서정'이 바탕이 된 함민복의 시를 살펴보는 데 그 의의를 둔다.
2. 본론
한때 원자력 발전소에 근무했다는 전력이 화제가 되기도 한 함민복은 1962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수도전기공고와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학)을 졸업했다.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후, <우울 씨의 일기>,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등 여러 권의 시집을 상재했으며, 1998년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오늘의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그의 두 번째 시집 <자본주의의 약속>에서 함민복은 이전의 어느 시인들보다도 끈질기게 문명화된 도시를 해부하고, 비판하는 고집스런 자세를 보인다. 그것은 노동자 계급 청년 문화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인 자신의 가난한 서민적 체험을 이야기하면서 하위문화의 계급적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그의 시는 때문에 고도의 테크닉이 아닌, 생생한 '날것'으로서 풍자와 저항을 드러낸다. 그의 시에서 시적 표현과 비판이 때로 저속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은 하위문화의 전형적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학 평론가 김용희의 지적처럼 하위문화의 언어란 본질적으로 '외설스러운 언어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산업 사회의 정체와 그 병적 징후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병과 가난이라는 그의 삶이 말해주듯 그는 철저하게 산업 사회의 온갖 병균에 오염되어 있다. 도시시는 1980년대 이후 한국 현대시의 뚜렷한 하나의 흐름이다. 도시는 문명의 대표적 표상이며 문명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한다기보다 철저하게 세속화하고, 이 세속화 과정은 우리의 심층적 구조를 왜곡하고 있다. 이것이 도시시가 고통스럽게 발견한 갖가지 악의 온상이다. 따라서 도시시는 자연스럽게 문명 비판적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가로수가 더 이상 전원에 부착된
안전벨트로 보이지 않는 도시
서울의 클리토리스 남산
거대한 주사기처럼 스포이트처럼
발광하며 문명을 주사하는 타워
어둠이 내리면 연꽃처럼 피어나는 광고
여관 개업식 날 만국기를 다는 곳
서서히 사람들을 처형하는 독가스
합법적으로 내뿜으며 질주하는 자동차
(중략)
가로수가 시멘트에 질식사한 흙의 상주처럼
새끼줄로 복대하고 머리 풀어헤친 오, 서울
<백신의 도시, 백신의 서울> 중에서
떠나간다 유람선
한강철교 아래를 지나가다 보면
민족의 비극 6.25처럼
8학군 강남으로 도강하기 힘들고
강남의 아파트 장벽과 강북의 꼬막집들
명명되지 않은 전쟁이 여기 벌어지고 있구나
<한강 유람선> 중에서
도시의 음식들은 비닐봉지에 싸여 집으로 들어와
더 큰 비닐봉지에 싸여 관짝처럼
뒷골목을 뒹굴고
티브이 모든 프로그램이 애국가로 시작
애국가로 끝나는 애국가 포장이 되어 있듯
도시에서의 삶이란
산부인과 병동에서 태어나 몇몇 병동을 거쳐
영안실로 완성 포장되는 것
<자본주의의 사랑> 중에서
시집 <자본주의의 약속> 해설을 한 함성호의 지적처럼 함민복의 시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되, 그것이 자본주의다 사회주의다 하는 어떤 특정한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자연스럽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도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무산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철저한 가난에 봉쇄되어 있는 시인이 비판하고 있는 이 시대의 자본주의는 상업화된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시인에 비해 계급적 우월권과 물질적 부르주아의 상징으로 대변되고 있는 기득권자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그는 문명을 '자멸'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것은 문명의 혜택에서 거부당한, 그것도 자의가 아닌 빈곤의 세습으로 인한, 즉 타의에 의해 '거부당함'을 겪어야 하는 가난한 남자의 위악으로 읽어도 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그의 시에서 가하고 있는 치열한 비판과 문명에 대한 혐오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지식부랑자라고 할 수 있는 정처 없는 그의 떠돌이 생활과 우울증이라는 병력이 가족을 둘러싼 슬픈 내력과 절대로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이란 외적인 압력에 결코 초연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단지
손에 손가락을 내리친 가난이 들려 있었다
가난은 시련이 아니라 분위기다
어머니가 삐그덕 문을 열었다
핏방울이 부엌에 차올랐다
애고고,
어머니가 수건을 벗어 떨어진 손가락을 붙이며
이웃으로 소리를 질렀다
흰 머리카락 위로 철렁 검댕이 그물이 쏟아졌다
<붉은 겨울, 1986> 중에서
...... 형과 나는 돼지종부를 시킵니다 눈발 속에서 거구의 수퇘지가 암퇘지
등에 올라탑니다 수퇘지 앞발톱에 암퇘지 등짝이 찍혀 피가 흐릅니다
형의 머리에도 내 머리에도 가벼운 눈 모자가 씌여집니다 눈발 속에서
돼지종부를 시키고 있는 형제의 모습이 한 번 여행으로 일생을 마감하는
우표같은 쓸쓸함에 젖어듭니다....... 형은 술 한 잔 하고
어머니는 보청기 건전지를 갈고 나는 항우울제를 사러 병원에 갑니다
<기록, 어설픈 하나님> 악의 질서 16 중에서
지난여름 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눈물은 왜 짠가> 중에서
어머니를 다려 먹었습니다
맛이 없었습니다
<섣달 그믐> 중에서
배가 고프다 오늘 끼니는 삶은 계란 두 개
돌아가자 빨리 돈암동 로타리
그럴듯한 이름의 로타리장의사를 지나
가서 사발면이나 끓여먹자
700원
토큰 한 개는 안 판다고 한다
잔돈이 없어서, 잔돈이 필요해서,
화가 난다 잔돈 같은 삶은 화가 자주 난다
다시 걸어 종로 3가에서 미리 사정하고
토큰 한 개를 산다
지병인 공복상태에서의 빈혈과 머리의 식은 땀
남은 삶은 450원
참자 30분 후 나는 라면을 먹을 수 있다
<자본주의 삶> 중에서
어머니 고통만큼 나는 어머니가 되고
당신 눈동자 파먹으며 살아온 세월
당신 귀 때려 막으며 살아온 세월
당신 척추 시큰 매달려 살아온 세월
당신 더 뜯어먹고 싶어 당신 살리고 싶은 밤
당신 죽으면 당신 속의 내가 죽고
외롭게, 내 속의 당신만 살아.
물소리. 문이 열리고
<위험한 수업> 중에서
그녀는 간질을 한다
그녀가 경련을 일으키며 거품을 물고 쓰러질 땐
신앙심 깊은 누이마저 신을 찾을 정황도 없다고 한다
오늘 그녀가 톱을 들었다
화창한 봄날이 그녀에게 톱날을 집어주었다
그녀의 발작이 잦고 깊어갈수록 식구들은
전생의 죄, 애물단지라고 탄식을 연발하였다
<화창한 봄날이 그녀에게 톱날을> 중에서
그의 삶 속에서 나는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한 시인의 육화된 절망을 본다. 개를 죽이는 숫자만큼 나를 죽인다는 그의 진술은 그렇게 때문에 차라리 담담하다. 그래서 그는 깨어 있을 수 있다. 자본주의에 굴종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신을 드러내는 가열찬 토로의 방식! 이 시대 무산의 서정으로서 그의 시는 완벽한 리얼리즘을 생산해 내며 그것이 곧 문명 비판이라는 예리한 촉수로 작용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시가 이미 절망의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다는 함성호의 지적엔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절망에 익숙한 자는 깨어 있는 언어를 만질 수 없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직시할 수도 없다. 함민복의 가난 인식은 절망보다는 맞대결을 기꺼이 수락한 것으로 읽힌다. 그것은 '극복'이다.
또한 함민복은 가난 속에서도 그것이 꽃피운 서정시인으로서 귀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의 서정은 어쩌면 선천성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진한 향기로 감동과 울림을 대동한다. 짝사랑과 그것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면서도 그의 시는 상투적이지 않다. 부르주아적인 기름기가 끼지 않은, 절대 궁핍의 순결성은 그의 서정시, 특히 연시에서 빛난다.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선천성 그리움> 전문
까마귀산에 그녀가 산다
비는 내리고 까마귀산자락에서 서성거렸다
백번 그녀를 만나고 한번도 그녀를 만나지 못하였다
(중략)
어느 동물과의 인연 같은 인연이라면
내 당신을 잊겠다는 말을 전하려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독해지는 마음만
까마귀산자락 여인숙으로 들어가
빗소리보다 더 가늘고 슬프게 울었다
<흐린 날의 연서> 중에서
당신 품에 안겼다가 떠나갑니다
진달래꽃 술렁술렁 배웅합니다
앞서 흐르는 물소리로 길을 열며
사람들 마을로 돌아갑니다
살아가면서
늙어가면서
삶에 지치면 먼발치로 당신을 바라보고
그래도 그리우면 당신 찾아가 품에 안겨보지요
그렇게 살다가 영, 당신을 볼 수 없게 되는 날
당신 품에 안겨 당신이 될 수 있겠지요
<산> 전문
너무도 오래 당신을 찾아 날고 날았지요
견디고 견디다 나도 모르는 사이 꽃이 되고 말았네요
모든 게 깊어진 가을, 하오나
하직하면 저승의 봄 잔치 푸르겠지요
<가을 꽃 가을 나비> 전문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어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긍정적인 밥> 전문
함민복이 다다른 마음의 절정에 이토록 따뜻한 세계가 있다. 그의 세 번째 시집인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에서 우리는 '선천성 그리움'을 생산해내는 따뜻한 발전소의 그윽한 시선을 포착해낼 수 있다. 그것은 가난과 불운한 가족사에 대한 체험이 극복되어 도달한 경지라고 말할 수 있다.
수없이 많이 생산되고 있는 연시지만 그것이 진정한 울림으로 다가오기란 쉽지 않다. 말초적이지 않으면 상투성 짙은 무거움으로, 스쳐가는 감상에도 머물지 못하고 흘러가는 것이 다반사다. 함민복은 그런 편견을 보기 좋게 뒤집는다. 그의 연시는 눈보다는 마음을 붙잡고, 호소가 아닌 침묵의 응시를 생산해낸다. 그의 세 번째 시집이 지닌 가치가 여기에 있다. 세계와 타자를 향한 그윽한 시선, 그의 시를 대할 때 무겁고 연민에 차며 때론 캄캄했던 우리의 마음까지도 그는 이제 원격조종할 만큼 그의 삶은 성숙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끝내는 글
풍문에 의하면 그는 지금 강화에 산다고 한다. 그의 삶이자 사랑이며 한이기도 했던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완벽한 중년의 나이를 한결 건강해진 몸과 마음으로 살아내고 있다고 한다. 가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시는 이제 더욱 건강하게 읽혀야 할 것이다. 젊은 날 체험했던 우울증과 가난은 시인으로서 그에게 성실하게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그리고 그런 세계야말로 무산의 서정이 빛을 발하는 순결의 극점일 것이므로!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