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68) 체질화

[우리 말에 마음쓰기 904] '요괴화하다'와 '요괴가 되다'

등록 2010.04.24 14:56수정 2010.04.2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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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체질화

..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서 그러한 일은 일부러 슬로건으로 내세울 것까지도 없이 체질화되어 있는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  <나카노 고지/서석연 옮김-청빈의 사상>(자유문학사,1993) 240쪽


"조상(祖上)들에게 있어서"는 "조상들한테서"나 "앞사람들한테서"로 다듬고, '슬로건(slogan)'은 '외침말'이나 '푯말'로 다듬습니다. "내세울 것까지도 없이"는 "내세우지 않고도"나 "내세우지 않아도"로 손보고, '당연(當然)한'은 '마땅한'으로 손보며, "일이었던 것이다"는 "일이었던 셈이다"나 "일이었다"로 손봅니다.

 ┌ 체질화 : x
 ├ 체질(體質)
 │  (1) 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몸의 생리적 성질이나 건강상의 특질
 │   - 특수 체질 / 강인한 체질 / 체질에 맞는 보약 / 체질을 바꾸다
 │  (2) 조직 따위에 배어 있는 성질
 │   - 우리 회사도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 / 당의 체질이 변화되었다
 │
 ├ 체질화되어 있는
 │→ 몸에 배어 있는
 │→ 몸에 익어 있는
 │→ 삶이 되어 있는
 │→ 삶으로 녹아들어 있는
 └ …

몸이 어떠한가를 따로 가리키면서 '체질'이라고 합니다만, 굳이 이 같은 말을 빌지 않더라도 '몸' 한 마디로 "몸이 어떠한가"를 가리켜 온 우리들입니다. "오늘은 몸이 어때?"라 하거나 "몸이 말이 아니구나"라 하거나 "몸에 맞는 약"이라 하거나 "몸을 바꾸다"라 하면서.

 ┌ 몸에 맞는 보약
 └ 체질에 맞는 보약

우리는 예부터 "튼튼한 몸"이나 "여린 몸"이라 했습니다. 딱히 "강인한 체질"이나 "허약 체질"이라 하지 않고도 어떤 몸피이고 몸느낌인가를 찬찬히 보여주었습니다. "남다른 몸"이라 하면서 "특수 체질"임을 나타냈고, "몸을 바꾸다"라 하면서 "체질을 변하게" 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 우리 회사도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
 │→ 우리 일터도 바뀌어야 한다
 │→ 우리 일터도 바꾸어야 한다
 │→ 우리 일터도 달라져야 한다
 ├ 당의 체질이 변화되었다
 │→ 당이 바뀌었다
 │→ 당이 달라졌다
 └ …

또는, 아예 '몸'이라는 말을 밝혀 쓰지 않는 가운데 "몸이 어떠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임자말을 덜고도 임자말을 나타내는 우리 말다운 말씀씀이라 할 텐데, 이런 우리 말 빛깔을 고이 돌아보면서 생각을 나타내고 느낌을 나눌 때, 말맛과 말멋은 한결 살아납니다.

ㄴ. 요괴화하다

.. '몸이 바위같이……. 사혼 조각의 요력이 효력을 나타내기 시작한 거다!' "켁, 이 자식이 인간이라고? 웃기지 마!" "인간이 요괴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타카하시 류미코/하주영 옮김-견야차 (9)>(하이북스,2001) 85쪽

"사혼 조각의 요력(妖力)"은 "사혼 조각에 담긴 요괴 힘"이나 "사혼 조각에 깃든 요괴 힘"으로 손봅니다. "효력(效力)을 나타내기 시작(始作)한 거다"는 앞 대목에 '요괴 힘'이라고 나오니 "나타내고 있다"나 "나타나고 있다"로 손질합니다. "이 자식(子息)"은 그대로 두어도 되나 "이 녀석"이나 '이놈'으로 다듬으면 한결 낫고,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다듬으며, '경우(境遇)'는 '수'나 '때'로 다듬어 줍니다.

 ┌ 요괴화 : x
 │
 ├ 인간이 요괴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사람이 요괴가 되는 수도 있습니다
 │→ 사람이 요괴로 바뀔 때도 있습니다
 │→ 사람이 요괴로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 사람이 요괴로 탈바꿈하기도 합니다
 └ …

아주 마땅한 노릇이 아닌가 싶은데, '요괴화'라는 낱말은 국어사전에 안 실립니다. 이런 낱말이 국어사전에 실린다면 국어사전은 이름값을 다했다고 보아야지 싶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국어사전에 안 실리는 낱말 '요괴화'를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알맞고 올바르게 가눌 우리 말글을 헤아리기보다는, 그저 손쉽게 일본 말투 '-化'붙이기를 합니다. 일본 만화책을 우리 말로 옮기면서 '요괴화' 같은 말마디를 고스란히 한글로 적바림하고, 이런 말마디가 하나둘 늘어나면서 우리 스스로 '-化'붙이 말마디를 새로 빚어내기까지 합니다.

우리 말글 지킴이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힘을 쓰고 애를 써야 우리 말글이 옳고 바르게 자리를 잡으리라 생각하는 분이 있을까 모르겠는데, 몇몇 사람이 우리 말글 지킴이 노릇을 한다고 해서 우리 말글이 옳고 바르게 뿌리내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은 말을 바탕으로 모든 생각을 쏟아내고 온갖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정치도 말이고 경제도 말이며 과학도 말이고 수학도 말입니다. 어떠한 교재나 책이나 말로 이루어집니다. 어떠한 신문이나 방송도 말로 보여줍니다. 문학뿐 아니라 영화도, 또 노래도 말로 이루어집니다. 춤을 가르치면서 말 한 마디 않고 가르칠 수 있지만, 모두 말로 이러쿵저러쿵 가르칩니다. 농사를 짓거나 기계를 돌리며 말없이 몸짓을 보여줄 수 있다지만, 언제나 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알려주어야 비로소 배웁니다.

어느 자리 어느 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 하든 누구나 말을 제대로 익혀야 합니다. 어린이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말을 말다이 다룰 수 있어야 하고 말을 말답게 펼쳐야 합니다. 말이 말답지 않은 곳에서 넋이 넋다울 수 없습니다. 넋이 넋다웁지 못한데 삶이 삶다울 수 없습니다. 말만 번지르르하면 그야말로 겉멋이고 겉치레입니다. 넋만 번지르르하면 더없이 책상물림입니다. 삶만 번지르르하면 참으로 제멋대로입니다. 말과 넋과 삶은 골고루 어우러지며 아름다울 노릇입니다. 살가이 말하고 살가이 생각하고 살가이 살아가며 꾸밈없고 맑은 아름다움을 찾고 가꿀 노릇입니다.

 ┌ 사람도 요괴가 될 때가 있습니다
 ├ 사람이지만 요괴가 되기도 합니다
 ├ 사람인데 요괴로 바뀌기도 합니다
 ├ 사람이었으나 요괴 몸을 얻기도 합니다
 └ …

이 보기글을 곰곰이 살펴봅니다. 토씨 '-이/-가'와 '-도'를 어느 자리에 붙이느냐에 따라 말느낌을 살짝 달리해 볼 수 있습니다. '-도'를 앞쪽에 붙일 수 있고 뒤쪽에 붙여도 됩니다. 한자말 '경우'는 '수'나 '때'로 갈음할 수 있는 한편, 아예 덜 수 있습니다. '-化하다'는 '되다'로만 고쳐써도 넉넉하고, '바뀌다'나 '달라지다'로 고쳐쓸 수 있으며, '탈바꿈하다'라든지 '몸을 얻다'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어울릴 만한 말투를 우리 스스로 생각하여 찾아내고, 알맞춤하다 싶은 말마디를 우리 스스로 헤아리며 받아들이면 됩니다.

좋은 말 한 마디로 좋은 넋 한 자락 가꾸어 좋은 삶 한 자리를 북돋우겠다는 매무새일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고운 말 한 마디로 고운 넋 한 자락 일구어 고운 삶 한 자리를 다스리겠다는 몸가짐일 수 있으면 반갑습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믿음직한 말과 넋과 삶을 기다립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화 #외마디 한자말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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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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