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술 먹으려면 발품 좀 파셔야재

정성을 가득 담아 술을 빚는 조영숙씨 이야기

등록 2010.04.22 19:12수정 2010.04.2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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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네 전통주인 막걸리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서 막걸리 판매량이 급상승하는 것은 물론 일본으로 수출이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막걸리가 과연 진정한 우리네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네 음식은 예로부터 '손맛'이라며 만들 때의 정성을 최고로 쳤다. 그런 연유로 본다면 대량으로 팔기 위해 기계로 제조한 막걸리는 우리네 전통이 아닌 단지 장사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남해군 미조면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방법으로 18년째 막걸리를 담그는 집이 있다. 그 주인공은 미조항 한켠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조영숙(53)씨.

조영숙씨가 술을 담그게 된 것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꽃다운 23살 호도로 시집을 간 조씨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시어머니와 함께 막걸리를 담갔다. 요즘 같으면 도선을 타고 뭍으로 나오면 술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당시엔 도선이 없어 뭍으로 나오기 힘들었다고.

그렇게 조씨는 술을 즐기고 마시기 위해서가 아닌 조상들을 모시기 위해 10년 넘게 술을 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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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내리는 모습. ⓒ 김종욱


호도에서 술을 담그며 부모님을 모시다 친정이 있는 미조로 돌아온 것이 20여년 전. 미조로 올 때 술을 담그던 독을 챙겨 나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조영숙씨는 술을 담가서 팔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뭍으로 나온 조씨는 가끔씩 과실주도 담고, 등산을 하며 구한 약초를 첨가해 막걸리를 담기도 했지만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더 맛있는 술을 담기 위해 조영숙씨는 한의원에 문의도 해보고, 동의보감을 읽기도 하며 계속 도전한 결과 지금의 막걸리가 탄생했다. 그것은 더덕과 도라지, 생지황을 재료로 한 막걸리다.

음식점을 운영하던 조씨는 그 막걸리를 손님들에게 한잔한잔 대접했고, 그것이 어느새 18년 세월이 흐르며 입에 입을 타고 소문이 났단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동네 아는 동생이 잠시 가게에 들러 막 뜯어왔다며 돌미나리를 내려놓는다. 잠시 인사를 나누고 조영숙씨가 일을 하러 주방에 들어간 사이 동생은 나중에 산에 갈 때 갈증나면 먹겠다고 작은 페트병에 막걸리를 담는다. 뒤이어 누구는 막걸리값 받으라며 돈을 쥐어주고, 누구는 안 받겠다고 그냥 가져가 먹으라며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조영숙씨에게는 한 가지 철학이 있다. 아무리 술을 달라고 보채도 마음에 들 때까지 술이 익지 않으면 절대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담그는 술이 적어 종종 술이 모자라기도 하지만 장인으로서 완벽하지 않은 술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가끔씩 술이 떨어졌다는 말이 거짓말인줄 알고 "장사하는데 배가 불렀냐"라고 투덜대는 손님이 있기도 하지만 철칙은 철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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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기다리라더니 금새 가오리무침과 직접 담은 술을 가져온다. 조영숙 씨가 직접 담은 청주(왼쪽)와 막걸리(오른쪽) ⓒ 김종욱


조영숙씨의 막걸리를 마실라치면 우선 쌉싸름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부드럽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고, 나도 모르게 캬~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달콤하고 쌉쌀한 그 맛이 목구멍에 착착 감기는 게 이것이 바로 우리네 맛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또하나의 별미가 있다. 맑은 막걸리, 청주다. 청주를 많이 뜨면 막걸리가 맛이 없어져 팔지는 않지만 귀한 손님이 오면 항상 대접해준단다. 먹어본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어느 양주보다도 좋다고.

가만히 옆에 있던 친동생 조용민(38)씨도 한마디 거든다. "청주는 친동생이 달라고 해도 안주는 술"이라고 말이다.

"막걸리하고 안주는 아무거나 주이소~"라고 말하고 식당에 들어오는 손님, 그는 곧 뒤에 따라오는 동료에게 "이집 막걸리가 지긴다 아이가"라며 자리를 찾아 앉는다.

막 들어온 손님은 부산사람이고, 아까 있던 손님은 통영사람이란다. 막걸리와 음식이 맛있고, 인심도 넉넉한데다 가족같이 푸근하고 좋아 남해에 올 때마다 이곳을 찾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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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숙 씨 ⓒ 김종욱


이들 뿐 아니라 이집의 단골은 어마어마하다. 남해를 넘어서 서울, 부산 등지에서도 많이들 찾는다. 호섭이로 유명한 탤런트 문용민도 그의 단골이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택배로 주문을 하는 사람도 종종 있단다. 하지만 그는 "오는 사람 정성껏 대접하기 위한 술이지, 돈을 벌기 위한 술이 아니라 택배는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술을 그리 많이 담지 않으니 직접 발품팔아 찾는 손님이 우선이 되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그의 술은 별다르지 않다. 다른 막걸리와 마찬가지로 누룩과 고두밥이 주재료인 막걸리의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막걸리에 남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것은 엄청난 정성때문이다. 술을 담기 전 행동거지 하나하나 조심하는 것은 물론 술을 담그면서도, 담근 이후에도 엄청난 정성을 쏟는다. 그런 정성이 그의 막걸리를 더욱 특별하게 하는 것이다.

정확한 가게의 위치는 밝히지 않는다. 정성이 담긴 막걸리일수록 발품을 팔아서 직접 찾을 때 그 맛이 더욱 감미로울 것이니, 또한 갑자기 손님이 몰리게 되면 먼길 찾아와서 막걸리를 못 먹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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